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오랜 만애 참 좋은 소식이 들렸다. 예견된 일이기는 하지만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문제를 잘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을 준 것, 충북도·도교육청과 충북도의회에 거는 기대다.

충북도와 도교육청은 지난 23일 도의회가 의결 이송한 ‘충청북도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에 관한 조례안’을 재의 요구했다.

보통 국회나 지방의회에서 의결한 법률안이나 조례안에 대해 대통령이나 해당 자치단체장이 재의를 요구하면 좋은 관계가 틀어지기 십상이다. 한 사안에 대해 서로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된다’, ‘안된다’ 고집 피우다 보면 자칫 감정싸움이 되곤 한다.

의결기관 입장에서 보면 이미 자신들이 심사숙고해 의결한 사항을 재의 요구받아 다시 심사, 의결한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재의 요구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그런데 ‘일본 전범기업 제품 구매제한 조례안’에 대한 충북도와 도교육청의 재의 요구를 놓고 도의회와 갈등을 빚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충북도의회는 지난 2일 제375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전국 처음으로 이 조례를 제정해 충북도에 이송했다.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맞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제조에 필수적인 부품 소재와 수출 규제에 나서고 한국여행 자제 권고,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등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맞대응이었다.

앞서 도의회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관련 성명서 발표(8월2일), 일본 경제보복 강력 규탄 결의대회(8월6일), 일본 경제보복 대응 조례 4건 발의(8월13일) 등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장선배 의장은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에서 아베정부 경제보복을 강력 규탄하고 전범기업 조례 대표발의 전국광역의원들 공동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도의회는 충북도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어느 의회보다도 발빠르게 대응했다. 전국 광역의회중 처음으로 조례를 제정한 것이 입증한다.

그런데 집행부로부터 재의요구를 받는 변수가 생겼다.

조례를 이송받은 충북도는 전범기업 범위가 모호하거나 포괄적이며, 기업정보를 파악하기 어렵고, 선량한 국내기업의 피해 우려 등 집행 가능성이 낮다고 분석했다. 또 출자·출연기관은 정부기관에 포함되지 않아 일본의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가능성이 있고 대일본 정부 협상 및 WTO 판결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봤다.

특히 이 조례가 시행될 경우 대일본 투자위축, 일본의 한국제품 수입규제, 일본제품을 수입할 수 밖에 없는 국내기업 및 일본제품 거래 내국인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점 등 부정적 의견이 나왔다.

특히 국민운동으로 전개되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조례로 법제화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시종 지사는 “도의회의 입법 취지엔 공감하지만 국익과 도익이라는 큰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재의를 요구하게 됐다”고 말해 고민의 흔적을 드러냈다.

뜻은 좋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도의회도 도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마침 전국 17개 시·도의장들이 관련 조례안 입법절차를 중단하자고 결의해 도의회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이로써 이 조례는 자연스럽게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조례제정에 적극 나섰던 도의회의 결기가 절하되는 건 결코 아니다.

학생들과 도민들에게 전범기업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주고 이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3개월동안 지속되고 있지만 전국민적 일제 불매 운동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반짝하다 말 것’이라며 과소평가했던, 아니 빨리 끝나기를 내심 바랐던 일본 정치인들을 머쓱하게 하고 있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은 올해 일본이 저지른 경제도발은 그들에게 불매운동이라는 부메랑이 되고 있고 우리에겐 한·일 관계의 새로운 관계설정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숙명적인 이웃으로, 공존공영이 불가피한 관계다. 정치적으로 야기된 갈등으로 양 국민이 으르렁거릴 것까지는 없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충북도와 도의회 앞에 놓인 ‘재의’는 바로 포용·실용·합리성을 함축한 우리의 성숙한 한 단면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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