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동양일보]예년에 비해 좀 이른 추석이 지나갔다. 추석이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날만 같아라. (爲之語曰 加也勿 減也勿‚ 但願長似嘉俳日)’ 란 말이 생각난다.

이 말은 조선 순조 때 사람 김매순(金邁淳)이 지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에 실려 있는 말로 여기에는 열양( 한양, 오늘날 서울)에서 행해지던 세시 풍속 80여종이 수록 되어 있으며 비슷한 시기 홍 석모(洪 錫謨)가 편찬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와 함께 당시 민속을 다룬 귀중한 자료다. 추석보다 정겨운 말 ‘한가위’ 는 신라의 가배(嘉俳)에서 유래한 유서 깊은 이름이다. 여름철 땀 흘려 지은 농사가 결실하여 가을에 거두는 즐거움이 있기에 ‘5월 농부, 8월 신선’ 이란 말도 있다. 햇과일과 햅쌀로 빚은 송편, 술등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내고 이웃과 나누어 먹으니 살기가 어려운 옛날에도 이 날은 인심이 넉넉하고 푸근한 날이다. 박경리의 ‘토지’ 에도 ‘사람만이 아니라 강아지나 소, 말과 새 그리고 시궁창을 드나드는 쥐새끼들에게도 포식의 날’ 이라고 표현 했다.그래서 일상의 생활이 이날 같이 풍성하고 편히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는 말이 생겼다.

그런데 이 말이 떠오르자 문득 요즈음의 우리 사회를 생각하게 되었다. 정치를 불신하거나 환멸을 느낀 지 오래 되었다고 하더라도 국가 조직 중 최후의 보루인 법조계까지 신뢰가 떨어지고 학계 심지어 종교계까지도 ‘옥 의 티’ 를 넘어서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이에 비교되는 것으로 스포츠계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물론 거기에도 얼룩이 있다.

그러나 정정당당한 승부란 점에서 배울 것들이 많다. 일제 강점기에도 억울한 것을 스포츠로 풀 수 있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복싱 라이트급의 이 규한 선수는 일본 선수를 KO로 물리치고 국가 대표로 참가 하였고 마라톤의 손기정 역시 출전하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되었다. KO 시키고 결승선을 먼저 통과하면 되니까 가능하였다. 정치나 학계에서 볼 수 있는 이론이나 이념이 아닌 결과로 말하기에 노력과 정당함을 무기로 한다는 점에서 얼마나 당당한가?

그러나 결과가 좋으려면 그 과정이 또한 중요하다. 훌륭한 선수나 팀은 기본기가 잘 닦여 있고 기본기를 중요시 한다. 남자 프로 배구에서 7번 우승한 삼성 화재의 신 치용 감독은 작전 타임 때 늘 하는 얘기가 “기본이 되어야 해. 서브 캐치를 잘 해야 공격을 하지” 라고 했다. 지금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한참 잘 나가는 손흥민도 그 아버지의 혹독한 기본기 훈련과 체력 단련으로 오늘이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손흥민을 훈련시키는 모습을 지나가던 행인이 보고 ‘사람 잡는다’ 고 나무라니 아버지가 ‘내 아들 연습 시키는 것’ 이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노력하면 흙 수저도 금 수저가 될 수 있는 분야가 스포츠계다. 그 좋은 예가 1986년 청주 세광고 졸업 후 프로야구에 입문하려 했지만 지명을 못 받고 천신만고 끝에 연봉 300만 원 의 연습생으로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에 들어갔던 장 종훈은 온갖 고생을 참고 강도 높은 훈련을 하여 90년대 초 ․ 중반 한국 프로 야구를 대표 하는 최고의 홈런 타자가 되었다. 그 외에도 많은 선수가 무명 선수에서 유명 선수로 발돋움 했다.

또 맞춤식 교육을 제일 잘 하는 것도 스포츠계다. 전 남자 유도 국가 대표 팀 권 성세 감독은 실업 팀이나 대학 팀이 아닌 보성고 감독 출신으로 선수들을 지도 할 때 대개 자기가

잘 하는 기술을 강조 하여 그 기술을 주로 가르치는데 비해 각 선수의 소질이나 능력에 알맞은 기술을 잘 가르치는 지도자로 2003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그가 지도한 선수들이 금메달을 3개 (최 민호, 이 원희, 황 희태) 나 획득하도록 지도한 감독이다.

선수, 지도자 모두 진퇴가 분명한 것 또한 스포츠계의 최고 장점이다. 잘못이 있거나 성적이 나쁠 때 등으로 물러날 때 이런저런 핑계나 불평 없이 깨끗이 물러난다. 금년에도 포항 스틸러스의 최순호 감독과 대전 FC 의 고종수 감독이 성적이 부진하자 시즌 중임에도 사퇴 했다. 심판 판정에 의심이 갈 때 이의 신청도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대부분의 감독들이 하는 말이 ‘오심도 시합의 일부’ 라고 인정한다.

이외에도 많겠지만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를 보면서 하는 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스포츠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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