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소설가/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강준희/논설위원/소설가/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동양일보]시집 ‘악의 꽃’으로 유명한 19세기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시 중에 ‘알바트로스’라는 시가 있다.

이는 천신옹(天信翁)이라 일컬어지는 남양지방의 바닷새를 말하는데 이 새는 몸이 희고 우아하며 큰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새다.

이 새가 큰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유유히 날면 뱃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하늘의 왕자에 대해 찬미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이 새가 어쩌다 뱃사람들에게 붙잡혀 지상에 내려오면 그 긴 날개 때문에 걸음을 잘 못 걷고 뒤뚱거린다.

이 때 뱃사람들은 서로 놀리고 야유한다.

그러면 어찌 되는가.

좀 전까지도 하늘의 왕자를 군림하던 알바트로스는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맨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참으로 속상하는 일이다.

그를(알바트로스) 왜 이래야 하며,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안타깝다.

우리는 1999년 9월 어느 날을 기억한다.

그날(그때) 정치판에서는 정명훈(鄭明薰)이라는 세기적 음악인을 정치판에 끌어들이려고 갖은 수작을 다 부렸다.

정명훈이 누구인가?. 세계의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상급 지휘자가 아닌가.

때문에 국제 경쟁력을 갖춘 가장 확실한 한국 문화 예술의 가치요 국제 친선 사절의 민간 특등 외교관이다.

잘 알다시피 그는 20대의 약관에 벌써 지휘에 입문, 36세 때는 파리의 바스티유 오페라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지낸 음악 밖에 모르는 음악의 천재다.

그런데 이런 그를 그의 성가(聲價)에 구미가 당겨 복마전 같은 정치판에 끌어들이려고 집권당이 갖은 수단으로 러브콜을 보냈고 본인도 어찌 된 일인지 그 아수라장 속으로 들어간 듯했다.

사람들은 그러나 그가 세계적인 대지휘자로 명과 실을 얻으려면 음악에만 올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완전한 음악인으로 대성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그가 다가올 새 천년에 더 큰 재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이런 중에도 우리는 그때 국민배우 안성기가 신당 창당 발기인 권유에 끝내 고사했다는 보도를 보고 여간 다행이 아니구나 싶어 큰 위로가 됐다.

그는 그가 가야할 것이 무엇이고 또 어떤 것인가를 아는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연예계나 방송계에 얼굴이 알려져 유명세를 타는 이들이 정계에 진출한 예를 많이 보아왔다.

그들은 한 번의 정계 진출로 연예계로 돌아가는 이도 있고 정계에 그대로 남은 이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정계 진출을 하라마라 용훼(容喙)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명훈은 다르다. 정명훈은 우리가 아끼고 사랑해야 할 이마고이기 때문이다.

정명훈은 이제 한국의 정명훈이 아니라 세계의 정명훈이다.

때문에 정명훈은 대자유인의 코스모폴리턴으로 도남(圖南)의 뜻을 펴 당웅비대천하(當雄飛大天下)해야 한다.

이것만이 정명훈이 정명훈답고 또 우리가 그에게 바라는 희망사항이다.

그런데 우리는 솔직히 정명훈이 저 천신옹의 알바트로스가 될까봐 못내 걱정이다.

하늘의 왕자가 지상으로 붙잡혀 내려와 뱃사람들에게 놀림가마리가 되는 알바트로스.

이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제 이 해가 지나 몇 개월만 지나면 또 정치의 계절이 돌아와 전국이 요란할 것이다.

정명훈이 다행히, 참으로 다행히 정계에 진출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만일 그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었다면 어떡할 뻔 했는가.

생각할수록 모골이 송연해진다.

번번이 겪는 일이지만 다음 총선에도 별의별 사람이 다 나올 것이다.

세상에 조금만 알려지면 정치권이 어중이떠중이 장삼이사(張三李四) 갑남을녀(甲男乙女) 가리지 않고 불러낼 테니까.

졸부에, 연예인에, 요리사까지 말이다.

심지어는 어로불변(魚魯不辨)의 판무식까지 말이다.

참으로 하우불이(下愚不移)로다, 하우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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