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국회의원

김종대 국회의원

[동양일보]지난주에 국회의사당 7층에서 만난 사무처의 의사국장은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국회 근무 30년이 넘는 동안 이번 20대 국회 같은 국회는 처음 겪는다”고 했다. 정국 파행과 의사일정 마비는 20대 국회 내내 일상이 되고 말았다. 어쩌다 국회가 열린다 해도 정상적으로 국회가 운영되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국회 본회의에만 1만7000건의 안건이 계류 중이고, 처리율은 17%밖에 되지 않는다. 예전에도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13대, 14대, 17대 국회에서는 확실히 정치가 살아 있었다. 이 시기를 국회에서 보낸 의원이나 보좌진들은 지금 만나도 “우리가 세상을 바꿨다”는 자긍심이 있다. 이 시기에는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존중받았고, 탁월한 통찰력에는 진영을 초월한 존경이라는 게 있었다. 그런데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되고 난 이후 19대 국회부터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그저 그런 직장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것이 국회 직원들에게는 소명과 직업의식의 실종으로 이어졌다. 지금 20대 국회의 젊고 생기발랄한 직원들조차 대화를 나눠보면 국회가 뭘 하는 곳이지 모르는 직원들이 절반이다. 적어도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당찬 목표의식도 찾아보기 어렵다. 직업의식과 전문성이 밥 먹여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국회에 들어온 필자도 냉정한 질문은 피할 수 없다. 나는 과연 나 자신의 전문분야에 깊이 몰입하여 탁월한 정책성과를 거양한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던가. 어차피 국회가 파행으로 갈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대충 준비만 하다가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허무하게 끝나버린 적이 한 두 번이었던가. 그럴 때마다 좌절하고 체념하면서 국회의원의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는가. 특별한 일도 아니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정책에 전념하기보다 지역구 행사나 쫓아다니는 게 습관이자 일상이 되어버린 20대 국회에서 정치는 확실히 죽었다. 정치는 죽었지만 정치인이라는 기득권은 살아있기 때문에 돈과 표가 되는 곳이라면 지옥이라도 달려가겠다는 정치인 특유의 부지런함은 살아 있다. 지역을 다니다보면 하도 인사를 많이 해서 이제는 전봇대만 봐도 허리가 자동으로 굽혀진다. 방송에 나가서 사이다 발언 한 마디하고 댓글부대 몰고 다니는 걸 정치의 기쁨으로 안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며 독설을 퍼붓고 열광하는 지지 세력을 모아 패거리를 만드는 걸 정치적 자산으로 안다.



이런 일상을 정치의 본질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막스 베버에게는 정치인에게 신념의 윤리와 책임의 윤리가 있다고 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굽히지 않는 신념, 그리고 그 신념의 결과에 책임질 줄 아는 것, 이것이 베버가 말한 바로 직업으로서의 정치다. 참으로 무책임하게 국민을 전쟁으로 내 몬 군주 빌헬름 2세와 무능한 정치인을 보면서 그는 근대적 원리로 정치의 본질을 재구성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시기에 다시 비극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경고대로 듣지 않은 독일은 또 2차 대전에서 파멸했다. 지금 불확실한 주변정세로 불안이 고조되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시민을 닮은 정치가 아니라 기득권을 닮은 정치는 빨리 해체할수록 좋다. 오로지 대결, 오로지 극단으로 치닫는 거대 양당정치를 해체하고 소명과 직업윤리가 구현되는 길로 우리는 위대한 항해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 정치는 대전환의 시대에 개혁을 추동할 밝고 힘찬 에너지를 기다리고 있다. 선거법 개정으로 대의정치의 비례성을 확보하고 그 다음 단계로 제대로 일하는 국회로 거침없이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국가 개조와 혁신의 유일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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