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동양일보]북의 비핵화를 위한 북미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제3국인 싱가포르 센토스(평화와 고요를 의미) 호텔에서 2018년 6월 12일 개최되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을 핵심으로 하는 4개항의 ‘센토스 선언’이 발표되었다. 대한민국에 희망의 봄바람이 불어왔다. 에베레스트 산보다 높게 보였던 북의 장벽이 빗장을 풀고 남북정상이 분단의 현장인 판문점에서 ‘평화와 번영의 소나무’를 심으며 찬란한 미래를 열어나갈 것을 다짐하였다.

그러나 북의 비핵화는 별 진전 없이 그 해를 넘겼고 260일 동안 북미 간에 밀당(밀고 당기기)이 계속되다가 지난 2019년 2월 27일부터 1박 2일의 일정으로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 번째로 북미회담이 개최되었다. 이 때 또한 북이 비핵화에 대한 납득할만한 조치 및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배수진을 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임으로써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결연한 태도로 회담도중 자리를 떴고 이로써 두 번째의 회담은 결렬되었다. 무합의(no deal)로 끝났다. 그 뒤 북미 수뇌부 간에 서신을 주고받고 실무자들 간에 상호방문이 이루어졌으나 형식적인 것이었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개최된 G20회의 참석차 일본에 온 미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 남북 분단의 현장인 판문점에서 남북미 수뇌부 간에 극적인 만남을 가졌고 이어서 북미 정상 간에 북의 비핵화 완성을 논의하였다. 이를 계기로 계속적인 행보를 기대하였지만 가시적인 움직임이 없이 교착국면이 계속되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9월 9일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미국에 대화재개의 신호를 보냈고 이 달 내에 북미 간 실무자만남이 예고되었으나 오늘까지 성사되지 않았고 제3차 정상회담의 연내개최 가능성만 과제로 남겨 놓고 있다. 그런가하면 강경파였던 미 대통령 존 볼턴을 사퇴시키고 유연한 스타일의 로버트 오브라이언 새 보좌관을 임명하였다.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외교정책의 강경파로 평가되지만 존 볼턴처럼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기주장을 펴며 강경노선을 주도하기보다는 조력자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만큼 북한이 극도로 거부감을 보였던 선 핵폐기, 후 보상 방식의 ‘리비아 모델’은 멀어진 것이다. 여기에다 미 트럼프 대통령은 “북의 최고책임자가 비핵화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 굳게 믿고 북미 간에는 지속적으로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등의 안이한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은 때로는 제재라는 채찍을, 때로는 안보나 경제이익 등이라는 당근을 던짐으로써 북으로 하여금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와 같은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대응은 별다른 효과를 거양할 수 없다는 것을 수없이 겪어왔으면서도 계속 그러한 전략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싱가포르에서 만나고 베트남에서 회동하는 등 한국과 우방에 기대를 한껏 부풀게 해 놓고는 허송세월을 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이는 한국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크게 결례하는 일이다. 꼭 어린 아이들이 벌이는 소꿉장난 같다. ‘정치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야. 더구나 국가 간의 협상은 더욱 복잡한 것이야, 외교는 고도의 예술로 국가 간, 국제사회 간의 이해가 얽히고 설키어 풀기가 무척 힘든 것이야’라며 변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그러하듯 비핵화 해법도 단순화하면 길은 쉽게 뚫리는 것이다.

도대체 비핵화는 누구를 위한 조치인가. 누구보다 자국의 미래를 위한 방책이 아닌가. 모든 인류는 태어날 때부터 평화를 누리고 살 권리(천부인권)를 가졌다. 그런데 비하여 핵은 수많은 인명을 일거에 살상하는 가공의 인류파괴 무기이다. 그래서 개발 및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대도 북이 굳이 핵을 개발하여 세계를 공포의 위협에 사로잡히게 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경제를 개발하여 국민의 복지를 도모하는 것이 국가가 취할 태도가 아닌가. 그렇기에 망설이거나 지연시킬 명분이 전혀 없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은 더 이상 ‘북의 비핵화’를 흥정이나 협상의 대상이 되게 해서는 아니 된다. 필수임무 및 의무로 봐야 한다. 북한이 진정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원한다면, 그리고 미국이 인류의 평화를 위해 ‘북의 비핵화 완성’을 실제목표(real goal)로 설정하였다면 “북미관계가 원활하다느니 북 최고책임자와 사이가 좋다”느니 등의 포장 및 선전용 수사(修辭)만 되풀이 하지 말고 단호하고도 확고한 태도를 취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은 북의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북미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북 비핵화의 완전한 로드맵을 제시, 차질 없이 이행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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