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 희 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그놈 참 엉뚱한 놈이제. 이 말 하믄 저 말 하구 말여.” “뭐가 옳은지 그른지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엄벙덤벙하는 놈이제.” “그 녀석 그 퉁어리적은 행동 때문에 어느 누가 일을 맡길 수가 있었남.” “일을 맡겨? 애초에 돌려놨던 앤데 일을 맡겨?” “그래도 어디 그럴 수 있남 같은 동네서 빤히 아는데 그 놈만 층하할 수 없어서 믿거라 하고 나뭇단 쌓는 걸 맡겼더니만 그리도 무책임하게 중도에 내방쳐 두고 간다온다 말없이 사라져버릴 줄 누가 알았남.” “음식 같잖은 개떡수제비에 입천장 뎄구먼.” “맞어, 맞어, 우습게 알고 맡긴 일이 그야말로 해를 입은겨.” 그런데 아낙들은 같은 놈을 두고 말들이 다르다. “그 자석 그거 어리숭해 보여도 얼마나 제 알속 차리는지 몰러.” “그렇다니께 얼매나 능청맞고 천연덕스럽다고.” “이웃집 개도 부르면 온다고 했는디, 이 놈은 불러도 못 들은 체 하고 딴전을 부리고 있는겨 능청맞게.” “테깽이가 위험할 때를 대비해서 구멍 셋을 파 논다고 하더니만, 얘는 제 어정쩡한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몇 가지 술책을 짜놓고 있는 그런 자석이라니께. 아마 그 못들은 척 한 것두 제 이득에 아무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껴.” “그려, 맞어, 제 맘에 어긋나는 일이라도 있으믄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간댜.” “그런거 보믄 속은 멀쩡한 놈여 안 그려?” 그러니까 남정네들은 이 놈을 제 몸 하나 못 추스르는, 아무 대책 없는, 어리석은 놈이라고 하는 반면, 아낙들은, 멀쩡한 놈인데 제 알속을 차리기 위해 우정 능청스럽게 딴전을 부리는 그런 놈이라는 거다.

그런데 이 놈이 가을로 들어서면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찬바람머리에 생사를 넘나드는 병을 되게 앓았다. 무슨 병인 줄은 모르나 병중에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해서 잠을 잤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네 노인장들은 그게 ‘이승잠’이라는 건데, 곧 ‘이 세상에서 자는 잠’이라는 것으로, 혹독한 열병을 앓을 때 그런 잠을 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부모들은 그냥 지켜만 보며 깨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 이 놈이 몇날며칠 만에 마침내 그런 잠에서 깼는데 혼수상태로 헛소리를 해대고 허우적대더니만 또 한참을 잠에 들어 있다가 깼는데 이번엔 목마르다는 시늉을 해보이면서 물을 찾더라는 것이다. 그래 제 엄마가 하도 반가워서 얼른 물을 한 사발 그득 갖다 줬더니 이걸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나서 제 엄마를 빤히 바라보더라나. 그래서 제 엄마가, “이제 정신이 드냐. 이 에미 알아보겄어?” 하니, 머리를 끄덕끄덕해 보이며 주위를 두루두루 둘러보더라는 거다. 하여 이때부터 죽과 밥을 번갈아 먹기 시작하면서 일어나게 됐는데, 어인 일인가 녀석이 확 달라졌다는 것이다. “아부지, 이제부터 제가 농사일 다 할게 아부진 이제 일손 놓세유.” 하며 제 아비의 손에서 낫을 빼앗는가 하면, “이장님, 오늘 동네 풀 베고 청소하는 날, 지가 소독하는 분무기 책임질게유.” 하는 등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고 자세하며 솔선수범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이러니 동네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낙들이 가만 있질 않는다. “아녀, 보니께 인자 능청 떠는 게 아녀. 진실한 맘여.” “전에는 이악해 보이더니만 인자 아녀. 제 몸 사리지 않는 게 눈에 보인다니께.” 칭찬이 끊이지 않고 자꾸 이어간다. 남정네들은, “그녀석 참, 앓고 나더니만 사람이 백팔십도 달라졌어. 우리 동네 보배여 보배.” “이장을 인제 아무래도 바통을 넘겨야겄어.” 하는가 하면, 노인장들은, “제 할아버지가 살었을 적에, 우리 집안에 모도리가 나왔다고 하더니만 그게 허술 수로 한 말이 아니구먼.” “그러구 보니 인제 생각나네. ‘모도리’ 그려, ‘아주 야무지고 빈틈없는 손주’ 보았다고, 인제 한숨 놓았다고 대견해 했었지.” “근데 어디 그랬어. 저만 아는 잇속 바른 놈이라고만 여겼지.” “그로 보믄 사람은 두고 봐야 알 일여.” “그러니 조상의 도움이 없다고만 할 게 아녀. 제 할아버지가 앞을 내다본 일이며, 다 죽는다고 한 걸 살려낸 것도 따지고 보믄 다 조상이 돌본 덕 아녀.” “그러는 자네도 그럼 한번 모도리마냥 되게 앓고 나봐. 딴 사람 좀 되나?” “그게 아무나 되남, 그럴 수만 있다면 한번 그래보지 뭐.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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