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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유리창/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동양일보
  • 승인 2019.10.07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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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제천 세명고 교사
이동진 제천 세명고 교사

[동양일보]우리 학교에는 학생들이 틈 날 때 마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그 시간을 누적해 이수 여부를 결정하는 ‘독서원정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점심시간 도서관은 책 읽는 아이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그리고 도서관 한 쪽 벽면에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문장이 커다랗게 프린트돼 그 풍경의 배경이 돼 준다. 나는 그 문장이 우리 아이들을 든든히 지켜봐 주고 있는 것만 같아 늘 흐뭇한 마음이 든다.

원래 이 문장은 CBS PD이기도 한 정혜윤 작가가 각 분야의 유명 인사들과 독서를 테마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책의 제목이다.

우연히 도서관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책인데, 제목만으로도 이토록 강렬한 인상을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바로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이 문장을 나는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도서관 벽은 물론이거니와, 독서노트, 단편 소설 읽기 교재, 심지어 휴대폰 배경화면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서까지 적극 활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애정이 식질 않았다. 오히려 문장을 다시 되새길 때마다 새로운 설렘이 마음속에 가득해 진다.

내가 이 문장을 이토록 사랑하게 된 것은 바로 사연 때문이다.

기꺼이 자신의 삶을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에는, 평생 동안 기억에 각인될 만한 어떤 사연이 그 ‘한 권’에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그 사연으로 인해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을 상상해 보는 것은 나에게는 가장 흥미로운 일이었다.

나또한 초등학교 2학년 때 포아고베의 ‘철가면’을 읽으며 두근거림을 이기지 못해 처음으로 혼자 밤을 새웠던 강렬한 기억을 내 독서의 출발점으로 믿고 있다.

또 학교에서도 ‘키싱 마이 라이프’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은 한 권의 책이라고 자랑했던 아이, 세상에서 책 읽는 것이 가장 싫다고 해 놓고, 내가 툭 던져 준 이효리의 ‘가까이’를 며칠 씩 들고 다니며 꼼꼼히 읽더니, 이 책은 반드시 소장해야겠다며 살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봤던 아이 등 사연이 있는 ‘한 권’에 대한 많은 미담들을 알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나온 뒤, 내가 제일 흥분되었던 건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교육과정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앞으로 한 권, 한 권에 담길 우리 아이들의 사연들이 굉장히 기대가 됐다.

그런데 최근 급작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한 권 읽기와 관련된 책들과 수업 사례들을 공부해 보니, 사연보다는 ‘한 권’을 도구로 하여 특정 역량들을 기르는데 무게 중심이 쏠려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비판적 읽기 능력, 쓰기 능력, 협의와 경청 능력들 모두가 너무 중요한 역량들이기는 하지만, 책 한 권으로부터 만들어질 우리 아이들의 개인적 경험과 추억에 대한 배려는 다소 부족한 것 같아 많이 아쉬웠다.

아이들이 책을 선택하고 읽는 전체 과정. 즉 독서를 자기 삶의 경험 속으로 구체화는 것을 돕는 수업에 대한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독서원정대 프로그램에서 한 학생이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힘들게 힘들게 겨우 다 읽었다며 나를 찾아왔다. 감정을 다스리며 읽기에는 너무 힘든 책이기는 하지만 엄마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책은 처음이었다며 추천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오늘도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다. 이 한 권이 그 아이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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