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필 충북도 법무혁신담당관

정호필 충북도 법무혁신담당관

[동양일보]행정심판은 행정구제제도의 하나로서 ‘행정청의 위법․부당한 처분이나 부작위로 권리 또는 이익을 침해받은 국민이 이의 회복을 위해 행정기관에 제기하는 권리구제절차’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행정심판은 결정을 권고의 형식으로 내리는 민원에 비해 행정기관을 구속하는 강력한 법적 효력이 있으며, 행정소송에 비해 신속․간편하고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 위법성, 부당성, 합목적성까지 판단해 구제의 폭이 훨씬 넓고 효율적인 권익구제 제도이다.

충청북도 상반기 행정심판 접수건수는 255건, 처리건수는 247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8.7%, 30%가 증가해 가파른 증가율을 보이고 있으며, 총 247건 중 76건이 인용돼 30.7%의 인용율을 나타내는 등 최근 3년간 높은 인용율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행정심판의 제도적 장점과 더불어 도민들의 행정에 대한 관심과 권리구제 의식이 높아졌고 그로 인하여 행정심판위원회가 도민과 함께하는 행정기관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행정심판의 경우 시․군․의회 또는 그 소속 행정청에서 행한 처분에 대해 심리․재결하는 것으로 자칫하면 ‘가재는 게편’, ‘초록은 동색’이란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행정심판위원회는 심판청구 사건을 외부압력 없이 심리․재결할 수 있도록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회의에 참석하는 위원은 각 분야의 전문가로 3분의 2이상이 공무원이 아닌 민간위원으로 구성돼 심리의 전문성과 함께 공정성․객관성을 토대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올해 3월부터 경제적 사유로 대리인 선임이 곤란한 청구인을 대상으로 국선대리인을 지원함으로써 경제적 약자의 실질적 권익구제 강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이즈음에서 행정청 처분에 상응해 권익구제 절차로 운영되는 행정심판의 가치지향성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행정청의 위법․부당한 처분이나 부작위로 권리 또는 이익을 침해받은 도민이 행정심판을 청구하면 행정심판위원회에서 심리․재결을 통해 침해받은 권리 또는 이익을 회복시키는 것이 행정심판 제도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일 것이며, 그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추구해야할 가치는 ‘공정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의 글을 인용하자면, 미국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우연성․아이러니․연대성’이라는 책에서 ‘마지막 어휘(Final Vocabulary)’라는 말을 남겼는데 마지막 어휘는 자신의 행동과 신념, 그리고 삶을 정당화하는 데 필요한 단어라고 한다.

개인 혹은 집단이 딜레마에 빠지거나 결연한 결단을 내릴 때 의사 결정이나 판단을 내리는 데 최후까지 의지하는 신념을 의미하며, 마지막 어휘는 보통 의식 아래 있다가 삶이 흔들릴 때 표면 위로 솟아오르고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결연한 어휘라고 한다.

예를 들면, 간디에게 마지막 어휘는 ‘비폭력’이고 부처에게는 ‘자비’, 공자에게는 ‘인(仁)’이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혁신’이고 리처드 브랜슨에게는 ‘상상’이다.

저마다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한 가지 단어,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을 만큼 내 삶을 이끌어 가는 견인차와 같은 단어가 있을 것이다.

그 마지막 어휘가 지금 여기서의 삶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소중하고 숭고한 사람, 자기를 넘어 타자와 공동체로 연결되는 삶을 꿈꾸게 만든다. 이렇듯 청구사건을 심리․재결함에 있어서 행정심판위원회에서 최후까지 의지하는 신념, 즉 마지막 어휘는 ‘도민의 권리․이익구제 및 공정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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