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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은사죽음
풍향계/ 은사죽음
  • 동양일보
  • 승인 2019.10.15 2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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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향랑자香娘子) 는 우리말로 바퀴벌레다. 이 놈의 몸은 1-1.5cm인데 납작한 타원형으로 되어 있고 색깔은 황갈색이다.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여 음식물이나 의복에 해를 끼친다. 하여 바퀴벌레라 하면 사람들은 기피하여 약을 써서 퇴치한다.

향랑각시(香娘閣氏) 는 노래기다. 이 ‘노래기’는 20-30 개의 마디로 된 몸통의 각 마디에 두 쌍의 다리가 있고 음습한 곳에 모여 사는 벌레다. 건드리면 둥글게 말리며 고약한 노린내가 난다. 이 노래기를 한자어로는 ‘향랑각시(香娘閣氏)’ 라 하는데, 그래서 지난날엔 음력 2월1일에, ‘노래기는 빨리 먼 데로 사라지라’ 는 뜻으로 ‘향랑각시 천리속거(千里速去)’ 라는 한자어를 흰 종이에 먹으로 써서 기둥이나 벽, 서까래 같은 곳에 부적으로 붙였다. 그만큼 노래기는 이름 그대로 노린내를 지독하게 내는 놈이라 우리 주위에서 어른거리지 말기를 바랐다.

“그 음흉주머니 포근이 말여, 인물 번듯하고 덩치 우람한 놈이, 염치도 체면도 없이 치사하게 구니 그야말로 노래기 회도 먹을 놈 아녀?” “누가 아니랴, 그 선비 같은 제 불알친구 영섭이를 의뭉스럽게 부추겨서는 그 떳떳치 못한 걸 억지로 하도록 꼬드겼다니 말여.” “떳떳치 못한 거라니?” “거 읍내 술집에서 데려왔다는 은근짜와 하룻밤 자게 했다는겨.” “그 밤마다 남정네 바꾼다는 게집하구 말여. 제 색시 있는 영섭이를. 참 그놈 얼토도 당토도 않은 놈 아녀?” “그렇다니께.” “그래 실지로 그 은근짜와 잤다는겨?” “자긴,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그 영섭이가 그 꼬드김에 넘어갈 것 같어?” “그럼 포근인 또 은사죽음한 게야.” “뭬야 ‘은사죽음’?” “은사(隱事)란, ‘비밀로 감추어야 할 일’이라는 것인데 이게 ‘죽음’이라는 말과 합쳐, ‘마땅히 보람이 있어야 할 것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고 그냥 말아버린다’ 는 뜻이야.” “그러니까 포근이가 하는 일은 언제나 성공하질 못하고 도루묵이 돼 버린다. 이거지?” “그려, 그려 ‘은사죽음’, 아주 포근이한테 꼭 맞는 말일세.”

포근인 매사가 그렇다. 제 능력은 생각지도 않고 큰일에 부질없이 덤벼든다. 그래서 아버지 되는 사람이 그를 앉혀놓고 타일렀다. “나는 무식해서 한자어로는 모르지만, 그 말뜻은 알고 있어 하는 말이다. 즉 사마귀라는 놈이 제 힘은 모르고 달려오는 마차와 맞서 마차를 멈추게 하려고 두 앞발을 세워 마차를 세우려고 했다는 게다. 당치도 않는 일 아니냐. 네가 그 짝이야. 너로선 얼토당토않은 일을 해내려고 하니 이루어지는 게 하나도 없다. 니가 니를 알아야지. 그러니 당최 모든 일을 허술하게 생각지 말아라!” 했고, 그 어머니 되는 이는, “이번 일도 그렇다. 내외간 잠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아주 좋은 금실인 영섭이를 어트게 해볼려고 한 일 자체가 잘못 생각이다. 물론 지나치게 꼼꼼하고 자세하게 구는 것도 좋은 일은 못 되고, 찰찰이 불찰이라 해서, 지나치게 살피는 것도 살피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고는 했지. 하지만 니는 도무지 가당치도 아니한 짓을 한단 말이다. 오죽하믄 니를 두고 동네에선, 하는 일이 결국엔 유야무야해진다는 뜻으루 ‘은사죽음’이라는 별명을 달았을까. 니는 물론이고 우리 조상과 니 부모인 이 엄마 아부지를 욕 먹이는 일이다. 니 그 번듯한 인물과 돌덩이 쇳덩이 같은 덩치 값을 해야지 언제까지 은사죽음이란 별명을 달 작정이냐. 하니 알아서 처신해라.”

동네노인장들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너같이 인물 미끈하고 깍짓동만한 덩치를 가진 젊은이는 아메 본동은 물론이고 이웃동네 아니 읍내나 대처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라.” “그런데다 군대 갔다 왔겄다 그리고 네 나이 삼십이 내년이고 아직 미장가 아니냐. 워뗘 일등 신랑감 아녀?” “그 뿐여 시골에선 그래두 집안 택택하겄다 과년한 누이동생 하나 있지만 시집가버리면 되고 하니 색시 감이 줄을 설 자리지.” “근데 한 가지 버려야 할 게 있어. 뭔지 자네도 알지?” “저저, 얼굴 빨개지는 것 보니께 알고 있구먼. 바로 그 ‘은사죽음’이라는 걸 없애게!” “암, 암 그것만 버리면야 중매 설 사람 여기 줄을 섰지.”

집으로 돌아오는 포근의 얼굴이 활짝 피고 발걸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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