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가경동 여공·남주동 주부 살인 확인
‘난감한 경찰’ 청주서도 엉뚱한 용의자 검거
8차 범인 윤씨측 정보공개청구 등 재심 속도

[동양일보 이도근 기자]화성연쇄살인사건 피의자로 정식 입건된 이춘재(56)가 화성 9~10차사건 사이 4개월 간 청주에서 여성 2명을 잇따라 살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들도 피해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옷가지로 손발을 묶는 화성사건의 판박이였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15일 브리핑에서 이춘재가 10건의 화성사건을 비롯해 수원과 화성에서 각 1건, 청주에서 2건의 살인사건을 자백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이날 특정한 이춘재의 청주 사건은 1991년 1월 청주 여공 살인사건, 1991년 3월 청주 주부 살인사건이다. 이들 사건은 화성 9차사건(1990년 11월)과 10차사건(1991년 4월) 사이에 발생했다.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던 이춘재는 1991년 전후로 화성과 청주 공사현장을 오가며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 여공 살인사건은 1991년 1월 27일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가경택지개발지구 공사현장 콘크리트관 속에서 방직공장 직원이던 박모(당시 17세)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박양은 속옷으로 입이 틀어 막히고 양손이 뒤로 묶인 상태로 숨져 있었다. 화성사건의 피해자들과 비슷한 모습이다.

이춘재는 두달 뒤인 1991년 3월 7일 청주시 남주동에서 발생한 주부 살인사건도 자신이 했다고 자백했다. 흉기에 찔려 숨진 주부 김모(당시 29세)씨는 발견 당시 고무줄에 양손이 묶여있었고, 옷으로 입이 틀어 막혀 있었다. 경찰은 당시 성폭행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미제로 남아있던 이들 사건은 모두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손을 결박하는 등 화성사건의 ‘시그니처’(범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성취하기 위해 저지르는 행위) 수법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화성사건과의 연관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여공 사건의 경우 경찰은 당시 상습절도죄로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박모(당시 19세)군을 유력용의자로 체포했으나, 재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남주동 사건 당시에도 경찰은 피해자 이웃집에 살던 대학생 정모(당시 21세)씨를 유력 용의자로 조사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정씨를 풀어줬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춘재는 남주동 사건 한 달 뒤 화성 10차사건을 저질렀다.

이춘재가 자백한 청주사건은 2건이지만 범행수법이나 행적을 볼 때 당시 청주지역 미제사건 중 남은 사건 중에도 그와 연관된 사건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미제사건 5건은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고 일부 사건에선 성폭행 정황과 화성사건의 ‘시그니처’ 행위가 있었다. 이들 사건도 이춘재의 짓으로 밝혀진다면 그는 처제 살인까지 청주에서 4건 이상의 연쇄살인을 저지른 셈이 된다.

경찰은 모방범죄로 결론 난 화성 8차사건도 이춘재가 저지른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이와 관련, 이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모(52)씨 측은 당시 수사기록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등 본격적인 재심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춘재는 현재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성폭행 등을 자백한 상태다. 경찰은 이 중 이춘재의 DNA가 검출된 3·4·5·7·9차 등 5건에 대해 강간살인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해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나머지 사건에서도 DNA가 나오거나 그의 범행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추가 입건할 방침이다.

다만 이들 사건의 공소시효가 모두 끝나 이춘재의 입건이 처벌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학계와 법조계 등의 자문을 얻어 이춘재를 용의자 신분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며 “공소시효가 지나 강제수사 등의 실효성은 없으나 수사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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