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분명 잘못했다. 선수가 관중에게 욕설을 한 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지탄받아 마땅하다. 관중이 없는 프로선수는 존재할 수 없기에 관중을 향한 직접적인 행동은 절제돼야 한다. 경기에 실제 영향을 주는 소음 같은 것도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프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경기 도중 관중을 향해 손가락 욕을 하고 골프채를 땅에 내리친 프로골퍼에게 비난이 거셌디. 물론 중징계가 내려진 것은 당연하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지난 1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프로골퍼 김비오(29)에게 자격정지 3년과 벌금 1천만 원을 부과했다. 이에 따라 김비오는 KPGA가 주최·주관(공동 주관대회 포함)하는 국내 경기에 3년동안 출전하지 못하게 됐다. 2019 KPGA 코리안 투어에서 거둔 모든 기록 순위에서도 제외된다. 3년간 대회 출전 금지는 선수의 생명줄을 끊는 것과 같다.

김비오는 지난달 29일 막을 내린 KPGA 코리안투어 DGB금융그룹 볼빅 대구경북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경기중 불미스런 일이 발생했다.

김비오는 마지막 라운드 16번 홀(파4)에서 티샷하는 순간 갤러리 틈에서 누군가가 누른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 소리에 움찔하면서 드라이버샷을 망쳤다. ‘삑사리’ 난 볼은 100여m밖에 나가지 않았다. 프로선수에겐 치욕이자 치명타였다. 더군다나 경기 후반 들어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치던 선수에겐 더욱 그랬다.

감정을 이기지 못한 김비오는 갤러리를 향해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웠다. 이어 드라이버를 땅에 내리쳐 잔디를 훼손했다. 이 모든 것이 TV 생중계를 통해 전국의 골프팬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파문은 더욱 확산됐다.

선두를 달리고 있던 김비오는 티샷 실수에도 불구하고 16번 홀을 파로 막고 끝내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2승, 통산 5승이다.

그런데 기쁨은 여기서 끝이었다. 경기를 마치면서, 시상식 자리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거듭 사과했지만 팬심은 싸늘했다.

이번 사건으로 김비오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는 지워지지 않고 한국골프사에 남게 될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골프를 ‘신사 스포츠’라고 말한다. 다른 운동처럼 상대와 마주해 몸을 부딪쳐가며 승패를 가리는 게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야 하는 운동이다. 골프를 멘탈운동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진정한 골퍼라면, 특히 프로선수라면 갤러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자신만의 경기를 펼치는 자신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설령 경기 흐름을 방해하는 갤러리의 행동으로 샷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다 하더라도 이를 감내하고 소화해야 하는 게 프로골퍼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샷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골프채를 땅에 내리치는 행동을 보이곤 했다. 그런 행동에 미간을 찌푸리는 팬들이 적지 않았지만 징계로 이어지진 않았다. 혼자만의 분풀이로 비난을 받았지만 골프장을 찾은 갤러리를 향해 욕하거나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김비오와 다른 점이다. 김비오가 팬들의 비난을 받고 징계까지 받은 것은 이유야 어떻든 화풀이를 갤러리에게 직접 한데 있다.

스포츠가 다 그렇듯이 골프도 팬들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한다. 많은 팬들을 확보해야 TV 생중계도 할 수 있고 든든한 후원자를 만날 수 있다.

KPGA가 가혹하리만치 김비오에게 중징계를 내린 것도 이런 배경을 무시할 수 없어서 일 거다.

김비오는 자신의 격한 행동으로 그에 상응한 처벌을 받았다. 일각에선 소음을 극복하지 못할 정도라면 스크린골프를 하든지, 귀마개 끼고 골프치라는 험한 말도 한다.

그렇다면 김비오만 잘못했는가. 샷 할때 카메라 셔터를 눌러 김비오를 움찔하게 만들어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한 갤러리의 행동은 뭐냐는 거다. 선수에게만 무한 인내를 요구할 게 아니라 골프팬으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한 갤러리도 원인 제공자라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기 보러 골프장 갈 정도면 골프 치는 사람일 테고 골프 에티켓쯤은 상식적으로 알 만한 사람일 게다. (사과한다고) 징계결과가 되돌려지지는 않겠지만 숨어있지 말고 진심으로 김비오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한다. 그게 ‘신사 스포츠’ 골프를 즐기는 사람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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