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캐나다로 이민간지 40년이 넘는 친구부부가 한국에 왔다. 20대 젊은 나이에 교사직을 사직하고 용기있게 떠나더니, 현지은행의 정규 직원으로 취업해 캐나다 전국에서 최고의 사원으로 몇 번씩이나 뽑힌 능력있는 친구이다.

친구는 과거에도 포상이거나 출장을 겸해서 가끔씩 나오긴 했었지만, 빡빡한 일정 사이에 잠깐 얼굴만 보고 떠나야 해서 늘 아쉬웠는데, 이번엔 은퇴를 하고 여유있게 즐기려 찾아와 모처럼 기쁜 해후의 시간을 가졌다. 지난해 친구 집에 머물며 함께 알래스카 크루즈를 다녀온 친구들과 여행 후일담을 나누며 찰옥수수도 사먹고, 청남대를 찾아서 익어가는 가을 풀잎냄새를 맡으며 한가로운 산책도 했고, 때마침 열린 청주 문화재야행에 참여해 중앙공원의 망선루에 올라 100년 전 반찬 등속 레시피에 의한 다과상을 받아보는 호사도 누렸다. 그리고 이곳 친구가 제공한 전원 속 에어비앤비 ‘안단테 칸타빌레’에서 샴페인을 나누며 연어파티를 하고 쾌적한 잠자리를 했다.

모두가 여고시절로 돌아가 수다가 끊이지 않았던 것은 함께 공유하는 추억이 많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로 40~50년 전의 과거에 고착돼 있는 친구의 기억은 이곳 친구들보다 훨씬 선명한 기억을 갖고 있었다. 어렸을 때 살던 집, 어렸을 때의 놀이, 친구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 초·중·고 학교와 선생님들, 그리고 입맛이 기억하고 있는 옛 음식점 등....그래서 우리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시내를 돌아보고자 했고, 친구는 그 사이 달라진 도시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친구가 감탄한 것도 높아진 빌딩들이 아니라, 파란 하늘 마래 주황빛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였다.

친구가 고향에 와서 제일 먼저 찾은 음식도 ‘올갱이국’이었다. ‘올갱이국’이라니. 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잊고 있던 음식이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요즘 먹는 음식은 대부분 외래음식이거나 한식이라고 해도 퓨전화된 것이 대다수였지, ‘올갱이국’을 먹은 지가 언제던가. 그런데 친구는 ‘된장을 풀고 부추를 넣은 올갱이국’이 먹고 싶다고 추억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다. 올갱이가 다슬기의 사투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올갱이국’은 다슬기국이 아닌 ‘올갱이국’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맛이 날 터였다. 수소문을 해서 나름 유명하다는 서문동 맛집을 찾아갔더니, 공교롭게도 휴일이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쉬움에 발길을 돌리려는데 외국에서 온 친구라는 소리에 외출을 하려던 주인아주머니가 잠깐만이면 되겠느냐며, 특별히 올갱이국을 끓여서 내놓는다. 이런 행운이. 그리고 저녁은 도토리묵밥으로 식사를 했다. 도토리전과 도토리비빔국수, 도토리무침, 도토리묵밥 등 토속적인 음식을 나누며 과거로 입맛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캐나다 친구 집에 갔었을 때도 그런 것을 느꼈었다.

된장의 맛이 우리가 요즘 먹는 것보다 더 한국적인 맛이고, 배추김치 열무김치도 더 한국적인 김치이고, 인절미며 쑥떡이며 모든 맛들이 그 옛날 엄마의 손맛이 그대로 남아있는 전통의 맛이었다. 그럴 것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조미료며 소스며 양념 등이 변화해 왔지만, 옛날 맛을 혀 끝에 담고 간 친구에게는 그 맛을 지키려다 보니 오히려 우리보다 더 전통적인 맛을 지켜왔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놀란 것은 맛만이 아니었다.

영어 속에서 사는 친구지만, 친구는 이곳 도시의 영어 간판들에 낯설어했다. 한국인지 캐나다인지 모를 정도로 영어가 많이 쓰여 있고, 국적불명 외국어로 뜻을 알 수 없는 간판들이 많아서 불편하다고 했다. 더 놀란 것은 의미없이 줄여서 쓰는 말들. ‘스벅’이니 ‘파바’니 ‘깜놀’이니 ‘인싸’, ‘아싸’니 하는 말들은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가 되었다고 했다.

최근 한류 열품으로 외국에도 점차 한글이 알려지고,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외국문물들을 들여와 뒤범벅 문화를 만들고 있으니, 고국에 대한 긍지와 그리움으로 전통을 지켜온 친구에게 부끄러웠다. 그래도 아직은 보여줄 것이 많이 있으니 친구가 자주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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