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소설가/한국선비정신계승회회장

[동양일보]누가 말했던가. 가을은 모든 것에서 돌아오는 계절이라고.

입추가 지나고 백로 추분이 지나자 곰비임비 한로가 눈앞이다.

그대 누리는 온통 가을 빛 일색이다.

산도 들도 하늘도 햇빛도 산 위에서 불어내리는 재념이며 들녘을 가로지르는 건들마며 가을 아닌 것이 없다.

가을!

자연의 오묘한 섭리로하여 어김없이 돌아온 가을.

이제 얼마 후면 하늘 차가운 낙목한천은 다가오고 그러면 낙엽진 나목들을 오들오들 떨면서 아이추워 아이추워를 연발하며 봄을 기다리겠지.

가을!

긴 여정의 화랑을 돌아 사색의 뜨락으로 내려서는 가을. 이제 우리는 이런 가을을 맞아 조용히 옷깃 여미고 자기 성찰의 뒤안길을 걸어야 한다.

누가 말했던가. 가을은 모든 것에서 돌아오는 계절이라고.

그런데 나는 모든 것에서 돌아온다는 이 가을 나는 두 사람과의 안타까운 절류(折柳)를 했다.

한 사람은 전공을 살리기 위해 떠난 가화(嘉禾)라는 소저(小姐)요 다른 한 사람은 러브콜을 받아 떠난 율사(律士)의 지우 서호(西湖)였다.

가화는 독문학을 살리기 위해 떠났고 서호는 처성자옥(妻城子獄)의 엄숙한 생활 현실 때문에 떠났다.

나는 이들을 보내고 한동안 가슴을 앓았다.

아,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찌 살라고 떠난단 말인가.

종자기(鍾子期) 없는 누리에 백아(白牙) 혼자 어떡하라고, 포숙(鮑叔) 없는 세상에 관중(管仲) 혼자 어찌 살라고.

가시리 가시리 잇고

나ᄂᆞᆫ ᄇᆞ리고 가시리 잇고

나ᄂᆞᆫ 위 증즐가 태평성대

날러는 엇디 살라 ᄒᆞ고

ᄇᆞ리고 가시리 잇고

나ᄂᆞᆫ 위 증즐가 태평성대

-가시리의 일부-

서호는 성격 원만한 사람이었고 행동 반듯한 지우였다. 우리는 의기가 조금은 투합했고 그래서 수어지교(水魚之交) 금란지교(金蘭之交)를 꿈꾸었다.

붕우유신(朋友有信)이 사라진 세상에 우리는 올올독야(兀兀獨也) 했고 청청백백(淸淸白白)했다.

우리는 정퇴율송(靜退栗宋=靜庵 趙光祖, 退溪 李滉, 栗谷 李珥, 尤庵 宋時烈)을 논했고 이두한백(李杜韓白=李白, 杜甫, 韓愈, 白樂天)을 술했다.

그는 내가 문득 달을 발이 없어도 하늘을 걷고(月無足而步天) 하면 바람은 손이 없어도 나무를 흔든다(風無手而搖樹)하고 대구(對句)했다.

내가 또 하늘이 만일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주성(酒星)이란 별이 하늘에 없었을 것이고(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 하면, 그는 땅이 만일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주천(酒泉)이란 곳도 땅에 응당 없었으리라(地若不愛酒 地應無酒泉) 하고 응수했다.

그런데 이런 그가 글쎄 나를 두고 서울로 갔다.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찌 살라고.

누가 말했던가. 가을은 모든 것에서 돌아오는 계절이라고.

이 가을 그들은 떠났다. 나부끼듯 바람처럼 표표히 떠났다. 나만 이 육허(六虛)에 댕그마니 남겨 놓고 그들은 떠났다. 이 삭막한 벌판에, 이 황량한 들판에 나만 홀로 남겨 두고 그들은 떠났다.

오, 내 사랑 오, 내 사랑

웬일인가 이별

푸른 동산 나무 아래

너를 보지 못하리,,,,,,,.

“선생님, 몸 조심하시구요. 좋은 글 많이 쓰셔요.”

“선생님, 술 많이 드시지 마시구요, 담배도 줄이시구요, 커피도 하루 한 잔씩만 하셔요. 그리구 귀찮으시더라도 끼니 거르지 마시고 꼭꼭 챙겨드셔요. 불쌍하신 우리 선생님. 소년 같으신 우리 선생님!”

그날 가화는 애별리고(愛別離苦)를 이렇게 표하며 그예 눈에 그렁그렁 이슬을 달았다.

누가, 누가 가을은 모든 것에서 돌아오는 계절이라고 했나.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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