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국회의원

김종대 국회의원

[동양일보]민주당의 이철희, 표창원 의원이 다음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들은 “이 정치가 부끄럽다”고 했다. 다음 총선 불출마는 스스로 정치 생명을 끊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정치적 자살’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들이 정치란 권력을 향한 욕망의 총체라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그 반대로 이들은 현실 정치를 너무나 잘 알뿐더러 한 때는 좋은 정치를 해보겠다고 뛰어든 인물들이다. 그런 그들은 본인의 생명을 끊는 자살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정치의 생명을 끊고자 한다. 그게 바로 그들의 본심이다. 그들은 이 정치가 죽어야 새로운 정치가 탄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스스로를 분신(焚身)했다. 이들 외에도 이미 다음 총선에 나오지 않기로 결심한 국회의원은 생각 외로 많다.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성을 축적한 그 초선의원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혹자는 정치로부터 탈출하는 이들이 무책임하다고 비판할 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사실 이들은 불출마 선언으로 겸손을 떨 것이 아니라 더 험한 길을 선택했어야 했다. 이런 방법들이다. 교회를 적으로 만들고 싶은가. 성소수자 권리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면 된다. 성당을 적으로 만들고 싶은가. 낙태죄 폐지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면 된다. 20대 청년들을 적으로 만들고 싶은가. 예멘 난민을 정착시키자고 하든가, 북한을 지원하자고 하면 된다. 참전용사를 적으로 만들고 싶은가.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학살의 진실을 규명하자고 하면 된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적으로 만들고 싶은가. 노조 내에서 비정규직 차별을 금지하는 입법을 하면 된다. 전 국민을 적으로 만들고 싶은가. 최근 국회 일각에서 검토하고 있는 생활관계법을 발의하면 된다. 지극히 상식적인 소수의 권리를 옹호하는 주장을 하면 다수의 미움을 초래하여 스스로의 정치적 생명은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파멸한 대표적 인물을 알고 있다.



19대 국회의 필리핀 출신의 이자스민 의원.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들에게 교육과 복지의 혜택을 제공하자는 법을 발의했다가 진영을 초월한 공격을 받고 파멸했다. 이자스민법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나라들이라면 다 시행하는 상식의 법률이다. 그런 법도 한국에서는 발의했다는 이유로 한 정치인이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총선 출마는커녕 정치권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필자에게 이자스민 의원은 “내가 아니라면 이 나라에 정착한 이주 여성 2만5천명은 누구를 바라보며 살아가란 말인가”라며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졌다. 비록 자신은 온갖 비난에 시달렸지만 그런 자신이 존재함으로써 누군가에는 희망이 된다는 걸 명확히 아는 진짜 정치인의 모습이다. 19대 국회의 최대 수치는 그 누구도 이자스민 의원을 보호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기에 이왕 정치를 바꾸려거든 간편하게 불출마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멀고 험한 고행의 길, 자기희생의 길을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권력을 탐하지 않는 소명의 정치인이 서 있을 자리는 이 나라의 비정규직, 장애인, 성소수자, 난민, 빈자들의 곁이다. 아무리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해도 우리 모두는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수가 불행한 사회에서 다수라고 해서 행복할 수 없다. 한 개인에게는 정치적 실패라 할지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는 연결의 정치, 여기는 내가 불출마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떠날 수 있는 세상이 아닌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운명이라면 우리는 자살을 선택하는 것보다 기쁜 마음으로 고행을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들 이 정치가 정말로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행의 길을 포기하는 그 순간에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사라진다는 걸 왜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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