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 ESI 교장

한희송 ESI 교장

[동양일보]최근 다시 정시와 수시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현 정부의 정시확대 방침이 발표된 것이 불과 며칠 전이니 이 논쟁은 앞으로 얼마간의 열기를 더 뿜어내어야 그 이후의 안정기를 점칠 수 있게 될 것 같다. 수시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미 몇 번의 분위기 떠보기가 있었는데도 정시확대라는 네 글자가 언론매체들을 통해 흘러나오자 국민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들은 것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반응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을 가지고 있다. 첫째가 정시확대 찬성이고, 둘째가 이에 반대하는 것이다.

정시확대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의견의 바탕에는 바로 공정성과 수시준비의 비합리성이 있다. 입시수단이 여러 개일 경우 그들 간에 생기는 입학가능성의 격차에 대해 보충장치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은 정시를 선호한다. 정시는 수능이란 명쾌한 평가기준이 있어서 준비과정이 단순한 반면 수시는 그 종류가 여러 가지이고 같은 종류라도 학교마다 전형방법이 다르며 또한 입시를 위해 학생 자신 뿐 아니라 부모님들까지 나서서 준비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 수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게 하는 이유이다.

반면 정시확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시 자체가 가진 불공정성과 입시방법의 고지식함을 불편해 한다. 그들은 정시에 찬성하는 계층일수록 수능성적에 자신이 있으며, 경제적 부(富)를 바탕으로 수능준비에 체계적인 노력을 한 사람들이다 라고 인식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정시는 경제적, 지역적 상류층들의 우선권을 인정하는 제도로 해석된다. 또한 이들은 지금 이 시대에 대입제도의 다양성을 축소하는 것이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진다. 다양한 특기와 적성을 가진 학생들이 자기만의 특성으로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어야 그것이 미래를 위한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부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 더 옳은 판단이고 미래를 위해 어느 것이 더 좋은 선택일까? 현재의 상황에서 이러한 종류의 질문을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진정한 마음으로 하게 된다. 그러나 그건 허상이다. 대입학령 청소년들을 전국적으로 같은 시험을 통해 점수를 부여한 다음 각 대학에 그 점수대로 배분해야 한다는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러나 그와 같은 부작용이 있는 정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많다. 왜일까? 정시가 더 좋은 것이 아니라 부작용이 더 적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수시를 지지하는 것같이 보이는 사람들도 수시가 정답이라서가 아니라 정시가 수시보다 융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지지한다.

우리나라 입시문제가 무엇을 택하든 근본적 문제점을 해결할 수없는 이유는 이 문제들이 대입제도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수능시험 즉 정시는 국민들의 생각과는 달리 공정성을 최소화시키고는 전국의 모든 청소년들의 다양성을 모조리 무시하고라도 정해진 사회계급에 그들이 순응할 것을 종용하는 제도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하여 수능을 통해 전국의 아이들에게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이미 우선순위가 정해진 대학에 1대1 대응이란 전단사함수를 적용하는 것이 입시라는 국민들의 의식체계를 강제한다. 수시가 각 대학의 자율성이 개입될 여지를 준 제도가 아니라 복잡하고 준비하기 모호한 제도로 해석되는 이유도 같은 원인으로부터 온다. 그래서 다시 정시로 돌아가든 수시를 확대하든 아니면 50대 50의 비율로 정시와 수시를 운용하든 관계없이 우리의 입시시스템은 병든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성적과 대학순위와 대기업취직과 그로부터 오는 경제적 안정성이 인생의 가치 중 최고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 어느 사회를 산 어른들의 깨달음이라면 그 깨달음을 생산한 그 사회가 이미 병들어 있다는 증거이다. 병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할 수없이 고통이 덜한 병의 종류를 찾는 일을 그 사회의 사람들이 병들고 싶어 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논리를 유지하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 이 왜곡을 멈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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