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밤 10시 막차에도 아버지는 내리지 않았다. 벌써 저녁 6시부터 나와 버스를 기다리던 용호는 이제 발길을 돌려야 할 판이다. 그러자니 어머니의 서두르셨던 말씀이 쟁쟁히 떠오른다. “얘, 용호야, 오늘 아부지 오시는 날여. 어여 읍내 버스정류장으루 가서 모시구 와야제!” 그런데 혼자 들어간다면 어머닌 얼마나 또 실심하실까? 아버진 한쪽다리(왼쪽)가 불인하시어 걸을 때마다 지울뚝지울뚝 저신다. 그래서 그런 아버지를 경운기에 태워 모시고 오라는 거다.

석 달 전 아버지가 집에 오는 버스를 놓쳐서 못 오신 적이 있었다. 그날 어머닌 밤새 한숨도 못 주무셨다. “아녀, 틀림없이 무슨 변고가 있으신겨. 날 새는 대로 내가 가봐야겄어.” 그러시더니 정말로 부유스름히 날이 새자 아버지한테 가실 채비를 차리셨다. “어무이 아부지한테 가실려는겨?” “그려, 다리도 불인한데 필경 무슨 사단이 있는겨. 널랑 오늘은 찬밥 찾어 먹구 학교 늦지 말구 가!” 그리고 어머니가 뜰팡을 내려서는데 아버지가 들어오신 것이다. “와, 나 찾아나서는겨. 나 괜찮여 막차를 놓쳐서 못 온겨. 그러지 않어두 밤새두룩 끌탕하구 새벽댓바람 날 찿어올 것 같어서 밤새 걸어온겨.” 그래서 엄마의 애간장 끓이는 건 여기서 그쳤지만 이후 용호는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게 생각되는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그런 애타해 하는 마음가짐이 궁금했다. 다리가 불구여서 그러는 걸까. 그렇다면 그런 사람과 왜 결혼을 했을까?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사자인 어머니께 묻는 것도 그렇고 해서 토요일에 외할아버지를 찾아갔다. “인저 니가 고등학상이 되니까 니 부모한테두 눈을 뜨나부다. 그려 내 눈에도 그리 보이는디 니한테두 지나치리만치 이상타는 생각이 들겄제. 그게 다 이유가 있는겨.” “긍께 그 이유가 뭐냐구요?” “그게 그 모다깃매 탓이여.” “‘모다깃매’요?” “그려, ‘여럿이 한꺼번에 덤벼들어 마구 때리는 매’ 말이여.” “‘몰매’요?” “옛날엔 모다깃매라고 했어.” 그리곤 용호는 외할아버지로부터 그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듣는다.

장 총각이 어머니 심부름으로 읍내장터에 사는 이모한테 상추씨를 얻으러 갔다. 그리고 상추씨봉지를 손에 들고 으슥하고 꼬불꼬불한 싸전골목을 들어서 중간쯤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처자의 자지러드는 소리가 들렸다. 뛰어갔다. “이게 왜 이렇게 소릴 질러. 누가 어떻게 했어?” 한 사내놈이 한 처자의 몸뚱어리를 더듬으며 이기죽거리고 있고. 대여섯의 사내놈들이 돌담에 기대어 연신 담배를 피워대면서 이 광경을 보고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장 총각이 나타나자 처자를 희롱하던 사내놈이 처자를 확 채뜨려 또래들에게 밀치며, “형씨, 못 본척하고 빨리 지나가!” 하며 눈을 부라린다. 밀쳐진 처자는 바들바들 떨며 적삼을 여미곤 장 총각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장 총각은 그에서 도와달라는 애원의 눈길을 보았다. “처자가 무서워 떨고 있어유. 그냥 보내주셔유!” 그러자 “이 짜식이 가라면 가지 무슨 말이 많어.” 하더니 그 한 패들이 우르르 몰려와 마구 두들겨 패는데, 발길질 주먹질 뜸배질이 난무하고 급기야 쓰러지자 수없는 구둣발 운동화발이 마구 짓밟아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처자는 그러는 걸 보자 얼굴을 감싸고 후다닥 현장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후르륵 후르룩 호각소리가 나자 그 건달패들은 후다닥 달아났는데 이윽고 순경과 그 처자가 헐레벌떡 나타났다. 그리곤 널브러져 있는 장 총각을 병원으로 실어갔다. “그러나 그 총각은 하도 모다깃매를 맞아서 엉덩뼈가 부서진 발람에 병원에서 근 일 년을 있었으나 한쪽다리를 절게 되었지.” “그 총각이 바로 내 아버지네요?” “그렇지. 근데 그 처자가 아버지와 엄마에게, 그 총각한테 시집을 가야겠다는 게야. 그 사람이 그렇게 된 것은 다 자기 탓이라면서 말이지. 하도 간절히 말을 하기에 그 총각한테 가서 의향을 물으니까, 펄쩍 뛰면서 극구 사양하는 걸 딸이 가서 말하고 아버지가 가서 달래서는 급기야 둘이 연을 맺은 거야.” “그 처자가 곧 내 어머니네요?” “그렇지. 그런 네 아버지가 그 몸으로 농사를 짓다 지금은 군소재지 회사의 경비원으로 나가게 된 거고.”

막차를 또 놓쳤다면서 아버지는 밤을 도와 걸어서 오셨다. 걱정할 어머닐 생각해서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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