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요즘 정치인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이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부메랑이다.

역지사지는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뜻이고 부메랑은 좋든 싫든 내가 한 일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의미로 쓰여진다.

자유한국당이 유튜브 영상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묘사해 논란이다. 한국당이 만든 이 애니메이션 영상에 대해 “재미 있다”는 옹호론도 있지만 “매우 무례하고 악의적이다”, “조국 사퇴에 취해 일국의 대통령을 너무 희화화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국당은 지난 28일 유튜브 채널 ‘자유대한민국 이끄는 오른소리 가족’에서 덴마크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인용해 만든 만화를 공개했다.

4분 26초 분량의 이 영상에서 문 대통령은 간신들의 말을 믿고 안보재킷, 경제바지, 인사넥타이를 입은 줄로 착각한 채 속옷만 입고 등장한다. 특히 인사넥타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경찰차 앞에서 수갑을 차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때 문 대통령 캐릭터는 “안그래도 멋진 조 장관이 은팔찌를 차니 더 멋있구나”라는 발언까지 한다.

이윽고 문 대통령이 벌거벗은 채로 즉위식에 등장하자 백성들은 “즉위하자마자 안보, 경제, 외교, 인사 다 망치더니 결국 스스로 옷을 벗었다”, “신나게 나라 망치더니 드디어 미쳐버렸군” 등 조롱한다. 동영상 마지막에는 이 모든 상황을 손주에게 말해주던 할아버지가 “이것이 바로 끊이지 않는 재앙! 문.재.앙! 이란다”라고 말한다.

황교안 대표는 이에 대해 “동화를 소재로 해 우리 경제 현실을 빗댄 것”이라며 “정부가 듣기 좋은 소리만 듣지 말고 쓴소리도 들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을 발가벗겨 놓고 저주하고, 경멸하고, 조롱한 것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넘어 해도 너무했다는 지적이 높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4년에는 한나라당(한국당의 전신) 의원극단 ‘여의도’가 ‘환생경제’를 공연하면서 노 전 대통령을 노가리로 비꼬고 원색적인 욕설과 성적 비하를 쏟어내 충격을 준 바 있다.

2017년 1월에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나체 상태로 묘사한 작품을 전시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정치권의 이같은 행태는 국민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오만함에서 나온다. 깃발 들고 앞장서면 국민들이 무조건 따를 것이라는 망상에 젖어 있다.

앞서 한국당은 조국 전 법무장관 사퇴의 유공 의원들에게 표창장과 5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주며 자축해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샀다.

또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수사 대상 의원들에게 내년 총선 공천 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해 당 안팎의 비난을 자초했다.

조국을 낙마시켰다고 표창장과 상품권을 주고 희희낙락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교만으로 비쳐지기에 충분했다. 국회선진화법 위반이 패스트트랙 저지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했다고 해도 현행법을 위반한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다.

한국당은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강력한 집권세력이었다. 집권 당시 야당의 비협조로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됐을 때도 분명 있었다. 지금은 당시 야당이 하던 그 이상의 국정 발목잡기를 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예 집권을 포기했다면 할 말이 없지만.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6개월이 되도록 무조건적인 반대와 몽니로 정부 여당의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회 보이콧은 일상이 됐고 국정 전반에 걸쳐 태클을 걸어 왔다는 것은 알만한 국민은 다 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제1야당이 국정 발목을 잡고 물고 늘어지면 정부로서는 되는 게 없다. 정권을 빼앗겼다고 이런 식의 한풀이 정치에 몰두하다 보면 악순환만 계속된다. 훗날 한국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지금의 여당이 한국당 하던 식으로 대든다면 어쩔건가.

조국 사퇴라는 성과에도 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한국당 식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들이 마음을 닫고 있어서다.

정권 맛도 봤고 언젠가 정권을 잡아야 할 한국당이라면 이제 찌질한 정치는 때려 치우고 품격있는 정치로 국민들에게 다가가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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