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국회의원

김종대 국회의원

[동양일보]2016년에 출판된 토머스 프랭크의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은 “진보가 항상 옳다는 확신과 믿음을 버려야 한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뉴딜 연합을 천명한 이래 미국 민주당은 항상 흑인과 노동자의 당, 즉 ‘민중의 당’이었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민주당은 월가의 금융자본과 유착하여 규제를 완화하는데 골몰했고, 각종 금융 파생상품이 급격히 팽창하였다. 결과는 참혹했다. 2008년에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알려진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를 겪고 나서야 미국사회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 위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연장선에서 서 있던 오바마 대통령은 사회적 불평등이 고착되는 신계급사회로 거침없이 질주했다. 하다가 만 의료보험 개혁 외에 실질적인 개혁은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그의 연설은 사회적 약자와 노동을 존중하는 수사로 가득 차 있었지만 정작 집권 기간에 노동법은 개악되었고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확대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진보 성향의 민주당이 집권했다고 해서 진보적 개혁이 이루어진다는 근거는 없다. 말과 행동이 다른 진보의 이중 행태, 엘리트 중심의 소위 ‘브라만 좌파’들이야말로 특권정치의 변종이었다. 이들이 바로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준 장본인들이었다.

집권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에게서 지지층이 속속 이탈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주었다.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문재인 정부는 거침없이 개혁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정치적 정당성을 독점하려 했고, 집권의 포만감에 젖어 개혁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사실 촛불혁명은 민주당이 주역이 된 혁명도 아니었다. 광화문 촛불 집회 참석자의 17%가 스스로를 보수라고 했던 만큼 촛불혁명은 국민 모두의 집단적 염원의 표출이자 진영을 초월한 거대한 에너지였다. 이에 비하면 민주당이야말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이었던 당이었다. 촛불집회 초기에 우상호 원내대표는 처음부터 “역풍이 분다”며 박 대통령 탄핵과 퇴진 모두 반대했고, 이철희 의원은 노골적으로 ‘거국 내각’을 주장했다. 그러다 마지못해 뒤늦게 광장에 나온 민주당이 정작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자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촛불혁명의 정당성을 모두 독식하는 역설이 이어졌다. 함께 촛불을 들었던 야당과 연정까지는 아니더라도 협치는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새로운 권력은 이마저도 주저했다. 당연히 촛불 개혁연대는 와해되었고, 오직 문재인 대통령 한 명만 주목하는 정치로 변질되었다. 촛불혁명이 ‘적폐’라고 했던 과거 정치의 변형된 부활이다. 이것이 정치에서 극심한 혼란과 파행, 개혁 지체의 원인을 제공했고 “진보가 집권해도 별수 없다”는 유권자 실망으로 이어졌다.

분명 시작은 창대했다. 그러나 어떤 개혁도 이루어지지 않는 저조한 성적표를 바라보면서 필자는 미국 민주당의 실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개혁의 문제는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건 진보건 상식을 갖춘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특권과 반칙을 척결하고 공정과 정의의 길에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여야 5당이 모두 개혁을 말했고, 경제민주화를 외쳤다. 그 좋은 기회를 허비해버리고 개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에 유권자는 애정을 철회하고 있다. 집권 민주당이 도덕적 선민의식에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다. 방법은 단 하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그대로만 하면 된다. 도대체 뭘 주저하며 미국 민주당의 실패를 답습하려는 것인가. 그렇게 시간이 한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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