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초·중·고교생 운동선수 상당수가 각종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초·중·고교 선수 6만321명을 대상으로 인권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에 가까운 2212명이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035명(15.7%)은 언어폭력, 8440명(14.7%)은 신체폭력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학생선수들의 신체폭력 경험률은 일반학생(8.6%)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심지어 어린 초등학생조차 438명이 성폭력 피해를, 2320명이 신체폭력 피해를 보았다.

이렇게 폭력을 당하고도 별다른 조처 없이 그대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인권위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공적인 피해구제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코치나 선배 선수, 또래 선수들에 의한 폭력은 새롭게 밝혀진 일은 아니다.

지난 1월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가 고교시절부터 코치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체육계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외침이 잇달았다.

빙상계에서 다른 피해자가 나왔고 유도와 태권도 선수들도 피해 사실을 밝혔다. 학생선수 폭력은 모든 스포츠 종목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미투’ 폭로로 체육계의 만연한 성폭력 실태가 드러난 뒤 다양한 법적·제도적 개선책 마련 움직임이 있었지만 1년이 다 되도록 방지 대책이 수립·시행되지 않는 사이 수많은 폭력의 악습이 자행되고 있음이 인권위 조사 결과로 확인된 것이다.

성폭력 피해 사실 폭로가 줄을 잇자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훈련장이나 경기장, 라커룸 등에 CCTV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서둘러 대책을 내놓았으나 아직 별다른 성과는 없어 보인다.

성폭력을 포함해서 선수들에 대한 폭력이 빈번한 것은 우리 체육계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코치와 선수의 관계는 코치가 선수의 앞날을 좌지우지하는 주종의 권력 관계로 흐르기 쉽다.

자신의 종목을 평생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선수생활을 지속하지 못할까 봐 폭행을 당해도 참아낼 수밖에 없다. 용기를 내 신고한다고 해도 묵인과 방관, 은폐와 '솜방망이' 징계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폐쇄적 성격 탓에 선수만 2차 피해를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강압적 지도체제와 훈련방식을 당연시하는 체육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손보지 못하면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 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체육계 내부의 반성과 각성을 끌어내고 고질적인 폐쇄적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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