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 ESI 교장

한희송 ESI 교장

[동양일보]현 정부의 정시확대 발표가 있은 후 여론조사의 동향은 정시선호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다. 만일 정부가 이를 자신들의 교육정책이 국민들의 정서와 합치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분명히 정시확대는 세계적 조류와 반대되는 방향이며 역사의 발전방향과도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온전한 자유를 바탕으로만 존재의 근거를 찾는 학문의 현장인 상아탑을 정치권력이 쥐고서 정시와 수시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사실자체가 학문과 지식에 대한 왜곡이다. 우리나라에서 학문이 정치의 하수(下手)로 전락한 이유는 학문의 최종목표가 입신양명(立身揚名)이며 그것은 바로 돈과 권력을 의미한다는 인생 자체에 대한 왜곡 때문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육체적인 풍요에 두지 않는 학문과 종교까지도 이 땅에서는 돈과 권력의 습득을 위해 조력하는 양질의 수단일 때 사람들의 내면에 감동의 볕뉘라도 줄 가능성을 찾는다. 순수한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과 종교도 굴복시킨 것이 지금의 우리나라의 입신양명 숭배사상이고 이의 최고의 수단이 교육이 된지 오래다.

그러나 그 망측한 판단을 숨기려 하기는커녕 깃발처럼 휘 날리어서 온 국민에게 학문과 진리를 권력을 이루는 수단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현대정치일 수는 없어야 한다. 호기심에 의한 새로운 생각의 꾸준한 진보가 평생학습능력을 좌우하고 그 평생학습능력이 한 사람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며, 개인이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고 계속 성장시켜 정체성을 형성하면 사회와 국가는 그 정체성의 추상적 집합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발전의 내용과 결과는 인간의 진리에 대한 탐구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이며, 이것이 물질적 풍요를 수반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물질의 풍요는 다시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 인간의 진리를 향한 자유를 성장시키고 사고와 인식의 성장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그 나라의 교육제도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다수의 사람들이 정시를 선호한다면 그것이 우리나라의 정시가 올바른 선택지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지 않는가? 지금 국민들에게 현재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면 십중팔구가 옳지 않다고 할 텐데 그것은 왜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 지금 학교에 다녀야 할 필요성을 알지 못한 채 잠을 자는 행위로 수업을 때우는 아이들이 절대적으로 더 많은데 왜 그것에는 전혀 영향이 없는 정시의 확대가 교육을 위한 안건이 되는가? 그 모든 왜곡의 결과로 축적된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다는 것이 이미 지난 세대의 일로 치부될 정시를 확대하는 것이라니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국민들이 정시를 선호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제도를 가진 교육선진국들에서는 왜 아무도 그 복잡한 장치들을 비난하지 않는가? 자라나는 이 땅의 청소년들은 자기의 성향과 적성에 따라 그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개인의 삶을 이루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가진 단점을 발휘하여서 성공하지는 못한다. 자기가 가진 장점을 찾아내어서 그에 집중함으로써 성공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교육전문가들이 정시확대의 방향으로 가는 것에 우려를 가지는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점수가 낮은 과목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적성과는 가장 먼 과목에 오히려 집중하게 하는 것이 정시이다. 이미 세상은 아이들이 자기의 적성에 따라 자신의 능력의 최대한을 아낌없이 쏟을 수 있는 제도를 교육시스템으로 완성하고 있다. 이와 정반대의 길을 택하는 것이 어찌 우리나라여야 하는가? 교육은 모든 사회의 모든 존재방법의 근거이며 인프라이다.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청소년들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고 이를 추구할 가능성에 교육제도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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