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말 마, 따리 마, 나 지쳤다니까.’ 라는 말이 한창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누가 하도 주책없이 남 일에 참견하는데, 그게 그의 특유한 달변으로 그럴 듯하게 주어 섬겨 딴에는 상대방을 위하는 척하지만 듣는 사람은 보탬이 되거나 이익이 되는 말이 아니고 오히려 구구로 가만이나 있으면 성가시지나 않다는 조로 말을 막을 때 쓰곤 했던 말이다. 해서 걸핏하면 길게 말을 늘어놓는 기색이 있으면 이 말을 하여 말막음 시켰다. 그러면 대개가 머쓱해 하며 하릴없이 머리를 긁적이든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그만두는데, 그래도 분수없게 계속 지껄여대는 이가 있다. 하 어이가 없어 귓등으로 들으며 상관을 하지 않는데 그래도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혼자 이래라 저래라 하다 돌아선다.

지금이라고 이런 사람이 없을 리 없다. 동네에선 그런 사람을 ‘주책방망이’라 한다. 그 주책방망이가 바로 방돌이다. 방돌인 온 동네일을 참견한다. 그래서 그 친구 되는 한석이가 하루는 그를 붙잡고 일렀다. “야, 너 말여, 그 남 일에 고연히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 말어. 그거 듣기 싫어 햐.” “와, 자기들한테 도움 되는 걸 싫어하나 나 원 별일 다 보겄네.” “그런 줄 알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내말 앞세우지 말라고 일러주는겨.” “니도 내말 듣기 싫은겨. 아니잖여. 이번 니 여동생일도 그려. 그렇게 혼사를 서두르는 게 아녀. 혼사야 말루 일년지 대산데 그렇게 허술수루 맘 먹으면 어떡햐. 한 한달이나 늦어두 일 년쯤은 끌어야제. 안 그….” “워째 혼사가 일년지 대사여. 일생지대사라면 몰라두.” “그런가. 그치만 그게 중한 게 아녀. 여하튼…”

“너 그 주책방망이 일을 되게스리 일러주려는데 와 또 남 혼사얘기로 들어가. 넌 그게 탈여 그게.” “여하튼 너 말여 그러는 게 아녀 아메 남동생이믄 안 그럴껴. 여동생일이라고 창하하면…” “됐어, 됐어, 내 말을 말어야지.” 며칠 전엔 이런 일이 있었다. 아랫녘에서 이사 온 집 허 씨가 동네회의 때 볼먹은 소리를 하는 거였다. “동네 분들예, 여기는 창고 하나 짓는 데도 이장이나 동네에 허락을 받어야 합니꺼?” 뚱딴지같은 소리에 모두들 그이를 쳐다보았다. “다름이 아니라예, 집건물 옆에 붙이서 창고를 하나 질라꼬 일을 하는데예, 방돌 씨가 와서는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값이 손을 홰홰 저으민서, ‘헝님, 헝님, 안 돼 안 돼.’ 하민서 이장이나 동네에 허락받고 하는 거라꼬 못하게 하지 않습니꺼. 그래 하는 소리라예.” 하는 거였다. 방돌이가 새로 동네에 들어온 사람이면 제일 먼저 찾아가 헝님, 헝님, 하면서 말을 붙이곤 동네일이라면 혼자 다 관장이라도 하듯 떠벌리며 이것저것을 참견하고 간섭하는 것이다. 그래서 허 씨도 처음엔 초면인데도 착 달라붙으며 살갑게 구는 방돌이가 고마워 외레 이것저것 간섭하는 방돌이 말을 달갑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장의, “방돌이가, 이왕이면 동네사림들에게 알리면 조그만 일이라도 함께 일손을 덜게 될 거라는 뜻에서 한 말 같습니다. 괘념치 마시고 하던 일 하셔유.” 그때부터 방돌인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허 씨도 방돌이의 간섭을 좋은 게 좋다고 크게 방돌이 말에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동네 또래 친구들이 그런 주책방망이로 따돌림을 당하는 방돌이가 안됐어서 저녁에 셋이 마을회관에 모여 그 방도를 논의하고 있는데,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노인회장이 인기척을 하고 문을 열어보았다. “아이구, 마침 잘 오셨어유. 주책방망이 방돌이 얘길 하고 있던 참입니다요. 주책방망이라는 말이 영 듣기에 거슬려서유.” 입을 오므리고 나서 빙그레 웃어 보이더니 노인장이 말한디. “‘뭇방치기’ 라면 어떨까?” ‘뭇방치기 유?’ 모두 들 의아해 한다. “지금은 쓰지 않는 옛말이지만 ‘주책없이 함부로 남의 일에 간섭하는 짓’이라는 말여. 우리 어렸을 적에 저 물 건너 있는 사람 별명이었지. 같은 뜻이지만 주책방망이보단 좀 듣기에 나아 보이잖여. 그러나 저러나 그 노총각 망돌이 얼른 장가부터 보내게. 지금은 옛날사람이지만 그 뭇방치기도 장가간 후로는 그 버릇 없어지더라구.”

그 이튿날부터 친구들은 살아 있는 뭇방치기 장가보내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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