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 진천군청 의회사무과 의사팀장

김수정 <진천군청 의회사무과 의사팀장>

[동양일보]기다리지 않아도 때가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나를 싱숭생숭 흔들어버리는 가을처럼 그렇게 때 맞춰 언제나 만나고 싶을 때면 만날 수 있는 너였으면 좋겠다.

지난겨울 갑자기 너를 찾아온 무서운 그 병이 아니었다면, 우린 종종 그 어느 흔한 날처럼 성안길의 오래된 만두집에서 만나 만둣국과 찐만두를 잔뜩 시켜놓고 실실 농담을 주고받으며, 전쟁터 같은 직장생활의 고됨과 승진 따위, 직장상사의 흉을 보며 키득거렸을 테지.

혹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자식과 눈치 없는 남편의 흉을 보아대곤 했겠지.

친구야.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처음 너의 병명을 들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아프고, 슬프고, 두렵더니 일년이 지난 지금 너를 생각하는 시간보다 잊고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단다.

가슴 한 켠 너를 늘 생각한다고, 하루도 너를 잊은 적 없다 말하지만 자꾸만 너를 잊고 살아간단다.

가을에 묻혀, 찬바람에 쓸려, 내 친구를 그 선한 얼굴을, 자꾸만 자꾸만 잊고 살아간다.

툴툴거리긴 했어도 밝기만 하던 너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이렇게 아파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너에게 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에 한없이 작아지기만 한다.

요즘 난 자주 휴대폰에 저장된 너의 전화번호를 유심히 들여다보곤 한다.

오늘 전화하면 너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나, 그리고 친구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할까, 이런 잡다한 생각이 두려움이 돼 오늘도 나는 휴대폰을 그냥 접고 만다.

오십년을 살았으면 어쩌면 생에 대한 미련을 좀 접을 수 있는 나이일까?

젊다면 젊고 늙었다면 늙은 어정쩡한 우리 나이 오십.

네가 아니었다면 그저 희희낙락 지나가는 이 가을을 무심히 지나쳤을 우리 나이.

아이들이 너무 눈에 밟혀 쉼 없이 그저 눈물만 흐른다는 너.

문득 내년 봄에 너를 볼 수 없게 된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밀려오면 몸서리까지 쳐진다.

내가 아는 너는 누구보다 선하고 좋은 사람이었는데 넌 지나온 삶에 너무도 많은 후회를 하고 있는듯하다.

하지만 너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드라마 눈이 부시게 中)”

얼마나 남은 생인지 아무도 알 수 없어. 하지만 우리 그저 오늘을 살자. 어쩌면 삶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네게 허울 좋은 공허한 말일수도 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이기도 하다.

남아있는 우리의 시간을 그분이 우리에게 허락한 선물이라 생각하자.

친구야 넌 내게 눈이 부신 친구였어. 예전엔 미처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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