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자백·수사기관 불법행위 등 재심사유
당시 1심 선고 수원지법서 재심 여부 등 결정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모(52)씨가 13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서 직접 써온 글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모(52) 씨가 재심청구서를 들고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

[동양일보 이도근 기자]화성연쇄살인사건 8차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복역한 윤모(52)씨가 13일 정식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향후 재심 개시 여부와 시기 등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윤씨의 재심을 돕는 박준영 변호사와 법무법인 다산은 이날 오전 수원지법에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 수원지법은 화성 8차사건 이듬해인 1989년 10월 살인, 강간치사 혐의로 윤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법원이다.

박 변호사는 재심사유로 ‘새롭고 명백한 무죄 증거 발견’, ‘수사기관의 직무상 범죄’ 등을 들었다. 8차사건에 대한 이춘재(56)의 자백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당시 감정서가 새롭고 명백한 무죄 증거를 뒷받침하는 역할이고, 불법체포·감금, 구타·가혹행위를 한 당시 경찰의 불법수사 등에 미뤄볼 때 재심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수원지법은 ‘재심 청구는 원판결의 법원이 관할한다’는 법률에 근거해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당시 형사합의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번 재심도 수원지법 형사합의부 3개 재판부 중 하나가 맡을 것으로 보인다.

윤씨는 재심청구서 제출 전 기자회견에서 미리 준비한 자필 편지를 읽으며 소감을 밝혔다. 그는 “나는 무죄이다. 오늘은 기분이 좋다”고 했다. A4용지 2장 분량의 편지에는 복역기간부터 출소까지 도움을 준 뷰티플라이프(교화복지회) 나호견 원장, 박종덕 교도관 등을 언급했다. 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외가와 연락이 두절됐다. 모친인 박금식씨(고향 충북 진천)를 알고 있는 사람의 연락을 기다린다”고 했다.

다만 이번 사건 재심이 열리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경우 2013년 재심이 청구됐으나 2015년 12월에야 재심 개시가 확정됐고, 이듬해 11월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무기수로는 사법사상 최초의 재심 대상자로 인정받은 ‘친부 살해 사건’ 김신혜(42)씨에 대한 법원의 재심 역시 개시결정이 최종 확정되기까지 3년 8개월이 걸렸다. 김씨의 재심은 현재 진행 중이다.

재심 개시 자체가 어려울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도 있다. 재심 개시는 수사기관의 수사와 법원 판결에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특히 수사기록과 증거물 등 관련 자료가 확정판결 20년이 지나며 모두 폐기된 상황이어서 새로운 증거를 찾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이번 재심 개시 여부는 경찰의 재수사 결과에 달렸다는 의견이 나온다.

화성 8차사건은 1988년 9월16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자신의 집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성폭행당한 뒤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윤씨는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돼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았다. 윤씨는 당시 1심까지 범행을 인정하다 2,3심에서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 했다’고 주장하며 항소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씨는 청주교도소에서 20년간 복역 후 2009년 가석방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피의자 이춘재가 8차사건을 포함한 10건의 화성사건 모두와 청주 등에서 저지른 4건 등 자신의 범행이라고 시인하면서 윤씨는 재심 청구를 준비해왔다. 이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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