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음성 동성초 교사

박효진 음성 동성초 교사

[동양일보]“아-앙, 줘-어어-”

지하철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고개를 들어 반대편 좌석을 보니,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아이의 아빠가 휴대전화 게임을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꼭 쥐고 있는 아이를 제지하려는 아빠의 손길이 분주할수록 아이는 떼를 쓰며 더 큰 소리로 칭얼대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소리만 좀 줄여.” 아빠의 어르는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아이는 잽싸게 휴대전화에 코를 박았다. 휴대전화를 어루만지는 아이의 손놀림이 꽤 익숙해 보였다. 게임에 대한 열정은 뜨거웠고 소리를 줄이려는 의지는 없어 보였다. 결국, 지하철 한 칸이 아이의 게임 배경 음악 소리로 가득 찼다.

주말 이른 아침, 지하철 안은 붐비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소음의 크기를 더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 소리는 분명 눈을 감고 있다거나 책을 읽고 있는 승객에겐 꽤 거슬릴만한 크기였다. 누구보다 피해를 볼 것 같은 사람은 아이 옆에 탄 여자 승객이었다. 급한 일거리가 있는 듯 노트북을 꺼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곁눈질로 아이를 쳐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아이의 아빠에게 눈길이 갔다. 아빠는 아이에게 주의를 시킨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는지 부인과의 대화가 한창이었다.

옆자리의 여자가 여러 차례의 강렬한 눈빛이 보내더니 이내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얘 그 소리 좀 줄일 수 없어” 불편함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만큼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정중한 제안보다는 따끔한 훈육에 가까웠다.

“너 때문에 하나도 집중이 안 되잖나” 여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는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대성통곡을 했다. 요란한 상황이 펼쳐지자 승객들도 하나, 둘 고개를 돌려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아니, 애한테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요, 그냥 좋은 말로 하면 될 것을”

아빠는 여자를 채근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를 대신하여 사과하거나 아이에게 당부의 말을 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빗나가고 귓가를 요동치는 고함이 오고 갔다.

“제가 처음부터 소리 질렀어요, 몇 번 눈치를 줬잖아요. 그럼 아저씨가 소리를 줄였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하는 거예요”

“뭐라고, 너는 그래서 가정교육 잘 받았냐. 애들이 다 저러면서 크는 거지, 너는 어릴 때 안 그랬을 것 같아”

“지금 너라고 했어요. 언제 봤다고 너래, 지금”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지하철 객실의 허공 온도가 점점 달궈졌다.

“거, 조용히 좀 합시다” 다른 쪽에서 누구 편인지 모를 냉랭한 중립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얼마 전 여행에서 만난 가족이 떠올랐다. 그곳은 산꼭대기에 오르면 푸른 호수의 전망을 볼 수 있어 인기가 많은 관광지였다.

산악열차에 탄 탑승객이 자연의 신비에 감탄하고 있을 때, 나와 지척에 앉아 있던 쌍둥이로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 낄낄거리며 장난을 쳤다. 처음에는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탄성이라 생각하며 시선을 두려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소리가 커지더니 작은 산악열차가 아이들의 소리로 소란스러워져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승객의 불편한 눈빛을 감지한 엄마는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쉿-’하고 경고를 했고, 이를 지켜본 할머니 한 분이 아이의 엄마를 쳐다보며 미소를 보냈다. 엄마의 노력에도 아이들의 소음이 줄어들지 않자, 엄마는 침착한 목소리로 이곳에서 왜 떠들면 안 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다. 진지한 표정의 엄마는 근엄해 보였다. 이후 아이들의 소란은 잦아들었고, 조용히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시민의식은 어린 시절부터 체득돼야 한다. 따라서 부모님으로부터의 섬세한 가르침이 필수적이다. 성숙한 태도를 가르칠 때는 분노나 억압이 아닌 배려와 공감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또 하나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아이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이웃도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아이는 우연히 ‘그렇게’ 크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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