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소설가/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강준희 논설위원/소설가/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동양일보]중국의 세계적인 석학 임어당(林語堂)은 그의 글 ‘중국의 유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중국인들은 유럽 사람과 반대로 개를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들(중국인)은 개를 목욕시키고, 입을 맞추고, 시중에 끌고 돌아다니지 않는다. 우리들은 어디까지나 개의 주인이지 친구는 아니다. 우리가 참으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 있다면 그것은 토지를 가는 저 소일 것이다...”라고.

그런가 하면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는 소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소를 좋아합니다. 그의 질소(質素)하고도 침중(沈重)한 생김생김, 그의 느리고 부지런함, 그의 유순함, 그러면서도 일생에 한두 번 노할 때에는 그 우렁찬 영각 횃불 같은 눈으로 뿔이 꺾어지도록 ‘맥진(驀進)함, 그의 침묵함, 그의 인내성은 많고 일모일골(一毛一骨)이 다 유용함, 그의 고기와 젖이 맛나고 자양 있음,,,,. 이런 것을 다 좋아합니다. 말(馬)은 잔소리가 많고 까불고 사치하고 나귀는 모양이 방정맞고 성미가 패려하고 소리와 생식기만 큽니다”라고.

이는 소에 대한 칭송으로 소의 덕을 기린 일종의 우덕송(牛德頌)이다.

그러나 춘원은 실제로 소의 덕을 기린 일종의 ’우덕송‘을 쓴 바 있는데 거두절미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중략. 소! 소는 동물 중에 인도주의자다. 동물 중에 부처요 성자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마따나 만물이 점점 고등하게 진화되어 가다가 소가 된 것이니 소 위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거니와, 아마 소는 사람이 동물성을 잃어버리고 신성에 달하기 위해 가장 본받을 선생이다“ 하략.

이렇듯 춘원은 소를 높이 칭송한 바 있는데 이는 매천 황현(梅泉 黃玹)도 크게 다르지 않아 소를 높이 대하였다.

매천이 누구던가? 한반도가 왜국에 먹히자(한일합방) 그 통분을 못 이겨 “가을 등불에 읽던 책 덮어두고 천고(千古)의 옛일 생각하니, 인간으로 태어나 식자인(선비) 노릇하기 어렵다”는 절명사(絶命辭)를 남기고 자결한 기개 있는 선비가 아니던가.

이런 매천이 어느 날 소를 크게 꾸짖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을 외진 곳으로 데리고 가 낮은 소리로 ”이 사람아, 소도 지각이 있으니 임자의 꾸짖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얼마나 아플 것인가. 조용조용 타이르게“한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지난 2001년 9월에 경북 상주에서 있는 정의(情誼)있고 의리 있는 소(암소)의 의행(義行)이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여기 소개한다.

얘기인즉슨 경북 상주시 사벌면 묵상리 임봉선 할머니(당시 67세)의 13년생 암소가 오랫동안 먹이를 주며 자신을 사랑으로 보살펴 준 이웃집 김보배 할머니(당시 83세)에게 의행(義行)을 보여 사람들을 감동시켰다는 이야기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94년도 5월 김보배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이 암소는 망자의 삼우 젯날 외양간을 뛰쳐나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6km 밖 김보배 할머니 산소를 찾아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섧게 울었다 한다.

의행은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주인과 함께 김 할머니의 산소를 떠난 암소는 외양간으로 가지 않고 이웃집 김 할머니 빈소를 찾아가 눈물을 흘려 운 다음에야 외양간으로 갔다 한다.

김 할머니의 유족은 너무도 감동해 이 암소에게 조문객과 똑같이 장례음식을 대접했고 이후 마을 사람들은 마을회관 앞에 암소의 의행을 기리기 위해 ‘의로운 소’ 비석을 건립했다.

그리고 이 소의 도축이나 매매를 막기 위해 김 할머니의 손자 서동영(47)씨와 동물관련 민속자료 연구가 우영부씨(55)가 소 값 200만원을 소유주인 임 할머니에게 주고 소유권을 아예 공동으로 했다 한다.

자, 이쯤 되면 아무리 포악한 인간일지라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말 못하는 축생(畜生)의 의행!

이는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높고 높은 불립문자(不立文字)다.

오, 도림(桃林)이여 도림처사(桃林處士)여! 인간이 너에게서 배울 바가 하도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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