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화 <진천교육지원청 교육공무직원>

최옥화 진천교육지원청 교육공무직원
최옥화 진천교육지원청 교육공무직원

[동양일보]2013년 3월 2일. 근무하던 학교에 그날은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오시는 날이었다. 보통 교장선생님이라 하면 나이도 지긋하시고 머리도 좀 벗겨지시고 배가 나오거나 흰머리가 있거나 뚱뚱하거나 뭐 그런 이미지였다. 하지만 청주에서 오셨다는 그분은 50대 중반에 적당한 체격, 핸섬한 얼굴, 거기에 환한 미소까지 갖추신 교장 같지 않은 교장선생님이셨다.

그분이 오시고 학교가 변하기 시작했다. 좁은 교무실은 행정실까지 영역을 넓혔고 더 좁은 행정실은 역사관을 밀고 그 자리에 터를 잡았다. 지난 역사보다 지금 근무하는 사람들이 더 편하게 지내라는 배려셨다. 교무실은 이전의 회색빛 캐비닛을 버리고 원목의 수납장이 들어왔고 학교 외벽은 침침한 회색에서 뽀얀 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아이들의 교실에도 바람은 불었다. 책걸상이 바뀌고 칠판이 바뀌고 어디서 어떻게 예산을 따오셨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후문엔 꿈이 자라는 문이 생겼고 그 둘레엔 장미가 넝쿨을 타고 오르게 꾸미셨다.

조회시간, 교장선생님께서 전교생에게 말씀하셨다. ‘뒤를 돌아보세요’ 우리 학교는 백년이 넘어 큰 나무가 많았는데 그 나무들마다 작고 여린 잎들이 나고 있었다. ‘견디면 이긴다’고, ‘이기면 따뜻한 봄이 온다’고, 그래서 ‘여린 잎으로 생명은 순환되고 있다’고 전교생에게 일러주신 큰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려운 결재를 받으러 가면 늘 똑같았다. “알아서 하세요.” 누구는 알아서 하는 게 무섭다지만 그의 “알아서 하세요”는 ‘당신을 믿습니다’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니 처음 하는 일도 그 전 공문을 찾아서 배워야했고, 다른 선생님들께 물어물어 잘하려는 욕심을 불러오게 했다. ‘당신이 날 믿어주셨으니 이렇게라도 보답 합니다’라는 마음이 생기게 만드셨다.

우리에게도 바람은 불었다. 정교사 쉰명 사이에 낀 교육공무직원 다섯명, 우리들과 급식소 여사님들까지 모두를 친목회에 가입을 시키셨다. 정교사들 위주로 돌아가는 학교에 우리도 직원이라는 자부심을 안겨주셨다. 어떤 차별도 보지 못했고 어떤 불합리한 상황도 있을 수 없었다. 큰 소리 한번 난적이 없었고 작은 시비조차 없었다.

위엄과 근엄의 벽을 깨고 사람과 사람으로 인정해주시고 배려해주셨던 분, 형식과 절차를 간소화해서 편한 근무환경을 만들어 주시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서 능력을 키워주셨던 분, 그리하여 ‘상산은 지금 파라다이스’라며 청주에 계신 선생님들을 상산으로 전보오고 싶게 만드셨던 그분, 직장에 출근하는 일을 행복한 일로 만들어주셨던 분이셨다.

다시는 저렇게 훌륭한 분을 못 만날 것 같다.

우리 모두는 행복했고 학교생활은 즐거웠다. 왈츠에 춤추는 신록의 봄, 붉은 팝콘처럼 연산홍이 피고 졌던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두 번 순환을 하던 지난 2월 어느 날, 봄방학을 며칠 앞두고 교육청에서 인사발령이 있었다.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 몰랐던 우리는 놀라고 당황스러웠으며 학교는 침묵을 지켰다. 착오가 있었다고 없던 일이길 바랐던 그 분의 발령은 곧 현실이 됐다. 2월말 모든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분의 차를 떠나보내며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후문의 꿈이 자라는 문처럼 아이들의 작은 꿈을 키워주기 위해 애쓰셨던 그 분,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이 우선임을 강조하며 형식과 고정관념에 맞서 싸우셨던 분, 소신 있던 철학과 절대적 사고의 카리스마를 잊지 못한다. 영원한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 분과의 따뜻한 추억은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 그분이 꽃길만 걸으시길 그리고 강건하시길 지면을 통해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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