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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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지금 청주시에서는 유대 민족의 애굽 탈출에 비견되는 대 이주가 시작되었다. 신규 아파트 단지 조성에 따른 구도심으로부터의 대 이주가 바로 그것이다. 모세를 따라 떠난 자들은 새로운 약속의 땅을 향했지만 곧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달한 것이 아니라 황량한 광야를 먼저 만나야 했다. 아파트는 분양이 진행 중인데도 학교는 뒤늦게 개교하고, 주차장은 태부족이며 인근의 복지시설은 확충될 계획조차 없고, 도로와 공원과 같은 도시의 생활 인프라는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다. 동남지구, 방서지구 등 대단위 신규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라. 사람이 살만한 주거단지가 되려면 유대 민족처럼 40년 광야생활을 감수해야 할 것 같다. 청주시의 주택보급률은 118.2%임에도 2011~2018년까지는 연 4182호를 지었고 2019~2022년에는 연 1만3532호를 지을 예정이다. 대 이주가 시작되었지만 건설사는 분양을 끝내고 이익만 챙겨 떠나면 그만이다. 늘어난 생활 인프라 수요는 지방정부가 떠맡아야 하는데 “돈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청주시는 그럴 여력이 전혀 없다. 생활 인프라 여건이 낳은 곳이야 별 문제가 없지만 청주 동남쪽의 신규 택지단지들은 주변에 아파트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애굽을 탈출하지 못하고 남은 사람들의 처지는 더욱 곤란해 졌다. 떠난 사람들이 남기고 간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총 4만 세대에 육박하는 청주의 21년이 경과한 구도심의 아파트들은 이미 가격이 30%이상 하락했다. 사실상 자신의 전 재산이 날아가는 중이다. 필자와 직원들은 이 중 90개 노후 아파트의 주거실태를 직접 방문하여 조사했다. 이 아파트들은 거의 전부가 노후화되어 배관 교체, 엘리베이터 수리, 전기증설 비용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은 “왜 남은 사람이 다 떠맡아야 하냐”며 관리비를 낼 마음이 없다. 그러니 장기수선충당금도 고갈되어 시급한 안전조치도 할 능력이 없다. 가난한 노령층 위주의 탑대성동의 한 아파트 주거민들은 아예 난방을 포기하고 아파트 안에 연탄난로를 놓았다. 붉은 수돗물이 나오는 한 아파트는 물도 멀리서 떠 와야 한다. 대 탈주가 시작되다보니 금천동의 한 아파트 1개동의 두 개 블록 전체가 이미 매물로 나와 있다. 이 부근에서는 이미 공실률이 25%가 넘는 아파트가 속출하자 우범지대로 전락하고 주변 상권도 따라서 죽어가며 소규모 상인들은 관리비를 체납하고 있다. 한 때는 잘 사는 사람들이 입주했다던 용암2동 한 아파트는 건물이 기울어 벽돌과 철제빔을 시급히 보강해야 한다. 도에서는 불량 건축물로 판정하고 즉시 이주를 하라고 하지만 주거민은 이주를 할 능력이 없다. 조속히 조치하지 않으면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꿈을 안고 떠난 자와 가난한 남은 자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이 도시에서 우리는 깊은 상실과 불안의 정서를 안고 산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도시는 중심으로부터 주변으로 동심원처럼 기능이 확산되는 하나의 파동이자 생태계다. 주거지역은 도시의 중간 주변부에 위치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도시의 난개발은 건설사 이익에 종속되는 약탈적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시민 주거주권을 박탈하고 서서히 재난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그 탐욕의 정점에 오로지 성장만 도모하는 지방정부가 있다. 종국에는 “함께 웃는 청주”가 아니라 “함께 우는 청주”가 될 조짐이다. 이제 “오직 아파트 건설”로 표상되는 무자비한 탐욕의 행진을 여기서 멈추고 숨을 한 번 고를 때가 되었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시민의 주거주권이 아파트 건설보다 우선이다. 청주는 ‘성장 도시’가 아니라 ‘성숙 도시’로 담대한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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