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의 충북농업기술원 생활기술팀장

[동양일보]지난 14일 아이가 수능을 치렀다. 몇 번을 치러도, 수험생 가족은 아이 눈치보기, 혼자 가슴 졸이기 같은 증상을 몸살처럼 겪는다. 지인들은 찹쌀떡과 초콜릿을 보내 응원하는 것이 요즘 풍속이다. 농업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먹을거리가 생기면 가장 먼저 재료가 국산인가 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국산 팥소를 넣은 수제찹쌀떡은 하루 지나면 굳어 버리고, 유명제과점 것은 이삼일 지나도 괜찮다. 찹쌀떡은 한두개 먹으면 그만이다. 남으면 얼리기도 하는데, 결국 냉동실에서 천덕꾸러기가 되기 때문에 얼른 나눠먹는 편이 낫다. 초콜릿은 두고 먹을 수 있어 좋으나 국산재료가 거의 없으니, 공정무역 제품을 만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지구 저편에서 땀흘리는 카카오농장의 농부들이 품삯을 제대로 받는다면, 그가 느끼는 행복이 먹는 사람에게도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별한 선물을 받았는데, 바로‘합격사과’다. 전에 일본에서 큰 태풍에 과일이 다 떨어져 모두들 절망했을 때, 몇 개 안남은 열매를‘합격사과’라고 이름지어 판매한 농부의 이야기를 마케팅 사례로 들었는데, 실제로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충주의 농장을 물색해 사과를 보내주신 선배님은 평소에도 아이디어가 넘치는 분이라서 받는 이의 즐거움까지 생각하신 것 같다. 주사위 모양 상자에, 사과도 주사위 모양, 빨간 사과 위‘합격’글자 스티커를 떼면 하이얀‘합격’글자가 남는다. 과일깎기를 귀찮아 하는 큰 아이는‘엄마, 이 사과는 네모나서 썰기가 좋겠어요.’라 하고, 나는 고3에게‘합격’글자 부위를 꼭 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침마다 사과 한쪽씩, 3일 치성 드리는 마음이다.



커피음료 쿠폰을 주는 분도 있다. 아이들은 PC방에서 맘 놓고 쓸 수 있는‘문화상품권’도 좋아하니, 어쩌면 찹쌀떡의 경쟁상품은‘쿠폰’이나‘문화상품권’이 될 것도 같다. 이러한 상황에 농부는 무얼해야 하나? 제과점과 카페, PC방과 경쟁하려면, 알이 크고 달콤한 과일보다는 먹기 편한 크기와 모양으로, 문화가 담긴‘농산물 상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해마다 논란이 되는 화이트데이를 달력에서 지우기 어렵다면 우리 청년농부들이 만든 상품을 팔도록 하면 된다. 옥천농부가 만든 아로니아초콜릿, 괴산 농부가 만든 복숭아병조림, 보은농부가 만든 인삼마카롱, 충주농부가 만든 쌀약과... PC방 간식 매대에 농부들이 만든 과자가 들어가는 것은 제품력이 아니라 마케팅의 힘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농촌체험을 하고, 농업과 친해지도록 해야 한다. 합격사과는 그 힘이 있어 합격한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