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검찰이 지난해 초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과 관련한 비위 첩보를 청와대로부터 경찰이 넘겨받아 수사에 들어간 정황을 포착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6일 울산지검으로부터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 관련 기록을 넘겨받아 검토에 들어갔다. 사건 관계인 다수가 서울에 거주하고 있어 신속한 수사를 위해 이송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힘든 구석이 있다. 전국 검찰청 가운데 수사 역량이 가장 뛰어난 서울중앙지검이 사건을 틀어쥐고 본격적으로 수사하려는 신호로 읽힐 소지가 있어서다. 검찰이 뭔가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관할 검찰청이 바뀌는 사건이 드물지는 않지만 이번 경우는 사안의 무게와 인화성 때문에 전에 없이 비상한 관심을 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검찰은 끝까지 신중하고 객관적으로 수사에 임해야 할 것이다. 확실한 비위가 있다면 수사를 주저하지 말아야겠지만, 설익은 단계에서 수사내용의 외부유출은 자칫 정쟁과 불신만 유발할 수 있어서다. 벌써 여야 정치권이 이 문제를 놓고 거센 공방을 벌이는 것은 검찰수사에 좋지 않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하명수사' 논란이 일자 황운하 대전경찰청장은 사실무근이라며 의혹을 정면 반박하고 있다. 청와대 역시 비위 첩보가 접수되면 정상적 절차에 따라 관련 기관에 넘길 뿐 개별 사안에 대해 하명수사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관련 첩보가 입수돼 경찰에 단순 전달했을 뿐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황 청장도 경찰청에서 첩보를 받아서 확인된 사안에 대해서만 정치적 고려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절제된 방법으로 수사를 했다고 주장한다. 한쪽에선 하명수사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다른 한편에선 통상적 절차라는 반박이 맞서면서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결국 검찰 수사와 사법부 판단을 통해 시비가 가려질 수밖에 없는 흐름이 됐다.

일단 칼자루를 쥔 검찰이 논란의 여지없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면 김 전 시장 관련 비위 의혹에 대한 울산경찰청 수사 내용과 함께 경찰의 결론을 뒤집은 검찰 수사도 면밀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경찰은 건설사업 이권에 개입한 정황이 있다며 김 전 시장 동생과 비서실장을 각각 변호사법 위반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절대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행여나 검찰은 이번 사건을 검·경 수사권 조정, 특수부 등 직접수사 부서 폐지를 비롯해 현재 맞닥뜨린 '조직의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는 지렛대로 삼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안 그래도 평소 수사권 조정 필요성을 강조하며 검찰과 대립해 온 황 청장이 수사 타깃이라는 점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음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아울러 정치권도 수사 중인 이 사안을 정쟁의 소재로 활용하기보다는 차분히 그 결과를 지켜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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