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논설위원/침례신학대 교수

김주희 논설위원/침례신학대 교수

[동양일보]바닷가 언덕에 작은 책방이 있으면 좋겠다. 나무 냄새가 날듯 말 듯 한요한 책방. 녹슨 철 대문에 부끄럼타게 생긴 바닷가 책방 간판이 붙어 있고, 마당 안에는 나무가 많으면 좋겠다. 여름 어느 날 하늘거리는 배롱나무 꽃에 끌려 울 안을 들여다보게도 되는 마당 예쁜 책방, 소란한 말들을 피해 숨어들 작고 아담한 책방이 물 가 어디 있으면 좋겠다.

책방에는 주인이 보던 오래된 책이 많으면 좋겠다. 중간중간 줄을 그어놓은 부분을 따라가며 읽는 것도 반갑겠다. 여백에 무언가 적혀있다면 그걸 해독하는 일은 오랜 비밀을 공유하는 시간처럼 은밀할 것이다. 책방 주인은 있는 듯 마는 듯, 단순한 듯 소박한 듯, 반가워하는 듯 무심한 듯, 말을 붙일 듯 말 듯, 그러면 좋겠다.

책방에는 만만하게 생긴 손 때묻은 탁자가 있으면 좋겠다. 나무 의자에 앉아 보는 듯 마는 듯 페이지마다 눈을 주다가 가끔 고개를 들어보면 물살이 보이는 책방. 별다른 소리 들리지 않는 고요한 시간, 장소, 관계로 그득한 곳.

누울 만한 방도 그 책방에는 어쩌면 있을까. 눈 쌓이는 철이면 굴 속 짐승처럼 뜨듯하게 불 집힌 방에 뒹굴거리면 좋겠다.

얼마쯤 묵을 뜨끈한 방, 한 켠에 문문하게 이불이 펴 있고, 만만한 베개도 있으면 좋겠다. 말하는 목소리도 듣는 귀도 순해진 계속 정다워야 할 이와 스며들 듯 모험하듯 그렇게 들를 책방이 있으면 좋겠다. 얼음 버석이는 동치미에 가는 국수를 말아먹고는 뱃 속 한기로 절절매다가 다음 끼니는 뜨끈한 무슨 국물을 만들어 먹는 일을 공모하는 사소한 난감함과 익숙한 걱정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다. 폭설 따위 근심없이 내려 쌓이고, 누군가와 울 안에 들여다 놓은 것들로 소박한 끼니를 나누는 일은 아무렇지 않게 이무로울 것이다. 누워서도 손이 닿을 곳에 구운 고구마 쟁반, 미지근한 물도 있으면 또 어떨까. 아, 이건 부모가 살았을 때 했을만한 일들일까. 어리거나 아직 다 자라지 않았을 어느 무렵, 엄마는 젊고 아버지는 바쁘던 어느 때, 형제들이 모여살던 그 소란스럽게 정답던 시절. 책방 은 또 다른 집, 주인은 어쩌면 엄마같은 역할일까.

마실 무엇인가를 들고 훌훌 불며 창밖을 가끔씩 내다보면 바쁜 한 시절을 허위허위 지나온 청춘이 고맙고 안쓰러울까. 바닷가 책방에서 겨울 한 때 그렇게 보내는 건 지난 시간에 대한 흠향, 남은 시간에 대한 보신이기도 할까.

내려 쌓인 눈 위로 찬 바람이 휘익 불어 눈가루가 날려도 돌아갈 걱정없이 뒹굴거리는 일, 탁자에 앉다가 차를 마시다가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눈 웃음을 보내다가 잠드는 지루한 반복을 동굴 속 동물처럼 하다보면 울 밖에 나가지 않은 채 깊어지는 한 철 같이 아늑할 것이다. 울 안의 꽃나무 가지마다 수북이 눈이 얹혀 부러질듯하면 슬며시 가지를 흔들어 눈을 털어주면서 다가올 봄, 가지마다 꽃 매달 봄을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이 사소하게 어려운 일, 밥벌이할 일자리와 늙어가는 인구와 다음 세대가 적게 태어나는 불안, 살아남는 일이 절박해서 목숨 건 채 위험에 노출된 젊음들이 많은 이 시대이니 한가한 꿈 타령이다. 광장의 목소리와 정치 선동의 아우성 없이 찬찬히 늙어갈 수 있는 시절, 개인의 안전이 경제논리에 희생되는 일 없는 사소함이 존중되는 사회를 얼른얼른 만들었으면 좋겠다.

광장에 나가지 않아도 밀실에 숨지 않아도 그냥 책방 같은 데 들락거리며 늙어가도 좋은 시대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 이후 아직도 요원한지. 말들이 넘쳐나 소란하니 활자의 세계를 그려본다. 밥벌이가 절실할수록 낭비같은 시간의 소중함도 커진다.

있는 듯 없는 듯, 투명한 물이 넘나드는 바닷가 헌 책방의 아늑함. 빨간 우체통같은 책방에 머물다보면 조금씩 써 둔 안부를 모아 오래 못 본 이에게 보내는 일도 어느 순간 흔연해질지. 광장에서 살포되는 목소리 높은 아우성이 멀미 나 바닷가 책방을 떠올렸을까, 정신을 차려보면 방문자로 가려는지 주인으로 머물 건지도 불분명한 백일몽이다, 어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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