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논설위원/소설가/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강준희/논설위원/소설가/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동양일보]안돌이 굽잇길 험한 벼랑 바위틈에 이리 굽고 저리 휘면서도 의연히 홀로서 있는 늘 푸른 경송(勁松) 조선소나무.

지돌이 산길 후미진 난간에 이리 꼬이고 저리 뒤틀리면서도 언제나 변함없이 늠름한 경송 조선소나무.

십년을 하루 같이 풍우설한(風雨雪寒)을 이겨낸 채 올연히 서 있는 세한고절(歲寒高節) 조선소나무.

고매한 기품과 불매(不賣)한 지조와 경개(耿介)한 절개로 탁연직립(卓然直立)해 한민족 정신을 상징하는 조선소나무.

강직하고 의연하고 청순하고 고절(孤節)해 한겨울 엄동설한이 돼야 비로소 그 변하지 않는 가치(지조와 절개)를 안다는 조선소나무.

그래서인가 선인들은 일찍이 이 소나무를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과 함께 영원히 죽지 않는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십장생(十長生)이라 일렀다.

소나무가 십장생에 든 것은 비바람 눈서리 속에서도 늘 푸르기 때문일 텐데 그렇다면 대나무도 당연히 십장생에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나무도 소나무 못지않게 비바람 눈서리 속에서도 늘 푸르러 의연하다.

우리가 지조나 절개를 말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고 또 적절히 비유되는 것은 소나무와 대나무 즉 송죽(松竹)이다.

그러므로 지조 있고 절개 있는 사람을 가리킬 때 ‘송죽같이 굳은 지조’니 ‘송죽같이 곧은 절개’니 한다.

이는 무엇 때문인가. 늘 푸르기 때문이다.

갖은 풍상 온갖 설한 다 겪으면서도 본디 모습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저 깎아지른 듯한 절벽, 그 절벽 난간 바위틈에 뿌리박은 소나무. 꼬이고 모히고 뒤틀리면서도 푸르름을 잊지 않고 꼿꼿이 버티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한결같이 꼿꼿하고 청청한 대나무.

대나무에 있어 꺾임은 실절(失節)이요 휘어짐은 실정(失貞)이다.

때문에 우리는 지조 있고 절개 있는 사람을 ‘대쪽’같다 한다.

비록 휘어질망정 어찌 차마 꺾일 수 있을까보냐는 대나무.

‘송죽같이 굳은 절개 매 맞는다고 항복하랴’라던 지난날의 노랫가락.

절개가 얼마나 대단하고 대나무가 얼마나 올곧으면 절개를 대나무에 비하고 대나무를 절개에 비겨 이런 노랫가락까지 나왔겠는가.

만고풍상 다 겪으면서도 단 한 번 변절하거나 실절하지 않은 소나무와 대나무.

그러므로 필자는 이 소나무와 대나무에서 서릿발 같은 기개와 지조를 느낀다.

물론 매화를 대표되는 설중매(雪中梅)도 혹독한 눈서리 속에 피면서도 결코 향기를 팔지 않고 혹독한 눈서리와 북풍한설에도 오상고절(傲霜孤節) 하지만 그러나 지조와 절개로 대표되는 소나무와 대나무의 상청(常靑)에는 못 미친다.

그런데 이런 소나무가, 지조와 절개로 지칭되는 기품 있는 소나무가 갈수록 수가 줄어들어 한 그루 두 그루 사라져가고 있다한다.

이는 크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어 국가적 차원에서 신경을 써야 한다.

이렇듯 소나무가 감소되는 데는 소나무가 참나무류의 활엽수에 치여 제대로 성장을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급속한 산업발전으로 일반 가정이나 각 업체들의 연료(땔감)가 나무에서 LPG로 바뀌면서 살림마다 성장률이 빠른 잡목이 숲을 이뤄 조선소나무의 생존에 필수적인 태양광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소나무에 암이라는 재선충이 창궐해 소나무를 갉아먹어 말라죽이게 하는 것도 큰 문제 중의 하나다.

여기에 또 몰지각한 조경업자들이 제 돈벌이만 생각해 야반에 잘 생기거나 희귀하게 생긴 조선소나무를 골라 분을 떠가는 불법 채취도 적지 않은 문제를 대두되고 있어 범국가적 조치가 있어야겠다.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다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을 그로하여

아노라. -윤선도(尹善道) 오우가(五友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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