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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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지난주에 한국을 방문한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한국의 내부 사정을 여러모로 정탐(偵探)하였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과연 한국에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이 배치될 것인가 여부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미국의 강권주의와 패권적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한 왕이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이겠는가.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이 배치되면 사드 배치보다 심각한 문제가 초래될 것이다, 그러니 한국은 현명하게 처신하라”는 협박이다. 미국의 최대 5000km 사정거리의 중거리 미사일은 일본의 북방 열도에 배치될 전망이지만 어쩐 일인지 중국은 이에 대해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배치하지 않겠다”는 한국만 들들 볶고 있다. 그러면 중국 전역을 사정거리 안에 포함시킨 일본에 배치될 중거리 미사일은 문제없고 왜 한국 배치만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그 논리가 아리송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왕이는 사드 요격미사일 배치 역시 ‘미해결 문제’임을 강조했는데, 이 역시 이상한 논리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사드 요격 미사일 체계의 극초단파 레이더(X-밴드 레이더)가 중국에 위협이라고 말하는데, 일본에는 이미 두 대의 레이더가 중국을 향하고 있다. 중국은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없이 오직 한국에 배치된 레이더에 대해서만 문제를 삼아왔다.

한국이 만만해서 이러는 걸까?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중국의 전략가들과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눴는데, 중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 문제였다. 그들에 의하면 일본은 이미 미국과 한 몸이 된 사실상의 서방국가다. 반면 한국은 미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사실상 중간지대 국가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한국의 선택이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에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만 문제 삼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러한 차별적 인식에 대해 필자는 격렬하게 반론을 제기했으나 곱씹어보면 그러한 중국의 인식이야말로 한반도 지정학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세 이래 한반도는 항상 누구 편인가, 여부가 동북아 지정학의 판도를 결정하는 결정적 변수로 작용해 왔다. 즉 우리가 스스로 강인한 생존의지로 운명을 개척해 온 중견 국가가 된 것이 아니라 주변국의 이해관계의 각축장이 된 약소국의 숙명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인구가 5천만이 넘는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에 이런 약소국의 낙인이 새겨져 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우리 내부에서조차 친미와 친중으로 갈라지는 자해적 편 가르기가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의식이 박약한 결과 주변정세를 주도하지 못하고 주도 당한다.

그렇게 주변 강대국이 불안하다면 한 번 묻고 싶다. 3억의 중동 인구에 포위된 인구 700만의 이스라엘이나, 말레시아, 인도네시아와 같은 큰 나라와 인접한 인구 700만의 싱가포르, 서방과 공산진영의 틈바구니에 있었던 인구 400만의 스위스는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가. 강한 자존의식을 바탕으로 굳이 누구 편을 들지 않더라도 운명의 난관을 돌파한 국가들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 비핵화 협상이 교착되면서 덩치만 컸지 불안의 노예가 된 이 대한민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불꽃같은 생존의지로 솟구쳐 오르지 못한다. 중간지대 국가 대한민국은 불안의 벼랑 끝이 아니라 주변국을 우리 의지대로 활용한다는 기회의 땅에 다다랐다. 그러나 이에 걸 맞는 상상력이 펼쳐지지 못하는 건 더욱 커지고 강해진 우리 스스로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니 왕이가 한국에 와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협박을 늘어놓는 것 아니겠는가. 어쩌면 주변국이 문제가 아니라 한없이 나약해 진 우리 자신이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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