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뭘 주어도 한 번에 많이 주지 않고 찌뜰름찌뜰름 준다. 가령 이렇다. 홍삼캔디라는 걸 누가 한 봉을 사다 주는 걸 두 눈으로 틀림없이 보았는데 이걸 어디다 두었는지 식구들 아무도 모르게 감추어 두었다가 열흘에 한 번씩 두 형제에게 한 알씩 주어 감지덕지 받아먹기를 한 달 스무날 쯤 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집식구들이 상에 빙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천장에서 동생 밥그릇에 뭐가 뚝뚝 떨어졌다. 하도 무더우니 애의 머리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건가 했다. 평소에도 땀을 몹시 흘리는 애였다. 한데 애가 천장 쪽을 바라보며 머리를 갸웃갸웃 거리면서 이상하다는 표정이다. 그제야 모두가 천장을 보고 밥사발에 떨어져 있는 희불그레한 액체를 번갈아보았다. 그랬는데 느닷없이 아버지가 후닥닥 일어나 벽장문을 열더니 벽장문턱을 손잡고 올라가 이쪽 천장 쪽에 손을 뻗어 무엇을 꺼내는 것이다. 앗, 그, 그 홍삼캔디 봉지였다. 그러나 그것은 생생한 채로였다. 아버진 그걸 한 번 훑어보더니 손을 뻗어 또 꺼낸다. 그리곤 연달아 자꾸자꾸 꺼낸다. 그런데 그 꺼내는 물건들이 다 사탕봉지 과자봉지였다. 그리곤 다들 놀랬다. 그것들이 다 뜯어져 있고 몇 개씩 안 먹은 사탕봉지였는데 그 안쪽에서 꺼낸 것들이 모두가 녹아 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걸 보고 그제서야 할머닌 외면을 하고 식사를 계속하는 시늉을 내면서 우정 못 본 척 했다. 그러니까 그건 손님들이 올 때마다 놓고 간 것들이고 하도 오래되고 날이 무더워 사탕이 녹아떨어진 거였다.

아버지는 그 할머니의 비밀 저장고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뜸 그 출처를 찾아낼 리가 없다. 아버지 엄마도 그렇지만 할머닌 여간 물건 씀씀이를 아끼는지 모른다. 어느 날 엄마가 들려주었다. “할머닌 말이다. 겉으로 보기엔 어떤 땐 상대방이 서운할 만큼 정나미 떨어지는 말씀을 하시지만 속정이 깊으신 분여. 내도 시집와선 차음엔 까달은 양반이라 여겼지만 한 해 한 해 지나고 보닝께 그게 아녀. 그뿐 아녀. 이 엄마나 니 아부지는 할머니의 모든 걸 아끼고 물건 소중히 여기는 걸 닮아 가고 있다는 걸 알았지. 왜? 다 옳은 생각이시니께.” 그래서 우리 형제는 엄마 말씀대로 할머닌 그런 분이려니 하고 그 이따금 꺼내주는 사탕도 고마워하며 받아먹었던 것이다.

그 사건 직후 아버진 우리 형제를 따로 불러 앞에 앉혀놓고 말씀하셨다. “할머니 그러시는 거 이해하지. 전에 우리 사람들이 다 그랬지만 하 가난해서 절약이 몸에 배어 그렇다. 우리 형제들이 자랄 적에도 늘 그러셨어, 물건 소중히 여기고 아껴야지 ‘갱 까먹기’ 했다간 망조 든다. 구.” “갱 까먹기?” “그래, ‘물건이 오래 가지를 못하고 쉽게 없어진다.’ 는 말이지. 옛 말여. 지금은 잘 안 쓰지만 전에 우리가 너희만할 때만 해도 어른들이 자주 썼던 말여. 시방말로는 뭐라고 하는지 내 모르겄지만 말여.” “지금 그런 말 안 써요. 그런 뜻을 대체할만한 말 없는데요. 모르겠어요. 제가 아직 고등학교 학생이지만 저는 그래요.” “형이 그러니까 아직 중학생인 저는 더 모르지요. 근데 ‘까먹기’ 는 알아요. ‘있는 걸 다 없앤다.’ 는 거요.” “그래, 거기에 ‘갱’ 이 붙은 거구나! 그래서 강조가 된 거구나. 어쭈, 내 동생 똑똑한데!”

그 이후 할머닌 당신께 들어온 사탕이나 과자가 있으면 나에게 봉지 째 주면서 동생하고 나누어 먹으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말씀하셨다. “옛날만 그런 게 아녀. 지금두 헙헙하거나 함부로 막 한꺼번에 써버리는 거 아녀. 그런 줄만 알고 있도룩 혀!” “아녜요 할머니, 할머니가 가지고 계셨다가 한 알씩만 저희들한테 주셔요. 그리구 명심할께요. 아껴서 잘 먹겠습니다.” “할머니 저두 형처럼 갱 까먹기 안할께요.” “‘갱 까먹기’, 아니 니가 워떠케 그런 말을 알어. 시방두 그런 말 쓰냐?” “아녜요. 아빠한테 들었어요. 할머니가 그러셨다면서요. 뭐든지 갱 까먹기 하믄 안 된다구.” “아이구 우리 손주들 대견도 해라. 인자는 이 할미 그런 니들한테 다 줄께!”

내일 학교에 가서 홈룸시간에 ‘갱 까먹기’에 대해 발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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