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야당 거물 정치인 김무성 의원이 간만에 덩치 값 좀 하려나 보다.

그는 지난 9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무총리 후보 지명 문턱에서 보류된 것으로 알려진 김진표를 적극 치켜 세웠다.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적임자니 임명에 주저하지 말라는 뜻밖의 주문을 했다.

야당 정치인이라고 여당 정치인을 칭찬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여·야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야당 정치인이 여당 쪽 인사를 국무총리 시키라고 공개적으로 무게를 실어 준 것은 보기 드문 현상이다.

그것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청문회를 표심과 연결시키려고 잔뜩 벼르고 있는 터에 정부·여당에 힘을 실어주는 야당 정치인의 훈수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이낙연 총리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돼 온 4선 의원이다.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일 추미애 의원을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할 때 김 의원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함께 발표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 현안 점검 회의에서 김 의원을 둘러싼 진보진영의 반대여론이 거세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 때문에 총리 인사가 보류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지층과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과거 김 의원이 주장한 법인세 인하, 분양원가 공개 반대, 종교인 과세 반대, 동성애 문제 반대 등이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더욱이 ‘조국 사태’ 이후 또 다른 논란거리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절박감이 팽배해진 상황에서 김 의원 말고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은 청와대의 고민이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이런 판에 김무성이 김진표를 적극 엄호하고 나섰으니 청와대로서는 짐을 덜 수 있는 원군을 만난 셈이다.

김진표(72)는 민주당 내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전문가다. 김영삼 정부가 비밀리에 추진한 금융실명제 실무를 담당했고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중용돼 부총리, 장관, 차관 등을 5번이나 역임했다. 2004년 총선 때 경기 수원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당선돼 4선의 중진이 됐다.

관료 시절 능력을 인정받아 진보진영에서 정치 활동을 해 온 김진표는 민주당 내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그가 주장했던 각종 정책들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 정책과 맥을 같이 해 진영 내 이단아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러한 점이 국무총리 후보자 문턱을 넘는 데 일단 걸림돌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정책이 좌우 어느 한쪽에 치우치게 되면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물 흐름과 같아야 할 경제 정책을 급진적으로 진보성만 강조해 추진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한편으론 보수성도 인정해 접목하는 유연성 있는 정책추진이 필요하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정책이 말해준다. 근로자 생계 보장을 위한 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언젠가는 실현해야 할 경제정책이란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런데 촛불 힘으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가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주머니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급하게 시행하다 보니 곳곳에 서 아우성이다. 이들 시책으로 결과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들은 근로자를 줄여야만 버틸 수 있고 자영업자 역시 알바생을 잘라야 사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시간을 갖고 서서히 추진해야 할 것을 서둘러 시행하다 보니 기업인과 근로자 모두가 힘든 세상이 됐다. 늦었지만 정부가 이런 소리에 귀 기울여 정책 수정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김무성 의원이 김진표 의원의 국무총리 임명을 적극 촉구하고 나선 데는 진보 속 보수 정책을 조화롭게 펼 적임자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무성이 김진표를 ”정치와 경제를 두루 경험하면서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사람“이라고 평한 데서 그 배경을 읽을 수 있다.

일각에선 김진표 임명을 반대하는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일부 진보세력과 이에 밀려 지명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진 문 대통령을 싸잡아 비난하는 형식을 취하며 고도의 ‘김진표=국무총리’ 등식을 설정했다는 분석도 한다.

어쨌거나 총리 지명을 앞두고 고심에 빠진 문 대통령에게 야당 거물 정치인 김무성의 뜻밖의 고언이 국무총리 발탁 탈출구로 작용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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