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욱

[동양일보]귀찮기만 했던 마당을 도배하던 일이 그립다. 이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라 그럴까.

마른 마당은 늘 평온하다. 비가 내리면 사정이 달라진다. 며칠을 마다하지 않는 비나 모다깃비가 쏟아지면 진흙탕이 된다. 비온 후 울퉁불퉁해진 마당을 삽이나 널빤지로 평평하게 고르는 일을 마당도배라고 불렀다. 옛날 마당은 요즘의 아파트 주차장보다는 우리 가족만의 공간인 거실과 더 가까웠다. 거실을 도배하듯 마당도배가 필요한 시절이었다.

갖가지 이유로 마당은 곰보가 된다. 아이들의 발자국은 나무랄 수 없다. 들일하고 돌아온 삼촌의 리어카 바퀴자국도 어쩔 수 없다. 수탉이 광기를 부린 자리와 강아지나 고양이 발자국까지도 봐 줄 수 있다. 막걸리에 건들 취하신 아버지가 남긴 갈지자 흔적은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고삐를 하지 않은 송아지가 날뛴 자국은 더 깊게 파인다.

비오는 날 마당은 재미가 쏠쏠하다. 우두커니 쳐다보아야 맛이 더 진하다. 몇 방울 우두둑 떨어지는 빗물에 개구리는 앞발로 세수부터하고 춤을 춘다. 개미한테도 맥을 못 추던 지렁이가 제 세상을 만난듯하다. 두꺼비는 어디에 숨어서 비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논두렁에서나 보던 땅강아지도 가끔 얼굴을 내민다. 이들은 모두 첫 비를 즐기고 사라진다.

미꾸라지는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활개를 친다. 미꾸라지가 비를 타고 하늘을 오르내리는 줄로 알고 있었을 때다. 빗줄기를 타고 승천을 시도하는 모습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의 천성이다. 마당에서 조금만 나가면 농수로가 있다. 비가 내리면 미꾸라지가 물을 타고 마당으로 올라와 하늘까지 넘보는 것이다.

비꽃이 피어나면 마당은 바빠진다. 제일 먼저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 뛰쳐나온다. 장독대 뚜껑을 닫고 나물 소쿠리를 처마 밑으로 옮긴다. 어머니의 비설거지가 끝날 때쯤,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챙기는 옆집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모이를 쪼던 닭들도 날개를 털면서 횃대에 오른다. 강아지도 꼬리를 내리고 하늘을 쳐다보며 걱정을 한다. 거름무더기 옆에서 쇠똥을 말던 말똥구리도 자취를 감춘다. 채 다 말지 못한 쇠똥이 풀려 흔적이 사라질 때쯤이면 빗소리만 남는다.

비오는 날은 성가신 일도 있다. 위채와 아래채를 오르내리는 일이다. 마당을 밟고 다니면 비를 맞고 도배거리도 늘어난다. 아래채 문간방에 거처하는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위채를 오갈 일이 생긴다. 마당 중간에 납작 돌로 된 징검다리가 놓여있지만 폭우가 쏟아지면 무용지물이다. 비를 피하려면 처마 밑을 이용해야 한다. 위채 대청마루를 내려와 부엌 앞에서 아래채 댓돌로 내려선다. 그 부분만큼은 하늘이 뚫어져있어 한 달음에 뛰어야한다. 도장과 뒤주를 지나고, 디딜방앗간과 외양간 앞을 거친다. 소여물솥 아궁이를 넘으면 사랑방 툇마루가 나온다. 무척이나 긴 여정 같지만 눈 감고도 다닐 정도였다.

마당은 많은 일을 감당했다. 보리타작을 하고나면 도리깨가 콩을 두드린다. 벼가 고개를 숙이고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잦아들면 볏짚 낟가리가 쌓여 겨울을 난다. 무와 배추도 마당으로 옮겨진 후에야 김장독에 들어갈 채비를 마친다. 누나가 시집가던 날은 왕겨위에 얹힌 단술 독에서 온종일 가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은 마을 사람들이 밤새도록 장작불을 지폈다.

마당을 가로 질러 빨랫줄이 있었다. 디딜방앗간 시렁과 반대쪽 돌배나무에 걸린 철사 줄이다. 빨래를 널 때마다 어머니는 녹을 닦아내기 위해 마른 걸레로 빨랫줄을 훔쳤다. 중간쯤 자리한 바지랑대는 빨래를 널고 걷을 때 높이를 조절하고 무게를 견딘다. 아버지의 나뭇짐이 들어오면 어머니가 부엌에서 달려 나와 장대를 들쳐 올린다. 웃음 반 걱정 반이던 어머니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할아버지 제삿날은 대문을 열고 마당을 깨끗이 쓴다. 깜빡하고 빨랫줄을 걷지 않으면 할머니가 서운해 했다.

게으름을 피워도 상관없다. 아버지나 송아지 발자국은 제때 도배를 못해도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 땅이 마르면서 자연 도배가 된다. 땅따먹기 놀이판은 지워져도 쉽게 그릴 수 있다. 하지만 구슬치기 구멍 다섯 개는 여간 까다롭지 않다. 내 멋대로 구멍을 파 놓으면 친구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전체적인 방향과 구멍 간 간격과 개별 구멍의 넓이를 꼼꼼히 따져야한다.

폭우는 마당에 깊은 골을 만든다. 골 따라 모여든 빗물이 바다를 이룬다. 바다에 떠다니던 가랑잎배가 멈추면 십중팔구 대문간 옆 돌담아래 물구멍이 막힌 것이다. 삽이나 물괭이로 물줄기를 뚫어주면 체증이 금방 내려간다. 새마을운동 때 현대식이라고 콘크리트 관을 묻어 만든 골목 하수구가 50여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막히지 않는 게 신기하다. 마당을 지나온 빗물이 바로 땅으로 스며드는 게 아닌가 싶다. 땅은 많은 걸 품어준다.

마당에는 사연도 많다. 여름날 저녁 할머니 무릎에는 오싹한 이야기가 많았다. 난리를 피해 100여일 피난을 다녀온 후란다. 6월 25일부터 서울수복인 9월 28일 전후쯤일 게다. 잡초가 우거져 밀림인 마당에, 홍시가 떨어져 박힌 게 석류 알 같더란다. 뱀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윗마을 과수원 흙더미 속에서 정체불명의 시체가 나왔는데 우리 집 마당 구석에도 흙더미가 있더란다. 며칠간 속병을 앓다 파 보니 옷가지와 이불이었고, 뒤따르던 피난민이 묻어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은 흙바닥을 깔고 있는 마당을 보기가 어렵다. 그때 면서기를 하던 아저씨 집부터 시작된 콘크리트 포장이 마을에 유행을 불러왔다. 편리한 만큼 운치가 사라졌다. 잘게 부순 자갈이 깔리고, 강변 오리식당은 재첩껍질로 갈아입기도 했다. 잔디가 깔린 별장은 마당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다행히 우리 고향집은 아직까지 흙 마당이 살아있다.

마당에는 그만큼이나 기억도 넓게 깔려있다. 기어 다니던 시절에 흙을 주어먹고 놀던 마당이고, 다쳐서 생채기라도 나면 마당 한 구석의 깨끗한 흙을 찾아 발랐다. 오줌을 내갈기다가 삼촌에게 들켜 혼이 난 곳도, 동생과 티격태격하다가 꿇어 앉아 벌을 서던 곳도 눈 쌓인 마당이다. 말더듬이 친구가 발로 땅을 굴리며 학교에 가자고 외치고, 이등병 계급장을 단 첫 휴가 때 큰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던 곳도 마당이다.

요즘도 가끔 마당도배를 한다. 물론 꿈속에서다. 높은 곳의 흙을 떠서 깊은 데를 메우고, 빗물을 한 삽 끼얹고 도배질을 하면 울퉁불퉁하던 흔적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며칠 햇빛을 받고 바람을 쏘이면 비 온 뒤의 굳은 땅으로 탈바꿈한다. 마음속의 상처도 세월에만 맡기지 말고, 단번에 도배질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비오는 날은 눈을 감는 버릇이 생겼다. 빗소리가 거세질수록 고향 마당은 더 또렷해진다. 아이 하나가 처마 밑에서 쏟아지는 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비가 그치자 제 키만한 삽자루를 들고 마당도배에 열중이다. 이윽고 구름 속에 있던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당에서 온기가 피어오른다.

수필 당선소감

박노욱

"독자가 한번이라도 끄덕일 수 있는 글 쓰고파"

약력 
- 1956년 경북 칠곡 출생 
- 대구중앙고, 방송통신대학 졸업 
- 한국전력공사 정년퇴직 
- 목우문학연구회 회원 
- 2019년 8월 문학도시 신인문학상 당선 
- 2019년 11월 금샘문학상 수상

집과 텃밭을 오가면서 사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종일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외딴 산골이라 남들은 모두 혀를 댄다. 내리 며칠을 지내다보면 낮에는 외로움도 살짝 맞볼 수 있고, 밤에는 산짐승 소리에 머리카락이 가끔 쭈뼛거린다. 그게 익숙해지더니 언제부터인가 재미가 붙었다. 
텃밭 화단에 몇 해 전 이사 온 삼지닥나무가 벌써 꽃봉오리를 달고 있다. 지난 번 태풍 때 잎을 떨구더니 가을햇빛이 봄볕인양 착각한 모양이다. 이 녀석이 추운 겨울을 넘길 수 있을까라는 시름에 잠기다 농막에 들어오니 전화벨이 혼자 울고 있다. 
두어 달 전 유일한 이웃이던 L이 한 마디 말도 없이 산에 올랐다 다음날 주검으로 내려왔다.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워서 그랬을까. 서운하던 나날 속에 받은 신인문학상 당선소식은 나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갈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은 열심히 주경야독하리라 마음을 다잡는다. 
나이가 들수록 유년시절 생각이 자주 나고, 남기고 싶은 기억들이 자꾸만 아스라하게 멀어져 가는 듯해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나름 긁적거려도 보았으나 한계가 있어 늘 목이 마르던 참에, 오늘 날아온 기쁜 소식은 다시 한 번 글밭 가꾸기에 전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제 글쓰기에 첫발을 내디딘다. 나 혼자만 입가에 웃음을 물거나 심각해지지 않고, 나의 글을 읽는 분들이 한 번이라도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부족한 저의 글에 관심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고,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을 통하여 좋은 글들이 샘물처럼 솟아나기를 기원하다. 저의 글쓰기를 돌보아 주신 선생님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문우님들께도 감사드린다. 모든 분들에게 더욱 정진할 것을 약속드린다. 

 

수필부문 심사평
 

박희팔 소설가

 

"시골마당의 쓰임새 눈에 보이듯 생생해"

전국에서 61명(126편)이 응모했다. 이 중에서 3편을 골랐다. 
‘렉스씨와 함께 춤을’은 ‘렉스’라는 차를 의인화 시켜 마치 반려인양 서로 보듬으며 학원을 운영해가는 이야기로, 외롭고 슬프고 아플 때 차안에서 노래를 부를 때면 꿀렁꿀렁 춤을 춰주는 렉스와 평생을 같이 하겠다는 내용이다. 
‘푸른 수의’는 어머니 생존 시 당신이 손수 마련해놓았다는 수의가 불현듯 생각나 빈 시골집으로 달려가 창고 다락에 있다는 수의함을 열어보니 뜻밖에도 모본단으로 지은 푸른색의 치마저고리가 아닌가. 이는 자식이 첫 취직해서 어머니께 해드린 옷감으로 자식이 해줘야 할 걸 대신 마련했을 거라는 생각에 오열한다는 내용이다. 
‘마당도배’는 비온 후 울퉁불퉁해진 마당을 삽이나 널빤지로 평평하게 고르는 일로, 비온 뒤의 갖가지 사연으로 패인 마당을 도배한다는 내용이다. 
다 훌륭한 작품이었으나 이 세 작품 중 ‘푸른 수의’와 ‘마당도배’가 눈을 끌었다. 우선 소재가 특이했다. 황토색의 삼베수의가 아니고 모본단으로 된 푸른색의 치마저고리라는 점 그리고 방과 벽이 아니라 마당을 도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다른 작품들을 견주어보았다. 그런데 ‘푸른 수의’를 쓴 최상근 씨의 다른 작품 ‘화(和)’는 수막새의 전설을 소개한듯하고 그 과정에서 허구(虛構)를 느낀 반면, ‘마당도배’를 쓴 박노욱 씨의 다른 작품인 ‘숨’은, 현재의 아파트 공용화단을 만들고 돌보는 갖가지 일을 재치 있는 유머를 섞어 실감나게 피력하고 있다. 하여 박노욱 씨의 ‘마당도배’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수준 있는 작품들이 많아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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