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동양일보]가물가물 사라진 방망이 소리

황학동 풍물시장에 나와 앉아

깊이 잠겨있는 유년의 시절을

아프게 들어 올리네



햇살 팽팽히 내리쬐는 날이면

이불홋청 양잿물에

묵은 설움 푹푹 삶아내어

춤추는 바지랑대 위에서

젖은 가슴 말리시던 어머니

옥양목 빳빳한 기억이

풀먹이던 손 베이고 가네



외지에 나가 계셨던 아버지

그곳에 새 살림 차리고

한 계절 만 집에 들어 와

가정을 돌아보고 떠날 때면

배웅 대신 방망이 두드리며

다듬이돌 넘나들던

어머니의 붉은 목울대

눈치 빤히 알고 부터

혼자서도 두드려 보던 여린 손이

어머니 마음 바닥에 촘촘히

서려있는 눈물방울 어루 만졌네



다듬이 장단 밤 늦도록

추임새 흠뻑 매기고 나면

저 혼자 조금씩 아물어 가던 상처

어머니는 없는데 소리만 살아

아직도 생을 다듬질 하는 방망이

내 귀를 흝고 가네


시 당선소감
 

김정숙

"이마가 하늘에 닿아 바위를 뚫을 때까지 정진 할 것"

약력
출생지 경기 파주
학력 방송통신대 교육학과
수상경력 전국청하 백일장/신사임당 백일장/율목 문학상/중랑구 신춘문예 문학상

연말 모임에서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르는 번호가 핸드폰 액정애 떠서 망설이다  받았는데 축하드립니다
이제 선생님께 김정숙 시인이란 이름표를 달아 드리겠습니다 신문사에서 걸려온 전화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 내게 입은 있으나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전국 백일장과 문학상에서 받은 상은 몇번 받아 보긴 했지만 그 때마다 시인이란 이름이
거북하여 올리지도 못했습니다 정상을 향해 치열하게 가슴앓이하며 설친 고통의 날밤으로 몇 계절을 넘나들다보니 그만 둘 수도 없었지만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신춘문예 문학상은 아무나 가까이
범접할 수 없는 아프고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숨 가쁘게 그 길을 통과하여 걸음마를 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고 늦은 나이가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편견에 손 들어주신 동양일보 심사위원님들께 이제 시작이라는 말 귀로 알아듣고 진심을 다해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오늘 저녁 시간에 벌어졌던 축제의 순간이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이 땅에서의 남아있는 발걸음이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이마가 하늘에 닿아 바위를 뚫을 때까지 정진하겠습니다
말로 다 할 수없는 인생의 큰 채찍을 들어주신 동양일보 심사위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시도 때도 없이 마다 않고 워드 작업을 도와 주었던 오주영 요한에게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하며 우리 가족 모두와 함께 이 영광과 기쁨을 깊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시 부문 심사평
 

정연덕 시인

 

유년의 실체에서 삶의 성찰력 돋보여 

제26회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들 중에서 선자에게 넘겨진 작품(579편)을 숙독하고 일정수준작들이란 것과 아직도 응모작에 대한 이해가 미숙한 작품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었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는 신재근의 ‘모래시계’, 전목의 ‘고양이’란 작품과 문영애의 ‘탱자’, 김정숙의 ‘다듬잇돌’이란 작품이다. 
신재근은 ‘모래시계’란 작품으로 텅 빈 가슴 손짓 하나로 모래성을 쌓는다. 줄 것 없는 빈 가슴이 되어야 무언가 받고나면 줄 수밖에 없는 깨달음의 가슴, 일으킨 굴레에 비어가는 시간 영원의 가슴은 모래성에 묻힌다며 비움과 채움에서 사물의 의미를 찾고 있다. 
문영애는 ‘탱자’란 작품에서 가시 틈 사이에서, 태양을 꿈꾸고, 가시에도 찔리지 않는 금줄 햇살 당겨, 햇살 씨앗을 품고 있다며, 탱글탱글 영그는 해의 분신이란다. 가시에 찔려도 향으로만 저항하는 여유로운 숙성이란 것을 제시하고 있다. 
전목은 ‘고양이’란 작품에서 보드라운 털 속에 발톱을 숨기고, 아무도 관심 없이 지나간 시간을 찾아 촉수를 뻗는다. 기억의 저편에 흐르는 눈동자를 찾아 타클라마칸사막에 발이 빠져도, 고독의 절벽의 맛보고 싶은 야성의 발톱에 번득이며 서늘한 눈동자로 걸어가는 당당함을 진술해 보이고 있다. 
김정숙은 ‘다듬잇돌’이란 작품에서 사라진 방망이 소리를, 유년 시절에서 찾는다. 이불 홑청 양잿물에 묵은 설음 푹푹 삶아, 바지랑대 위에 걸어, 젖은 가슴 말리시던 어머니의 삶의 면모를 제시하고, 외지에 나가 새살림 차린 아버지에 대한 증오의 회상을 통해 방망이로 옥양목 빨래, 배웅대신 방망이를 두드리며 넘나들던 어머니의 붉은 목울대를 상기한다. 
딸과 어머니의 마음바닥엔 다듬잇돌과 함께 어머니는 없는 데, 아직도 생을 다듬질하던 방망이 소리 내 귀를 흩고 간다고 리얼하게 구체적 사물과 사유를 시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김정숙의 ‘다듬잇돌’을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바란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