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아정

[동양일보]단풍잎과 은행잎이 내게 속삭이듯 바스락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가을의 소리다. 그 소리는 포물선을 그리며 내 귓가를 타고 흘러 들어왔다. 바깥에 아이들은 뭐가 즐거운지 꺄르르 거리며 웃었다. 점심시간 남자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창문에서 그 모습을 멀뚱히 지켜보았다.

“까꿍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다희가 멍하게 있는 내 뒤로 오더니 양손으로 등을 콕콕 친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 한 채 다희의 가슴팍만 쳐다봤다. 다희는 내 단짝 친구다. 정확히 말하면 다희와 가장 친하다.

“껌 먹을래? 가방에 네가 좋아하는 딸기 맛 껌 있어”

껌은 있다가도 같이 씹어도 되는데 뭐든 말을 하려고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다희는 내가 걱정이라도 있는 것을 알아챘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밝고 명랑한 다희는 궁금한 것이 많다. 예전에는 다희에게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 다 말했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숨기게 된다. 사실 아직도 다희에게는 숨기는 것이 하나 있다. 띵동댕.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우당탕탕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가 그 소리에 맞춰서 일제히 커졌다가 사라졌다.

“차렷 열중 쉬여 차렷 선생님께 경례”

“독후감 숙제 반장한테 낸 거 선생님이 다 봤어. 음 안 낸 애들은 내일까지 꼭 내고 꼭 반 장한테 전해줘! 우리 수인이가 항상 고생이 많아”

나는 반장이다. 선생님은 늘 내게 고맙다고 수고한다고 말씀해 주신다. 처음에 나를 반장으로 추천해 준 건 단짝 다희다. 나는 줄곧 뒤에서 친구들을 돕긴 했지만 쑥스러운 성격 때문에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부끄러웠다. 오늘도 난 반 친구들이 삼분의 이 정도 집에 갔다. 빈 책상을 보며 친구 한 명 한 명의 자리에 독후감 공책을 올려놓는다.

“반장 청소 다 했어 오늘 짱 열심히 했어. 어제 누가 대걸레 썼는지 어휴 닦느라 혼났네.” 까불이 민형이가 씩씩대며 바닥을 잽싸게 닦는다. 교실 바닥이 맨들맨들 하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잘했다는 사인을 보낸다. 민형이가 화답하듯 내게 윙크하고 있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종이컵 물을 받아 며칠 동안 주지 않은 방울토마토 화분이며 친구들이 키우는 화분에 물을 주었다. 화분에 물을 주며 교실 바깥을 쳐다봤는데 엄마들이 있다. 분명 초등학교 저학년 청소를 도와주러 온 엄마들일 것이다. 아니면 우리 아이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가 문제가 있나요 하고 선생님과 상담하러 온 엄마들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든 창밖에 있는 엄마들은 웃고 있다. 예쁜 생머리에 큰 눈망울을 한 엄마도 있었고 단발머리에 환한 나비웃음을 짓는 엄마도 있다. 뽀글뽀글 머리에 진한 화장을 한 엄마는 입이 크다. 한창 바깥 풍경을 보고 있는 새 교실 중앙에 있는 시계가 오후를 넘기고 있었다. 교실 불을 다 끄고 집에 가려는데 복도에서 선생님을 마주쳤다.

“수인이 이제 집 가니? 생각은 해 봤어?”

“……”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얼마 전 선생님이 내게 아니 우리 반 친구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방과 후 교실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특별한 수업이 생겼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어머니, 아버지가 있으면 수업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엄마 아빠가 잘 하는 것이 있으면 한 가지씩 적어오라고 종이를 주셨다. 그리고 반장인 내가 그 종이를 걷어서 선생님께 전달했다. 종이에는 재밌는 것들이 많이 쓰여있었다. 우리 반 공식 장난꾸러기 민형이가 쓴 종이엔 요리, 잔소리, 커피 마시기가 적혀있다. 아이들의 종이엔 그 밖에도 바느질, 화초 키우기 등 일상적인 엄마들의 일상들이 가득 나는 내지 않았다. 아니 낼 수 없었다. 우리 엄마는 잘 하는 게 없으니까. 어릴 때 심한 열병을 앓았다는데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수화를 배웠다고 한다. 집에서는 엄마의 어깨너머로 배운 수화로 엄마와 대화한다. 우리 둘 사이에는 잠깐의 호흡과 침묵, 손짓 소리만이 흐른다.

“다녀왔습니다”

문소리와 함께 내가 고개를 숙이면 엄마는 이제 왔느냐며 양팔을 젖혀 나를 안으려고 한다. 예전에는 엄마의 그 품에 안겨서 낄낄낄 하고 웃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품이 다시 낯설어졌다.

학교에서 학부모 참관수업이 있다고 하던 날 아이들은 꺄르르 웃었다. 하지만 내 얼굴엔 그늘이 가득 들어앉았다.

“그럼 그날 학교가 일찍 끝나겠다.”

“엄마랑 같이 집 가야지”

아이들은 빨리 끝나고 어떻게 집에 갈 것인지 앞에 앉은 친구들이랑 의논을 하고 있었다. 다희도 내게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나는 엄마에게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사실 엄마가 수업에 와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선생님이 수업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형식적인 것이다. 그저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학부모 참관 수업이 지나고 선생님은 내게 왜 부모님이 왜 참석하지 않으셨는지 물었다. 거짓말을 하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나중에 생활기록부를 보고 다 알 수도 있을 테니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엄마가 청각장애인이에요. 입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듣긴 하는데…….”

천천히 입을 때며 꼭 감춰둔 비밀을 선생님께 말했다. 오랫동안 접어둔 종이 귀퉁이 한 장을 겨우 핀 것 같은 기분이다. 휴, 이건 오랜 친구 다희한테도 말하지 못한 오래 묵은 비밀이다. 선생님은 나를 이해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말씀하셨다.

“잘 됐다. 그럼 수화 잘 하시겠네?”

나는 의아한 듯 선생님을 쳐다봤다. 대부분 이런 말을 하면 고개를 떨구거나 그래 그랬구나 하면서 내 등을 쓸어주며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집에서 거의 대부분 수화로 이야기하니까 어느 정도 할 수 있죠.”

“오케이”

선생님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선생님은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미셨다.

“수인이 너한테 미리 말하는 건데 특별 수업 교실을 운영할 거야 부모님들이 만드는 수업 인데 음 돈으로 살 수 없는 아주아주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데 그게 수인이 어머님인 거 같 아서.”

나는 양손을 흔들었다. 고개도 세차게 흔들었다. 학부모 참관수업이 있다는 것을 감추고 난 이후에 엄마와 심하게 싸웠기 때문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했던가. 3월에 학부모 참관수업이 있던 날 종이에 나누어져 있던 오 엑스 표시에 참여 못함에 체크를 하고 엄마 이름을 써 사인을 비슷하게 따라 했다. 몇 번이고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다 엇비슷하게 쓴 글씨를 내기로 결심했다. 처음에 선생님이 엄마가 못 오시는 이유를 물었을 때 엄마에게 일이 있다고 대충 둘러댔다. 엄마는 내 입모양을 보고 말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엄마를 보고 일일이 말하는 것보다 손짓으로 대화하는 게 일상이 됐고 편해졌다. 우리 둘 사이에는 침묵이 일상이었다. 나는 점점 칭찬에 목이 말랐다. 엄마는 내가 장애인 딸이라며 손가락질 받을까 봐 어릴 때부터 나를 엄격하게 가르쳤다. 친구들을 도와줘야 하고, 뭐든 열심히 해야 하고, 솔선수범해야 하는 어린이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나를 불러 세우더니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이야기 한 적이 있다.

“학부모 참관 수업 왜 이야기 안 했어 어제 옆집 민우 엄마한테 들었어. 일부러 안말 한 거야?”

“응”

엄마의 손끝은 화가 난 듯 점점 빠르게 움직였다.

“엄마가 창피해? 그래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는 말해줘야 되는 거 아냐?”

“엄마 미워. 엄마는 나 반장 된 것도 모르지. 맨날 친구들 도와줘야 된다,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는 다 날짜에 맞춰 다 해야 된다, 매사에 열심히 해야 된다 하면서 칭찬 한번 안 해 주고”

“엄마는 그저 너 잘 되라고 말한 거야”

엄마와 나는 서로의 섭섭함을 손짓으로 말하고 있었다.

“엄마도 마음이 많이 아팠을 거야,”

선생님이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 엄마도 그때 많이 속상했을까. 마음이 많이 아팠겠지?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내게 많이 알려주려고 했다. 낙엽이 떨어지는 나무 아래 앉아서 서걱거리는 나뭇잎을 손끝으로 비비며 무슨 소리가 나냐고 묻곤 했다. 겨울이면 발목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밭을 뛰어다녔다. 뽀드득 소리와 함께 눈 밟히는 소리가 좋아서 엄마 손을 붙들고 계속 걷고 또 걸었다. 그때의 기억이 아스라이 지나갔다.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일학년 이후에 엄마가 학교에 온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 전부였다. 아직도 그날을 기억한다. 현관 앞에서 왼쪽 가슴에 김수인이라고 새겨진 이름표를 달아주면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항상 씩씩하게 큰 소리로 대답해야 해라고 하던 엄마의 손짓이다. 친구들이 도와 달라고 하면 먼저 나서서 도와주는 어린이가 돼야 한다고 엄마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었다.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종이를 받아들고 바로 집으로 갔다. 삐뚤 빼뚤한 글씨로 우리 엄마가 잘 하는 것을 적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진심을 담아 편지를 적었다. 우리 엄마는 수화를 잘한다. 정확히는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동화책 한권을 두 권씩 읽었다. 엄마가 동화책을 수화로 읽어주면 나는 엄마한테 또박또박 큰 소리를 내서 읽어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 입모양을 보고 활짝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다. 더 이상 엄마가 창피하지 않았다. 엄마의 섭섭함도 이해가 됐다. 나는 엄마에게 무심하게 편지를 주었다. 엄마는 한참 편지를 읽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는 말없이 내 옷깃을 끌어당겨 나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따뜻한 공기가 엄마의 스웨터 사이로 스미고 있었다.



띵동댕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선생님이 스르륵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은 특별한 수업이 있는 날이에요. 오늘 수업을 듣고 방과 후에 들어 보고 싶은 친구 들은 신청하면 돼요,”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경쾌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였다. 나는 엄마가 있는 칠판 옆에 섰다. 아이들의 시선이 나와 엄마를 향해 있다. 나는 큰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우리 엄마는 청각장애인이야. 그래서 수화를 잘하는 건 아니고, 원래 수다쟁이야 동화 책 읽는 걸 좋아해서. 그래서 내가 공부를 잘 하는 거야 어렸을 때 동화책은 우리 엄마가 다 읽어줬는걸? 자 우리 천천히 배워보자.”

나는 엄마의 특별수업, 도우미를 자처했다. 친구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다희와 눈이 마주쳤다. 다희가 찡긋 윙크해 주었다. 엄마는 가끔씩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벙긋하며 소리를 냈다. 친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손을 들며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 “손으로 얘기하니까 신기해요”라며 재밌어했다. 이번에는 엄마와 내가 친구들에게 사랑한다는 아이 러브 유를 알려줬다.

“자 얘들아 엄마 손 내 손 잘 봐 주먹을 쥐었다가 새끼손가락만 피면 이게 아이야.”

아이들이 영어 아이를 따라 했다.

“러브는 총을 쏘듯이 엄지랑 검지를 피는 거야”

아이들이 총 모양 같다며 꺄르르 웃다가 맞은편에 앉은 자기의 짝꿍을 가리킨다.

“유는 새끼손가락이랑 엄지손가락을 펴는 거야.”



내가 아이 러브 유라고 크게 소리친다. 아이들이 천천히 한 단어 한 단어에 맞춰서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반복한다.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단어 하나하나를 알려줄 때마다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어깨가 으쓱했다. 수업 마지막에는 동화책 한 권을 가져왔다. 엄마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화책을 꺼내와 내가 큰소리로 읽었다. 그러면 엄마는 내 소리에 박자를 맞추기라도 하듯 바로 손짓으로 이야기했다. 엄마의 손은 허공을 타고 흘러나와 음표가 되었다. 때론 천천히 빠르게 왔다 갔다 반복하면서 말이다. 오늘은 엄마, 아니 엄마와 내가 함께한 특별한 수업이 있던 날이다.
 

동화부문 당선소감

최아정

"나를 찾아가는 글 쓰고파"

약력 
▶1989년 경기도 안양 출생 
▶숭실대학교 언론홍보학과 졸업

당선됐다는 전화를 받고 얼떨떨함과 기쁨이 같이 공존 합니다. 
평소 책을 읽고 제 생각을 글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생각이 쌓일수록 쓰고 싶은 열망이 가득 생겼고 어느 날 문득 동화라는 분야가 제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동화는 제 머릿속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 모습으로 돌아가기도 했다가 미래로 갔다가를 반복했고, 마침내 여러 편의 글이 되어 종이 속으로 걸어들어 왔습니다. 저는 이제 막 동화라는 씨앗을 심은 지 얼마 안 된 시작선에 서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두렵고 확신이 안 갈 때가 많았지만 이번수상으로 제 글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를 항상 믿어주는 엄마아빠 할머니 든든하게 옆에서 지켜주는 환이, 항상 기도해 주는 유진이, 처음 제게 글이 무엇인지 알려준 우서정 국어 선생님, 동화를 어깨 너머로 접할 수 있게 해준 김은재 작가님,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공주친구들(민경,아름,지현) 너무나 고맙습니다. 
제 글이 피어날 수 있게 날개를 달아주신 동양일보 문학상 관계자 분들,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동화를 쓰면서 살아있는 ‘나’를 찾아가는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동화부문 심사평

유영선 동화작가

 

“동심의 눈으로 바라본 감동을 전하는 작품” 

동화를 심사하다보면, 매년 그 해의 트렌드가 느껴진다. 한동안 다문화가정 아이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더니, 올해는 반려동물에 대한 글이 대폭 늘어났다. 아쉬운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특정 소외대상을 주인공으로 쓸 경우, 이해나 교감은 좋지만 소재가 비슷하다보니 개성이 약화되는 단점이 있다. 예선을 통과한 작품을 수차례 숙독하면서 기본을 갖춘 글, 스토리가 감동을 주는 글, 짜임과 문장이 좋은 글 등을 위주로 아래 6편의 작품을 골랐다. 
‘그레와 해골할아버지’(부산:이윤정), ‘특별한 수업’(경기안양:최라라), ‘지구로 온 전학생을 위한 안내서’(경기수원:이정이), ‘꼬리잡기’(서울:임승현), ‘눈물이 많은 회색 구름’(경기양주:신민경), ‘영웅돼지 피비’(서울:김지용) 등 6편의 작품들은 감동과 따뜻함을 유지하면서도 표현이 개성이 있고 동심이 살아있어서 선작에 고심을 했다. 특히 동화는 이야기글이기 때문에 이야기꾼으로서의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살폈다. 
6편의 작품 중에는 3편이 의인, 판타지 동화로 동화 고유의 특성을 살려서 반가웠다. ‘영웅돼지 피비’, ‘눈물이 많은 회색 구름’은 전통적인 동화기법을 이용한 의인동화였고, ‘지구로 온 전학생을 위한 안내서’는 우주에서 지구촌으로 이주, 한 초등학교로 전학을 하는 한 학생의 이야기로 눈길을 잡았다. 
그러나 ‘영웅돼지 피비’나 ‘눈물이 많은 회색 구름’은 교육적이나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플롯으로 신선함이 결여됐다는 점에서, ‘지구로 온 전학생을 위한 안내서’는 능숙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풀어나갔으나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점에서 손에서 내려놓았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판타지 작품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격려하고 싶다. 
나머지 3편은 각각 개성이 있는 생활동화였다. ‘그레와 해골할아버지’는 길고양이 새끼 그레를 키우는 102호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에게 버림을 받고 할머니와 사는 소년 그레 사이에 싹튼 우정에 대한 이야기로 아픔을 가진 아이가 고양이를 돌보는 할아버지를 통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된다는 감동을 주었다. ‘꼬리잡기’는 환경교육동화로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엉덩이에 쓰레기 꼬리가 달리는 꿈을 꾼 주인공이 꿈에서 깬 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게 된다는 동화로 자칫 진부해 질 수 있는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냈다. 
‘특별한 수업’은 청각장애인 엄마를 둔 주인공이 장애인인 엄마가 부끄러워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하다가 선생님에게 사실을 털어놓은 뒤 엄마를 초청, 친구들에게 수화 수업을 하게 한다는 이야기로 경쾌하고 단단한 문장이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3편 모두 나름대로 특색이 있지만 ‘그레와 해골할아버지’는 고양이와 주인공 이름이 같다거나, 고양이나 주인공이 모두 버려졌다는 식의 작위성이 흠으로 보였고, ‘꼬리잡기’는 스토리의 뻔함이 감동을 약화시켰다. 재미와 감동, 교육을 선택한다는 결정으로 ‘특별한 수업’을 당선작으로 선택한다. 모든 응모자들에게도 격려의 마음을 보내며 정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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