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희(이영희)

[동양일보]예정됐던 귀국 비행기를 탑승할 수 없게 된 우리는, 울란바토르공항 로비에서 잠시 공황상태에 빠졌다. 탑승 항공기가 빤히 보이고 30여 분의 시간이 남았었다. 우리 일행의 캐리어가 내려지는 걸 멀거니 바라보다가 되돌아 나오는 황당함이라니, 낯선 이국땅에서 졸지에 미아가 된 심정이었다.

여행사 대표가 그전 생각만 하고, 예정에 없던 마두금 공연을 관람해도 충분하다고 잘못 판단하였다. 홍콩 시위 사태로 평소보다 검색에 1시간 이상 더 걸린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우리 안식구 이름이 마두금이니 몽골 마두금(馬頭琴) 공연을 꼭 보아야 된다.”라고 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일행들도 애칭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그런 매력적인 이름을 지었느냐며 신기해했다. 마두금 공연 관람에 동의한 건 물론이었다.

그러나 몽골여행의 특별한 추억이 될 거라고 너스레를 떨던 남편은, 막상 비행기를 놓치게 되자,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게 마련이다.”라며 둘러댔다. 그러면서 일정 지체에 따른 추가 비용은 우리가 부담할 용의가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밖에서는 저렇게 통 큰 호인인체하면서 집에서는 그런 구두쇠, 독불장군이 없다. 허풍과 위선도 대물림인지, 자기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 사사건건 간섭과 감시의 끈을 놓지 않고 독선을 부리는 남편의 성격에 시달려 온 지난날을 떠올리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책 없이 막막한 시간이 이어지자 일행의 표정들이 굳어졌다.

“정치를 잘했으면 여기까지 와서 이런 푸대접을 받지 않았을 텐데......”

누군가의 넋두리가 들렸다. 화나면 무슨 소릴 못할까마는, 상황 파악을 못한 여행사나 우리 탓이다. 정치를 탓할 일은 아니지만, 내 이름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어 일행의 얼굴 보기가 민망했다.

공항 밖의 공원으로 나온 일행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사진을 찍고, 생략했던 박물관 견학을 했다. 귀국 후의 일정 때문에 마음이 급한 나는, 전시품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두금의 유래와 제작 과정을 보여 주는 작품도 있었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다. ‘마두금 이야기’라면 몽골 작가가 써야지, 미치코라는 일본 작가가 써서 유명해졌다는 얘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편은 마두금이 마두금을 외면하면 되느냐며 ‘마두금 이야기’앞에서 내 손을 잡고 읽어나갔다.

‘마두금은 몽골 전통악기이다. 동쪽에 살던 후루가, 군대에 가서 서쪽 땅을 지키다가 그곳 마부의 딸인 예쁜 처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군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후루에게 처녀는 조농할이라는 말을 주면서, 이 말을 타고 꼭 다시 돌아오라고 부탁했다. 고향에서 후루를 짝사랑하던 부잣집 아가씨가 이 사실을 알고 말을 죽였다. 조농할은 죽으면서 그 두개골을 악기로 남겼다. 후루는 그 후 서쪽지방에 두고 온 연인이 생각날 때마다 마두금을 연주했다.’라는 슬픈 사랑 이야기였다.

이혼을 생각하며 여행길에 오른 내게도 그들의 아픈 사랑이 잠시 가슴을 찡하게 했다. 한글 설명이 인쇄된 팸플릿을 한 장 가지고 나왔다. 마두금 연주곡이 담긴 CD도 한 장 샀다.



가이드가 가장 빠른 귀국 비행기 시간을 사방으로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스마트폰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내일 아침 상하이에서 출발하는 좌석표가 다섯 개 있다고 한다. 칭따오에서 더 늦게 출발하는 좌석표가 아홉 개 있어서 두 팀으로 나누어 가야 한단다. 입국 이튿날 저녁, 문학제에서 내가 시 낭송을 하기로 되어 있으므로, 그전에 꼭 가야 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우리 부부는 조금이라도 빠른 상하이로 얼른 신청을 했다. 뒤이어 혼자 온 장현섭이 신청을 했다. 울란바토르에서 가는 비행기가 내일도 없다고 하니 부부 한 팀이 더 신청을 해서 다섯 명이 채워졌다.

우리 부부가 신청한 상하이 편은, 푸둥 공항까지 가서 숙박하고 아침에 출발한다고 한다. 전세버스가 다시 울란바토르 공항으로 달려가서 우리 다섯 명과 가이드를 내려 주었다. 가이드가 한참이나 공항 직원과 실랑이를 했다. 알고 보니 나는 상하이로 신청이 됐지만, 남편은 칭따오로 신청이 됐단다. 여행사 대표가 스마트폰으로 급히 신청을 하다가 착오를 일으킨 것이다. 가이드가 대표와 한참 통화하더니 아홉 명을 태운 버스가 다시 왔다.

칭따오행 버스로 옮겨 타야 할 남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는 시선 역시 예사롭지 않다. 염려 보다 불신과 불안이 담긴 시선이다. 그러나 집에서와 달리, 대범한 척 울화를 참는 것 같다. 자신이 타야 할 버스로 가면서, 교대를 하는 김경석을 비롯한 일행에게 안식구 잘 부탁한다며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속이 오죽할까?’

이제껏 살면서 이런 황당한 일은 처음이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 부부가 잠시라도 떨어져 지내게 되니 홀가분한 면도 없지 않다. 앙금을 안고 사는 우리 부부가 다만 잠시라도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도록, 숙려 기회를 갖게 하려는 부처님의 배려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친정어머니는 첫 아들을 순산한 뒤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이 바로 나, 마두금(馬斗金)이다. 말 두(斗) 자에 쇠 금(金) 자, 금이 한 말이니, 금쪽같이 귀하게 잘 살라는 소망이 담겼다. 귀한 재물 한 말이 생기면 혼자 잘 살려 하지 말고, 남을 위해 베풀며 살라는 뜻 이랬다. 아버님은 불심이 깊으셨는데, 존경하는 주지스님의 법명이 이두(二斗)였다고 한다. 곡식 두말이 생기면 한말은 중생들에게 베풀고, 한말은 절집 식구를 위해 쓰라는 뜻이었다는데, 그 스님의 법명에서 착안하셨단다. 머리 깎고 여승 되라고 안 한 것이 다행이라 싶었지만, 어릴 때는 그 별난 이름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다. 짓궂은 사내애들이 ‘날 보고 가슴 두근거리냐’고 묻거나 ‘말 대가리’라고 놀렸다. 그래서 내 이름이 싫었는데, 마두금이라는 몽골의 민속 악기가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그 유래를 듣고 잠시 가슴이 찡했던 건 이름 때문은 아니었다. 발음이야 같지만, 한자로 쓰면 ‘마두금(馬頭琴)’과 ‘마두금(馬斗金)’은 다르다. 악기의 원산지나 내 국적이 달라 원 발음과 뜻이 모두 다른데, 공통점이 무엇인가. 그냥 우연 중의 우연일 뿐인데......

여름휴가로 내몽골에 가자는 남편의 이야기를 나는 탐탁지 않게 여겼었다.

“마두금, 당신은 꼭 몽골에 가서 마두금을 직접 보고 마두금 연주를 들어야 해. 악기도 제대로 소리를 낼 때 아름다운 것이잖아.”

남편의 몽골여행 제안은, 제안이라기보다 간청에 가까웠다. 짐작건대, 요즈음 침묵으로 일관하는 내 심중을 읽고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리라.

내 이름이 악기 이름 따위와 같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몽골의 초원 한가운데서, 태곳적 그대로의 청정한 별을 바라보는 신비한 체험에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티 없이 맑은 밤하늘의 별을 세고 여전사처럼 말을 달려 볼 수 있다면, 이혼을 생각하며 지쳐 늘어진 오감이 되살아날 것 같았다.

“죽은 사람 소원도 풀어 준다는데, 당신이 정 원한다면......”

나는 마지못해 따르듯 내숭을 떨면서 남편의 제의에 동의했다.

독재자처럼, 감시자처럼, 아니 제왕처럼 군림하는 남편의 횡포에 지쳐 나는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달래고 화해를 모색하려는 남편과 동상이몽인 우리 부부의 동반 여행이 마지막 이별여행이 될지. 아니면 옛날로 돌아갈 수 있는 빌미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잠시라도 지금 이 지겨운 상황을 잊을 수만 있다면 나쁠 건 없다 싶었다.



남편은 떡 벌어진 어깨에 우람한 체구로 남자답다는 말을 듣는다. 언뜻 보아도 위압감을 느끼는, 만만찮은 타입이다. 그런 사람이 위계질서가 분명한 직장에서 의협심을 발휘한답시고, 후배를 감싸고 상사를 치받는 만용을 부리는 것 같다. 그래서 승진과는 등 돌린 사이가 되었다. 처신을 반성하기는커녕, 밤중 홍두깨처럼 명퇴를 신청했다. 반대해도 소용없겠지만, 집안에 틀어박혀 밤낮으로 얼굴을 맞대고 살자면 얼마나 더 나를 감시하고 볶아치랴 싶어 소화조차 되지 않았다. 남편 명퇴 후 한 달도 되기 전에 가까운 공인중개사 유리창에, 우리 집 옆의 편의점을 운영하실 분을 찾는다는 쪽지가 나붙었다.

“당신 처녀 때 경리과에서 일했으니 편의점 한번 운영해보면 어때?”

느닷없는 제안이었다. 이미 독단으로 결정하고 명퇴금을 헐어서 계약까지 한 눈치였다. 내 의견이 파고들 틈은 없었으므로, 나는 묵묵부답으로 넘겼다.

“내가 수시로 교대할 테니 걱정 말라고...... ”

말뿐이지 싶었는데, 그래도 한동안 자주 교대를 해 주고, 찾는 고객이 많아서 제법 재미가 있었다. 웬만큼 적응이 되니 일을 할 때도 고생스럽다는 생각보다, 남편의 감시에서 벗어나 해방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재미도 해방감도 잠시, 건너편 아파트 앞에 규모가 제법 큰 마트가 생기면서 상황이 변했다. 전 주인이 그 낌새를 눈치채고 내놓은 모양인데, 그걸 덥석 물었던 것이다. 수입은 줄고 입을 틀어막아도 터져 나오는 하품만 늘어갔다. 남편의 교대 약속도 초반뿐이었다. 동창회다 등산이다 골프다, 갈 곳 많아 분주해진 남편은 종일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전화질만하다가 해 기울 무렵에 나타나 매출 상황을 내놓으라 성화다. 조금이라도 착오가 있으면 “어느 놈에게 빼돌렸기에 매출이 이것뿐이냐.”라고, 피의자를 앉혀놓고 으름장을 놓던 본색을 나타냈다. 그러고도 일단 통장에 입금된 돈은 나와 무관한 것이 되었다. 일하는 보람은커녕, 앵벌이 그게 딱 내 신세였다.

편의점을 시작하고 얼마 후, 얼굴 구경조차 못하던 친구를 모처럼 만났다.

답답한 속을 털어놓는 내 얘기를 들은 친구는, 남편의 그런 행태가 의협심 아닌 의처증 때문이라고 했다. 심리 상담을 받아 보던지 그게 안 되면 법률자문이라도 한번 받아보라고, 아는 변호사의 전화번호까지 알려 주었다.

“지금 네 남편 하는 걸로 보아선 상담에 응할 것 같지 않고, 설혹 이혼을 한 대도 위자료 받을 조건이 안 될 테니 증거를 확보해 놓아야 돼.”

친구는 “제 버릇 개 못 준다.”라며 은근히 이혼을 종용했다.



남편은 경찰서 수사 담당 형사였다. 출장이 잦았다. 출장 중인 때는 밤낮 가리지 않고 수시로 전화를 하는 건 물론, 내근 중의 한낮에도 툭하면 전화를 했다. 신혼 초에는 그것이 관심과 사랑인 줄 알았다. 염려 때문이려니,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으려니 믿었다. 그러나 허니문 기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남편의 습벽은 여전했다. 핸드폰이 흔치않던 때라 잠시라도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면, 어김없이 남편이 와서 눈에 불을 켜고 기다렸다. 그리고 추궁하는 것이었다. 어디 갔다 왔느냐, 누굴 만났느냐. 주부가 살림 제쳐놓고 툭하면 집을 비우고 나다녀도 되는 거냐......

대답하기에 지쳐 입을 닫을 때까지 몰아붙였다.

입을 닫고 침묵으로 버티자, 남편을 무시하는 거냐며 손찌검을 다 했다.

이건 사랑이나 염려가 아니라, 불신이고 감시고 폭력이다. 그 후 남편에 대한 믿음은 깨지고 내 가슴에 쌓이는 건 미움과 분노였다. 분출구를 찾지 못한 분노는 시루떡같이 켜켜이 쌓여 절망으로 가고 있었다.

금쪽같이 살아라. 남에게 베풀며 살라 하던 아버지의 소망은 결혼과 동시에 풍비박산된 셈이다. 금쪽같은 내 인생은 아버지의 딸이었을 때뿐이었고, 베풀며 사는 인생은 시작도 되기 전에 파탄을 맞을 판이었다. 편의점 수입이 점점 줄어드는 만큼, 남편과 나 사이도 좋지 않은 쪽으로 기울어졌다.

남편과 교대한 시간을 이용해 봄나물도 살 겸, 전통시장을 한 바퀴 돌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가방을 열고 핸드폰을 찾는 사이에 신호음이 꺼졌다. 5분쯤 후에 다시 신호음이 울렸으나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또 신호음이 꺼졌다. 받기 전에 성급히 꺼진 전화는 모두 남편이 건 것이므로, 내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남편은 받지 않았다. 황급히 편의점으로 가 보니 문이 잠겨 있었다. 서둘러 집에 갔더니, 짐작대로 남편이 먹이를 놓친 범상을 하고 있었다. 조사실에서 흉악범 피의자를 다루 듯, 추궁이 이어졌다. 나와 결혼 전에 사귀던 작자를 만났느냐. 그 작자가 어떤 놈이냐. 무슨 깨 볶는 얘기가 그리 많아서 전화도 안 받고 그렇게 놀아나도 되는 거냐. 재탕 삼탕의 반복 문초다. 왈칵 쏟아내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나는 입을 닫았다. 쏟아지는 건 터질 듯한 가슴에서 치솟는 한숨, 그리고 주체할 수없이 흐르는 눈물과 콧물이었다. 적장을 무릎 꿇린 승전 장군처럼 추궁과 질책을 계속하는 남편의 말을 끊고, 나는 딱 한 마디만 하고 일어섰다.

“우리 여기서 끝내요.”

나는 옷장을 열어젖히고 보따리를 싸려는 데, 남편의 고함이 터졌다.

“당신 미쳤어?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나는 당신에게 붙잡혀 수갑 찬 죄인도 아니고 감시받는 사찰 대상도 아니에요. 노예나 시녀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은 보통 여자라고요.”

내가 남편을 향해 한 말 중 가장 크고 긴 말이었다.

“여보 이러지 마. 이건 아니야. 이러면 안 된다고.”

갑자기 목소리를 낮춘 남편이 내 손을 잡았다.

“이 손 놔요. 안 되는 건 당신 사정이고, 나는 이대로 살수 없어요.”

“이러지 마. 당신이 미워서가 아니야. 왜 내 맘을 몰라?”

‘왜 내 맘을 모르냐고? 그 맘이 어떤 맘인데?’ 나는 남편의 돌변한 태도와 비굴한 말씨가 역겨웠다. 또 한차례 손찌검을 각오하고 선고처럼 말했다.

“당신은 유능한 형사였는지 몰라도, 평범한 남편 될 자격도 없어. 끝내요.” 남편의 오른손이 어깨 위로 올라갔다. 나는 탁상 위의 재떨이를 들어 남편을 향해 힘껏 던졌다. 파국을 각오한 저항이었다. 빗나간 유리 재떨이가 맞은편 벽에 부딪치며 내는 파열음과, 어깨 위로 올라간 남편의 손이 자신의 가슴을 치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다. 남편과 내가 경악한 것도 역시 동시였다.

나는 남편의 손이 나를 때리려는 것으로 짐작하고 본능적인 방어책으로 재떨이를 집어던졌고, 남편은 의외로 과격한 나의 반항 때문에 답답해서 제 가슴을 쳤을 것이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기 가슴을 쳤던 남편의 손이, 이번엔 내 얼굴이나 몸통 다른 어느 곳을 가격하리라.

불과 몇 초간의 침묵, 아니 적막이 흐르는 동안 나는 눈을 뜨지 못했다. 그러나 가격은 없었다. 나는 눈을 떴다. 눈앞에 벌어진 이변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은 남편이 눈앞에 있었다.

사막의 신기루인가, 아니면 환시인지 환각인지. 눈을 껌벅여 봐도 여전했다.

“여보 내가 잘 못했어. 난 당신 없으면 버티고 살 수가 없어. 날 용서해.”

초연 배우가 대사를 외 듯, 남편의 목소리는 작고 떨렸다. 나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결정 장애자처럼 판단불능 상태가 되었다.

남편은 울고 있었다. 울면서, 지금까지 내가 짐작도 못 했던 말을 했다.



어릴 적 얘기였다. 계모 밑에서 자랐는데, 생모가 여덟 살 때 집 뒤의 밤나무에 목을 맸기 때문이었다. 밤꽃이 지렁이처럼 밟히던 날이었는데, 굵은 밑가지에 목이 부러진 허수아비처럼 매달려 있던 어머니를 보았다고 한다. 그 후부터 자기는 밤을 먹지 못한다고 했다.

“어렵던 시절에, 큰아들인 내 아버지만 대학까지 가르치고 서둘러 결혼을 시켰어. 어머니는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공부를 하지 못했는데, 중매로 결혼이 성사됐으니 처음부터 기우는 결혼이었지. 무식한 어머니를 백안시하고 창피하게 생각하던 아버지의 불만은 점차 학대로 변했어. 견딜 수 없었던 어머니는 나와 다섯 살 위의 누나를 남겨놓고 세상을 버렸지. 어머니 보다 많이 배우고 예쁜 계모는 유식한 만큼 간교해서 우리 남매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보는 사람이 없을 때는 매질도 서슴지 않았어. 그럴 때마다 누나는 나를 감싸 안고 대신 매를 맞았어. 좀 더 자라서는 매질하는 계모에게 반항을 했지만, 그건 “왜 때려요?”라는 비명 같은 외마디 소리가 전부였지. 그러던 누나가 열네 살 때 가출을 했고, 혼자 남은 나는 늘 공포에 떨면서 누나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어. 누나는 오지 않았어. 누나와 함께 있을 때도 어머니가 늘 그리웠지만, 누나까지 사라진 후엔 밤낮없이 계모의 눈총과 매질이 무서웠어. 혼자서 떨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떨려......”

남편의 눈물은 그쳤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작고 흔들렸다.

“좀 더 커서는 내가 또래들에게 매 맞는 아이나 놀림당하는 아이들 편을 들거나 대신 싸웠지. 어린 시절의 외롭고 두려웠던 기억과 누나도 없이 혼자서 계모에게 매질을 당하던 아픔 때문인지도 몰라. 누나는 자신보다 나를 위하고 사랑했지만, 결국 나를 버려두고 집을 나갔어. 당신도 누나처럼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지 않을까 불안해. 당신 소재가 확인되지 않으면 나는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 해. 당신 힘든 거 나도 알아. 용서해. 반성하고 고칠게.”

독선자인 듯 감시자인 듯 적장을 굴복시킨 장수처럼 당당하던 거구의 남자가, 가냘프고 외로운 소년이 되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나는 용서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반성하고 고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라는 친구의 말뿐이 아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박힌 트라우마는 표피에 난 상처처럼 쉽게 낫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상하이 푸둥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가까운 곳에 호텔을 잡았다.

부부 팀은 6층이고 장현섭 · 김경석과 나는 7층인데, 공교롭게도 그들이 내 옆방이다. 부부가 6층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7층에서 두 남자와 같이 내리며 괜스레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눈을 내리깔았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마치 그 현장을 보고 있는 듯 잘 도착했느냐는 남편의 전화였다. 남편은 잠들면 비행기 못 타니 잠들지 않게 전화를 계속하겠다고 한다. 문 꼭 잠그고 절대 문 열어 주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또 본병이 도졌구나,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씻고 누우면 곯아떨어질 것 같아 텔레비전 스위치를 눌렀다. 얼굴이 화끈했다. 19금 채널에 맞춰놨는지 노골적인 장면이 아랫도리를 강타했다. 최면에 걸린 듯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채널을 돌리지 못했다. 속옷이 흥건히 젖었다. 자극이 없더라도, 오랫동안 굶주린 내 몸은 해갈을 원했지만 남편과는 아니었다. 전라의 남녀가 벌이는 몸부림을 보면서, 나의 원초적 본능은 ktx 상행선을 탄 것 같이 속도를 냈다. 차마 못 볼 것이라 여기면서도 눈을 돌리지 않는 모순은 익명의 장막 뒤에서 거침없이 노출되는 인간의 본능인가. 옆방에 신체 건장한 남자가 있다는 사실이 더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수절 과부가 밤꽃 피는 시절이면 넓적다리를 송곳으로 찔렀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실제 밤꽃 냄새의 성분인 스퍼미딘과 스퍼민이란 성분은 동물의 정액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성보다 감성이 마성처럼 뻗치는 밤에 밤꽃 향기를 풀어 놓아서인가. 나는 잠시 색녀가 되었다.

“등신, 머저리!” 부지중에 소리를 질렀나 보다. “무슨 일 있어요?”라는 장현섭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이내 요조숙녀로 돌아와 문도 열지 않고 아무 일 없다고 했다. 외간 남자의 침입을 은근히 기다렸으면서, 아닌 척 시침을 떼는 간교하고 비겁한 이중성이 내 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까똑’ 또 소리가 난다. 밤새 몇 차례나 전화를 하고도 뭐가 못 미더워 첫새벽에 또 ‘까똑’인가? 미안하다고 반성한다며 다짐하던 얼마 전의 일을 까먹고 수시로 도지는 병, 과연 그 병소를 끌어안고 어찌 살 건가?

그러나 남편이 보낸 문자는 트라우마에 갇힌 불신의 발로는 아니었다.



내 사랑 마두금~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별같이 반짝이는 눈으로 미소를 짓는데 정신이 몽롱했소. 거기에 빠져들어 늘 당신 주위를 맴돌았지. 당신은 치자 꽃향기로 내게 다가왔어. 상큼하면서도 허스키한 사이다 음색은 더 매력적이어서 내가 꼭 연주하고픈 악기가 되었소. 지금도 예쁘지만 당신이 그때 얼마나 청초하고 예뻤던지. 깊은 산속 암벽 위에 홀로 피어나는 이슬 먹은 원추리 꽃 같았소. 날마다 당신을 만나는 게 삶의 의미로 자리 잡았소. 거절하는 당신에게 껌딱지같이 딱 달라붙어 좋은 인연을 만들었소.. 그리고 행복을 심어 오늘까지 가꾸어 왔네.. 영원히 사랑하오.



읽고 나니 부지불식간에 웃음이 나왔다.

‘뭐, 좋은 인연이라고? 행복을 가꾸었다고?’

그래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이라는 걸 의식해선지, 험악한 소리나 문자가 없는 게 다행이다. 밤에 문 두드린 남자는 없었느냐, 문 열어주고 불러들인 작자가 있다면 그냥 두지 않을 거라는 등......

반응이 없으면 또 전화나 문자가 올 것이므로 답을 보냈다.

‘좋은 여행 마지막 여정까지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귀국해서 뵈어요.’

말을 아낀 것은 혹시라도 남편이 속단할까 염려해서였다.

‘나도 사랑해요.’ 어쩌고 감정이 섞이면, 필시 동상이몽의 동반 여행이 의기 상통하여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속단을 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패장처럼 꿇어앉아 눈물을 흘리며 털어놓던 트라우마, 소년 시절부터 심어진 분리불안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남편의 고백에 연민이 갔다. 하지만 그의 다짐을 믿을 수 없고, 그래서 나는 결심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다섯 시가 가까워 왔다. 화장을 하려고 거울 앞에 앉았다. 지난밤 비록 혼자만의 상상이었지만 본능에만 충실했던 중년의 여인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늘 남편을 짐승같이 취급하고 혼자 고상한척하더니..... ‘미친 것’ 소리가 절로 나왔다. 회오리치던 속내까지 감추려고 콤팩트를 더 오래 두드렸다. ‘탁 탁 탁 탁......’ 콤팩트는 내 얼굴을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죄하는 것이었다.

마두금에 얽힌 애절한 사랑을 상상하며, 텔레비전 화면에서 용틀임치는 전라의 남녀와 함께 했다. 밤새 내 육신에도 태풍이 휘돌아 나갔지만,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쥐를 삼킨 고양이가 잔인했던 순간을 낯선 방에 버려두고 시침을 떼듯, 나 혼자서 한밤을 뜨겁게 보낸 객실의 키를 서서히 뺐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장현섭 팀도 좇아와 동승을 했다. 그들을 보니 괜스레 무안해져서 등을 돌리고 벽을 바라봤다. 남편과 떨어져 있을 때 슬며시 다가와 은근히 친밀감을 표시하던 장현섭이 “뭘 이렇게 달고 다니냐?”라며 등 뒤에서 슬쩍 끌어안는다. 손길만으로도 감전이 된 듯 온몸이 찌르르했다.

“타이밍이 예술이라는 것도 모르는 등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두 남자가 무슨 소리인가 하고 나를 쳐다본다. 무례하다는 마음보다 더 많은 아쉬움이 감춰진 것을 알았을까. 나는 새삼스럽게 얼굴이 뜨거워졌다.



부부 팀은 또 비행기를 놓칠까 봐 불안해서 한 시간 전에 나왔다고 했다.

가이드도 없고 티켓도 없는데 어떻게 공항버스를 탈 수 있을지, 여행사 대표를 깨워 통화를 했다. 호텔 카운터 직원을 바꿔 주며 실랑이를 한끝에, 다섯 명이 탈 수 있는 승합 차가 도착했다. 이왕이면 짐 부치는 19번 게이트 앞에 세워주었으면 하고, 기사한테 “헬로” 해도 반응이 없다. “웨이”하니 돌아본다. 궁하면 통한다고 손짓 발짓 다하여 의사를 관찰시켰다.

우리나라로 가는 동방항공에 무난히 탑승을 했다. 울란바토르에서 올 때와 같이 부부 팀이 앞에 앉고 김경석 · 장현섭과 내가 그들 뒤에 앉았다. 올 때는 남편과 나란히 앉아 왔었는데, 방향은 다르지만 느긋하고 평온한 마음은 아니다.

도착 시간을 보니 내일 행사에 펑크를 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라 안도의 숨이 나왔다.

장현섭이 여기저기서 셀카로 찍은 자기 사진을 보여주더니, 내 것도 좀 보여 달라고 했다. 사진으로 보니 까무잡잡한 피부에 선 굵은 이목구비가 잘 생긴 배우 같다. 흘깃흘깃 쳐다본 생얼 보다 더 선명하고 섹시해 보인다.

나는 사진을 잘 못 찍어서 다른 사람들 모델만 되어 준다고 거절을 했는데, 굳이 좀 보자고 졸랐다. 옆에 앉아서 더 거절하기도 민망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가 “아니 이건!” 했다. 무엇인가 가로채서 보니 참 가관이다. 남편이 하도 전화를 해서 녹음 버튼을 눌러 놓았었다. 그런데 동영상 버튼을 눌러 놓았었나 보다. 혼자 보기에도 민망한 빈 방의 모노드라마 한편이 찍혀 있었다. 절명하는 듯한 여자의 교성이 들리고 여과 없는 본능 그대로 낯 뜨거운 욕망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를 가장 부끄럽게 만든 건 화면 속에서 남자의 애무를 받던 여자가 ‘하고 싶다.’라고 내뱉는 신음소리였다. 열정적으로 인생을 개척하는 시간이나 그런 곳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면 꿈이 많고 도전적이구나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봐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당장 삭제 버튼을 눌렀다.

‘등신 머저리.’라고 하던 소리를 나 자신에게 확 되돌려 주고 싶었다.

귀가 얇은 탓인지 증거를 잡아 두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아내를 감시하듯 추궁하는 남편의 전화 목소리를 녹음한다는 것이 엉뚱한 버튼을 눌러 놓았다. 제발에 걸려 넘어지는 숙맥 짓을 한 셈이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장현섭과의 동석이 껄끄러웠다. 초침보다 빠르게 헤어지고 싶은데 비행속도는 시침보다 느려서 착륙 시간이 아직도 많이 남은듯했다.

남자라는 상대만 없었을 뿐이지, 같은 순간에 내가 함몰되었던 원초적 욕망을 저울로 달아보았다면 남녀 두 접합의 무게보다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눈치 빠른 장현섭이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결코 작은 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용기를 냈어야 했는데. 미적미적하다가 천하절색 마두금을 연주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네......”

얼굴 뜨거운 수치심과 함께 나라는 여자가 무척 낯설었다. 이제껏 남편이 감시한다고 불평하며 자유가 그립다고 비명을 달고 살았다. 교통사고가 대부분 쌍방 과실이듯, 나와 남편의 관계도 쌍방의 탓이거나 내 탓이 더 많지 않았을까? 동상이몽인 우리 부부의 관계는 과연 남편만의 탓일까? 장현섭의 뇌리에 박힌 내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트라우마에 갇힌 남편의 의처증에 시달리는 가련하고 정숙한 여인? 아니면 스스로 밤꽃 향기에 취해 요염한 육체로 남성의 본능을 자극하는 몸 뜨거운 여인인가. 남편과 이혼을 위해 잡으려던 증거 대신 엉뚱하게도 이혼 당하기 마침한 증거를 잡았으니, 장현섭의 뇌리에 박힌 내 모습은 뻔할 터였다.

‘내가 용기를 냈어야 했는데......’ 장현섭이 중얼거린 말속에는 나를 낚았다 놓친 고기로 생각하는 게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장현섭이 착각이나 망상에 빠진 탕아라고 나무랄 처지도 못된다. 내 스스로 증거를 그의 손에 쥐여준 셈이다. 나는 정숙하지만 의처증 남편에게 시달리는 가련하고 불행한 여인이다. 그렇게 말한다면 장현섭은 아마 가가대소하며 나를 조롱할 것이다.

나는 친구의 말대로 남편에게 정신과 치료를 권하지 않았다. 아직은 변호사와 상담도 하지 않았다.

뜨겁고 행복하던 신혼시절의 기억은 모두 허공에 날려버리고,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전부 남편 탓으로 돌리는 이기적인 여자가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 속을 다 알아버린 외간 남자와 나란히 앉아 구름보다 높은 하늘을 날고 있다. 남자는 이제 말이 없지만, 색에 굶주린 마두금이란 여자를 마음만 내키면 언제라도 원초적 신음 소리를 내도록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난밤에 오랫동안 억제했던 육체가 본능에 휘둘리면서, 옆방에 있던 이 남자를 나는 마음속으로 원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동석 자체가 형벌처럼 느껴진다. 이 남자가 무례를 저지르거나 혐오감을 주어서가 아니라, 숨겨뒀던 나의 원형을 몽땅 들켜버려서다. 그런데도 남편 탓을 당연한 구호처럼 가슴에 담고, 감시와 학대에 시달리는 피해자로 자처해 왔던 내가 아닌가?

인천공항을 출발할 때는 비록 동상이몽일망정, 남들처럼 남편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남편은 비록 가식일지라도 자상했다. 기체 밑으로 흐르는 떼구름 속에서 갖가지 형상을 찾아서 그걸 보라고 일일이 내게 가리켜 주었다.

“저건 쥐 모양인데, 옆의 고양이 형상보다 크지? 진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지 못하겠지. 언제 저런 큰 쥐가 나타날지 모르잖나.”

유치원생 같은 남편의 말속에는 세상을 강자와 약자로 구분하는 이분법이 잠재돼 있었다. 절대강자였던 계모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리라. 신기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지만, 나는 계속 고개를 끄덕였었다. 우리도 남들같이 다정한 부부처럼 보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와 다른 비행기에 탑승한 남편의 속이 새카맣게 타고 있을 것이다. 짝 없는 두 남자가 나와 동행이라는 게 불안을 더 키웠을 것이다. 가뭄에 갈라지는 논바닥 같이 타는 속을 감추고 의연한 체 애쓰고 있을 남편이 불쌍해졌다.

그 큰 체구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어린애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던 모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한없이 여린 남자. 목을 매고 죽은 엄마와 가출한 누나와의 이별로 가슴에 못이 박힌 소년. 사랑의 결핍으로 관심이 늘 필요했던 소년. 나는 왜 그런 남편을 외면하고 ‘금쪽같은 나’만을 생각했던가? 측은한 마음이 일면서 내 이름을 지은 뜻에 생각이 미쳤다. 남편이 보고 싶어 졌다.

멀고 아득한 초원을 사이에 두고 헤어진 서쪽의 처녀와 동쪽의 후루. 타고 갈 말이 죽어 만나지 못하고 애 태우던 두 사람은 누구를 탓하고 원망했을까? 누구도 상대를 탓하지 않았으리라. 간절한 기다림과 함께 언젠가 초원을 가로질러 가서 만나는 날을 꿈 꾸며 그리워했으리라.

옆 좌석의 남자, ‘내가 용기를 냈어야 했는데......’라며 나 마두금을 연주하지 못해 지난밤을 후회하던 그는 고개를 삐딱하게 꺾은 채 곤히 자고 있다. 이제 옆 좌석의 마두금 따위에 흥미도 없다는 듯.

잠시 후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잠을 깬 장현섭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저기......”라고 입을 열었다. 나는 그의 말을 툭 잘랐다.

“내릴 준비나 하세요.”

공항에 도착하면 얼마 후, 남편이 탄 비행기도 도착할 것이다. 몇 분이 되던 몇 시간이 되던, 나는 공항 로비에서 남편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많이 보고 싶었다.”라고 진심으로 말할 것이다.

집에 돌아가면 남편과 함께 마두금 CD를 틀어놓고, 그 애절한 음률을 다시 들어 보리라. 남편이 나를 연주하겠다면 그 또한 함께 하리라.

기체 착륙으로 인한 가벼운 충격 후 활주로를 달리는 창밖으로 눈에 익은 풍경들이 빠르게 내달린다. 떠난 것은 언젠가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법. 그건 진리인가 보다.

 

소설 부문 당선소감

"뿌리를 깊게 내려 흔들리지 않는 모소 대나무를 닮고파"

이다희(이영희)

 

약력
-1955년 충북 제천 출생
-충북대 행정대학원 졸업
-1998년 한맥문학 수필 신인상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칡꽃 향기’. ‘정비공’
-충청북도교육청 방과후학교 지원단장 역임
-(현)중부매일 ‘삶&수필’ 필진
-(현)청주시 1인 1책 강사

희망 고문이 이런 것이구나 싶어 전환을 모색할 즈음 낭보가 날아들었습니다.
5년 전에 황당한 일을 겪고 인간 경시의 일부 의료진에 경종을, 독자들에게는 정보랄까 하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지요. 숙성이 될 5년 후쯤으로 계획을 세우며, 1인 1책 지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필 밭에서 경작을 해왔는데 동경만 하던 소설 밭을 넘보게 된 것입니다.
대문호 괴테는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을 쓴 적이 없고 또 그것을 그대로 쓴 적도 없다.’라고 했는데, 지키지 못하고 1년 먼저 덤빈 탓으로 지난해 최종 선에서 탈락했습니다.
여름휴가 시 비행기 탑승을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에 부딪혔습니다. 돌아오는 기내에서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여행에서 낚아챈 것을 비틀어가며 이 졸작 한 편을 구상했습니다. 
중국 극동지방에서만 자라는 모소 대나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4년 동안 거의 자라지 않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합니다. 땅속에서 사방으로 뿌리를 뻗치며 기반을 다지고, 5년 후 하루에 30센티미터가 더 자라 불과 6주 후에 울창한 숲을 이룹니다. 모소 대나무가 될 수 있다고 힘을 주시고 눈을 뜨게 해주신 오병수 은사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귀한 말씀이 자성적 예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해 자주 흔들리던 저에게 받침대를 세워주신 심사위원님과 이 땅의 푸른 깃발 동양일보에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희망이 있고 정감이 가는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어릴 때 연필을 쥐여주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던 지금은 뵐 수 없는 아버지, 구순의 연세에도 용기를 주시는 어머니는 제 자신감의 원천이십니다. 반려자 시력 걱정으로 분서갱유를 들먹이면서도 늘 웃게 해주는 남편과 저 신명나는 일에 빠져 미안함으로 다가오는 아이들, 형제자매들, 친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동행을 하는 친구 경희가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고 응원합니다. 누군가의 인품에 이끌리어 종교에 귀의하기도 하지요. 지켜봐 주시는 그런 문우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소설 심사평
 

안수길 소설가
안수길 소설가

 

“구성·서술력 튼실하나 참신한 소재에 눈 돌려야” 

본심에 오른 15편 가운데 최종심에 오른 5편은 나름대로의 장점을 지니고 있으나, 소재 선택이나, 그것을 소화해 내는 시각에 ‘새롭다’할 만큼 눈을 끄는 작품이 없어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에 두 시간만(김단비)’은 전자기기의 편리성 때문에 오히려 시달림을 받는 화자(話者)와 전자파로 인해 육체적 고통을 겪는 작가의 일상을 통해, 현대인들의 삭막한 일상을 그렸다. 중반까지의 상황전개가 지루한 반면에, 결말부분의 ‘전알퇴’회원들의 반응은 너무 가볍게 다뤄져 주제의 농도가 흐려진 감이 있다. 상황서술의 신축과 분량 조절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지막 지상낙원(박세환)’은 탄탄한 문장과 함께 긴장감을 알맞게 유지하며 이끌어가는 전개기술도 우수한 편이나, 전반적인 구성과 주제가 메테를링크의 동화 ‘파랑새’의 구도를 접하는 느낌이다. 엉뚱한 곳에서 낙원을 찾던 ‘마음의 그늘’이 걷히게 된 동기도 반전의 묘미를 살렸다기보다, 안일하게 처리된 감이 있다.    
‘울지 않는 아이(전찬무)’는 툭툭 내던지듯 이어지는 문장이지만, 상황파악에 거부감이 없고 가독성도 높은 작품이다. 자신을 스스로 지켜내기 위해 감정표현에 문을 닫아버린 아이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유치원 교사의 독백은, 유아기의 성장환경이 인성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말해주는, 성인들을 향한 일종의 호소다. 화자의 어린 시절을 외롭게 보내도록 방치한 부모와 현재의 자상한 부모, 그 부모의 상반 된 모습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게 단점이다.
‘기억의 재구성(우경희)’은 어머니와 아버지, 아버지 가슴에 새겨진 일본인소녀. 그 삼각사랑의 갈등을 대물림처럼 앓고 있는 주인공이, 아픈 기억들을 되살려내는 의식의 흐름을 그린 작품이다. 절제 된 문장이 차분하고 애잔한 분위기를 형성, 행간에 독자 스스로 메워갈 상상의 여백도 넉넉히 남겨주면서 소설의 맛을 살려냈다. 다만 아버지가 겪은 사랑의 갈등을 압축하고 ‘나’의 기억 속에 묻혀있는 아픔, 그리고 현재의 아픔을 좀 더 상술했더라면, 재구성되는 기억들의 윤곽이 분명해지고 주제도 확연해지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회귀(이다희)’는 남편과의 갈등을 견디다 못해 이혼을 결심한 화자가, 마지막 동반여행을 통해 자기성찰과 함께 남편의 성격을 이해하게 됨으로써,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구성이나 서술이 튼실하고 주제도 분명하여 단편으로서의 틀을 잘 갖춘 작품이다. 화자의 결심과 귀국 비행기의 착륙장면을 일치시킨 결말은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효과를 낼만큼, 필자의 구성력이 돋보인다. 소재가 다소 진부함에도 당선작으로 미는 것은 참신한 소재발굴에 착안한다면 좋은 작품을 쓸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당선자의 정진을 빌며, 모든 응모자들의 수고에 감사와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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