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소설가/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강준희 논설위원/소설가/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동양일보]에히리 프롬은 ‘소유나 존재냐’에서 우리 인간의 삶을 ‘소유양태의 삶’과 ‘존재양태의 삶’으로 구분 짓고 있다.

그에 의하면 소유양태의 삶에서는 계속적 빈곤감과 파괴본능에로 연결되고, 존재양태의 삶에서 비로소 윤리와 문화가 창조의 가능성으로 구분 짓고 있다.

그는 또 소유양태의 삶에서는 계속적 빈곤감과 파괴본능에로 연결되고, 존재양태의 삶에서 비로소 윤리와 문화가 창조의 가능성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사람이란 가지려는 소유욕에서 보다 존재하려는 존재욕에서 훨씬 더 윤리적 인간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 주위엔 존경할만한 사람보다 경멸받아 마땅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왜 그런가?

이는 모두가 존재양태의 삶보다는 소유양태의 삶을 향유하려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꿀돼지처럼 욕심 부려 남이야 죽든 말든 자기 혼자만 잘 살려는 심보가 팽배해 잊기 때문이다.

키이츠의 말대로 현대인은 자동차를 보자 첫눈에 반해 그것과 결혼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명(明)나라의 학자 양신(楊愼)은 벌은 임금을 받드는 군신의 충(忠)이 있고, 까마귀는 어버이를 봉양하는 효(孝)가 있으며, 닭은 불러서 같이 먹는 붕우(朋友)의 정이 있고, 기러기는 절개를 지키는 부부의 별(別)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멸해야 할 위인들은 대저 어떤 유형들인가.

이는 첫째, 꿀돼지처럼 자기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살아 디룩디룩 살찌는 인간.

둘째, 애국관 국가관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어 사회에 국가에 백해무익한 인간.

셋째, 돈과 권력이라면 못할 짓이 없어 반인간적 행위까지도 능사로 하는 인간.

넷째, 사기를 치든 협잡을 하던 과정은 상관치 않고 결과만을 중요시한 채 아부 아첨하는 인간.

다섯째, 몸에 좋다고만 하면 구더기고 지렁이고 가리지 않고 아귀아귀 먹어대는 천박한 인간.

여섯째, 모였다 하면 아무데서나 화투장 두들기는 상습 도박꾼.

일곱째, 깨끗한 사람을 존경하기는커녕 되레 무능하다고 치부하는 인간,

여덟째, 고절(高節) 경개(耿介)로 지조 지켜 훼절하지 않는 사람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하는 인간.

아홉째, 온갖 탈법, 불법, 위법, 범법 다 저지르고도 돈으로 해결하고 돈이면 다 된다고 굳게 믿는 마모니스트들.

열째, 사회 규범(질서)을 무시하고도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요령 위주의 염량배들.

이 외에도 경멸해야 할 유형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우선 이상의 위인들만이라도 경멸하고 타기해 이하시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하다.

그 사람이 깨끗하고 정당하게 오늘에 이르렀다면 마땅히 존경해야 하고 그 사람이 부당하고 더럽게 오늘에 이르렀다면 마땅히 침 뱉고 성토해야한다.

그런데 실제는 이와 정반대여서 인간 이하의 파렴치로 돈을 벌건 중상모략 사기 협잡으로 돈을 벌건 허구한 날 호텔에서 식사하고 터키탕에서 마사지 목욕하고 고급 승용차에 골프나 치면서 한판에 수 억씩 하는 도박이나 하고 그러다 시들하면 향락 퇴폐에 탐닉하다 해외에 나가 싹쓸이 관광이나 하는, 도대체가 일고의 가치조차 없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위인들이 이 나라 대한민국의 졸부 중엔 얼마나 있을까.

정신 차릴 일이다.

우리가, 우리 국민이 정말 정신을 제대로 똑바로만 차린다면 위에서 열거한 우수마발만도 못한 위인들이 이 땅에 부쩝지를 못할 것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이런 부류들은 에리히 프롬이 말한 대로 존재양태 아닌 소유양태로만 삶을 사는 무리들이다.

우리 인간은 세상에 나와 단 몇 가지만이라도 가치 있는 일을 하고 가야 한다.

그렇다. 진실한 불만과 비판은 인간과 국가의 발전을 기약하는 원동력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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