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내년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지난 17일 시작됐지만 정작 선거의 룰 세팅은 오리무중이다. 경기 규칙도 마련되지 않았는데 선수들은 경기장에 나와 몸풀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예비후보로 등록하면 선거사무소 설치, 선거 운동용 명함 배부, 전화 통화 지지 호소, 후원금 모금 같은 선거운동을 제한적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모호하다 보니 예비후보 등록을 주저하거나 등록하더라도 효율적 선거운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인지도 높고 조직 기반 탄탄한 기성 정치인과 달리 정치신인들은 벌써 차별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 국민들의 국회 물갈이 요구가 만만치 않은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고 있으니 유감스럽다.

사정이 이런데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안갯속이다. 한 석이라도 더 얻는 데 유리한 제도를 만들려는 당리당략이 부딪히며 막바지 협상 판을 달구고 있어서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협상 불참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4+1'(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 공조 틀마저 삐걱거리는 듯하니 불안해 보인다. 3+1이 내부 조율 끝에 석패율제도 수용을 요구했지만, 민주당이 거부하여 협상 장기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3+1은 패스트트랙 원안이 민주당에 유리하게 수정돼 가고 있음에도 민주당이 소수정당들에 더 많은 양보를 바란다고 비판하고 있다. 비례대표 의석수를 총 75석에서 50석으로 줄이기로 한 것이나 연동률 적용 비례대표 의석수를 그 50석 중 30석으로만 제한하기로 한 것은 큰 양보였는데도 말이다.

민주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합의할 수 있는 것부터 처리하자며 선(先) 선거법-후(後) 검찰 개혁법 처리 원칙에 어긋나는 입장까지 밝히고 나섰다. 선거법 협상 타결이 늦어질 것 같으니까 그전에라도 본회의를 열어 예산 부수 법안, 민생법안, 검찰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자는 것이다. 집권당으로서는 으레 할 수 있는 주장이고 민의에 가까운 언급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원칙이 지난 4월 4+1의 패스트트랙 입법 공조 때 합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합의와 원칙이 휴짓조각보다 못해서야 무슨 원내 정치가 되겠는가. 국정에 대한 무한 책임을 느낀다면 이제라도 민주당은 합의와 원칙의 무거움을 직시하고 입법 완수를 위한 원내 세력 규합에 한층 더 집중해야 한다. 국민이 보고 듣기에 그럴싸한 말은 효험이 오래가지 않는다. 누가 예산 부수 법안과 민생 법안의 선 처리 방침을 문제 삼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하려면 다른 정당들의 동의를 구해 임시국회를 열고 본회의를 개의해야 한다. 여당은 그게 쉽지 않은 국회 교착이 이어지는 원인을 짚고 치밀한 원내 전략 구사에 매달릴 때다.

작금의 선거법 개정은 조금이라도 더 '민의 그대로' 정당 간에 의석이 배분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과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권고안 등을 참고삼아 추진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당 득표율과 총의석수 배분을 직결하는 연동률 개념을 역대 처음 도입하는 것은 획기적 진전이다. 비록, 일부 정치권과 선관위가 모델로 추종했던 독일처럼 100% 아닌 50% 연동률에 그치고 초과의석도 인정하지 않았으나, 법에 이를 못 박는다면 장차 더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4+1 협상 과정에서 안 그래도 불완전했던 패스트트랙 원안이 누더기가 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협상 자체를 야바위로 조롱하는 양상도 빚어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대표를 뽑는 제21대 총선이 불과 넉 달도 안 남았다. 규칙 마련을 더 미뤘다가는 대사를 그르칠까 우려된다. 차질 최소화를 위해 여야는 선거법 합의 처리에 지혜를 더 짜내야 한다. 여기에서 제1야당인 한국당 역시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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