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시인

[동양일보]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아쉬움과 함께 작은 보람 같은 것이 우리를 머뭇거리게 합니다. 손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 편지 끝머리에 붙이던 ‘추신(追伸)’처럼 한 마디 덧붙이고 싶은 심정입니다. 편지글을 완성하는 데 추신이 ‘화룡점정(畵龍點睛)’처럼 꼭 필요한 맺음말은 아니지만, 있어도 되고 없어도 그만인 하찮은 ‘쪽-글’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추신: 고추 판 돈 조금 넣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잠바나 하나 사 입거라.’

이처럼 추신은 무심한 듯 슬며시 손에 쥐여 주는 한 줌 사랑이며, 따뜻한 속마음입니다.

‘추신: 아버진 그만하시다. 한 번 내려오너라.’ 에둘러 물어보고 싶은 자식 걱정이고 그리움입니다. 추신은 휘영청 밝은 달밤에 사립문을 닫아걸며 객지 나간 자식 생각에 불현 듯 터져 나오는 한숨 소리 같은 것입니다.

추신은 우표까지 붙여놓고도 한 줄 미련이 남아 망설이기도 하고, 몇 자 남긴 추신이 속내를 들킨 것처럼 맘에 걸리기도 하는 그 무엇입니다.

영국의 수필가이자 극작가인 R. 스틸은 ‘여자는 편지의 추신 외에는 본마음을 적지 않는다.’라고 여자의 마음과 추신의 속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모(歲暮)가 되면 아쉬움인지 연민인지 모를 괜한 감상이 ‘추신’처럼 불쑥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마쳐야 할 뭔가 있는 것처럼 조바심이 일기도 하고, 그동안 챙기지 못한 누군가에게 마음이 쓰이기도 합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감상에 젖는 일이 자연스런 현상인지, 괜한 정서적 과소비에 불과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긴 해도 기원전 46년 율리우스력이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인류가 우주의 시간을 나눠 한 해의 경계를 정한 것은 참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만약 장구한 세월을 그날이 그날인 채로 살았다면 빠르게 흘러간 한 해의 헛헛함도 못 느꼈을 테고 다가 올 새해에 대한 설렘도 없었을 것입니다.

며칠남지 않은 2019년, 세밑을 지나는 요즘이 편지 말미에 적는 ‘추신’같은 시기입니다.

특히 크리스마스의 이튿날인 오늘이 그렇습니다. 오늘은 '박싱데이(boxing day)'라고 해서 편지의 ‘추신’처럼 크리스마스의 뜻을 더 분명히 해주는 날입니다.

아기예수님의 평화와 사랑을 맘껏 선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싱데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엇갈립니다만, 대개는 비슷한 의미입니다. 12월 25일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나면 주인이 하인이나 농노들에게 옷이나 음식, 과일 등을 선물로 주었고, 선물을 상자에 포장(boxing)한다는 뜻으로 ‘박싱데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 거대한 헌금함을 열어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 주는 오래된 전통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2000년 전, 이스라엘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고을에서 비롯된 ‘기쁜 소식’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는 행사가 이제 전 세계인의 마음 가운데 녹아들어 가장 보편적인 축제의 하나가 됐습니다.

물론 지금의 ‘박싱데이(boxing day)'는 본래의 뜻에서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에 미처 처분하지 못한 재고상품을 소매상들이 특별할인판매를 단행하여 판매를 촉진하는 날입니다. 소비자에게 ’착한가격‘이라는 선물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박싱데이‘의 본래의미를 찾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새해 전날까지 할인판매를 단행하는 ’박싱주간(boxing-week)'의 무한경쟁은 상대가 쓰러질 때 까지 치고받는 영어로 ‘복싱(boxing, 권투)’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크리스마스의 다음 날, ‘박싱데이’의 오늘, 선물상자에 담아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추신: 물건은 싸게, 아기예수님의 사랑은 덤으로 듬뿍’

2019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 해의 긴 편지도 끝나갑니다.

‘추신: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충분히 성숙했고 아름다웠습니다. 잘 가요.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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