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어느 날 사무실로 웬 사람이 불쑥 찾아와 나를 찾았다. 친구라고 하더란다.

마침 외출 중이었던 터라 연락을 받고 사무실로 들어가자 낯선 얼굴의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민낯에 긴머리를 질끈 동이고 갈색 빛 덧옷를 입은 모습이 주위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차림새였다. 차를 권하면서 잠시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 친구가 아니라 동생의 친구였다. 중동에서 살고 있다가 잠시 귀국한 길에, 친구를 만나고 싶어 수소문하다가 나를 찾아온 것이라고 했다.

동생의 연락처를 가르쳐 준 뒤 잠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군 장교생활을 거쳐 대학에서 서반아어를 전공한 뒤 일찌감치 외국으로 나가서 중동의 여러 나라를 거쳐 현재는 모로코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그 오랜 외국생활이 어디 만만했으랴. 그에게서 깊은 내공이 느껴졌다. 그는 어쩌다보니 인생의 후반기. 결혼도 하지 않고 혈혈단신 외롭게 지내다보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귀국해야겠다 싶지만, 막상 고향에 돌아와 보면 고향 역시 낯설어서 다시 떠나게 된다며, 디아스포라처럼 사는 것이 자기 인생이라고 했다.



#영희(가명)는 지금 캐나다에 살고 있다. 목사와 결혼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그의 소식이 끊겼던 것은 20여 년 전. 아무도 그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영희가 아이를 데리고 환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땐 놀랄 수 밖에. 그 후론 잊지 않을 만큼의 간격으로 고향을 찾는다.

영희는 일찍 이혼을 했다고 했다. 목사인 남편이 밖에서는 인격자이며 천사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집에 돌아오면 야수처럼 매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 지옥 같은 생활을 피해 아이를 데리고 캐나다로 이주해 봉사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아이는 자라서 결혼을 하고 영희는 혼자 살고 있는데,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난민을 돕는 일이다. 이런 저런 어려움으로 고국을 떠난 각국의 난민들이 그 사회에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법적 상담과 서류작성 지원, 언어, 교육 등을 맡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의 생활은 몇몇 교회 후원금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최저수준으로 빈한하게 살고 있다. 물론 빈한하다는 것은 주위의 시각이지 그에겐 충분한 삶이다. 영희는 늘 고향이 그립다고 했다. 그러나 영희가 한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것은 그도 아는 일이다.



#1년에 한번 씩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이름을 지은 모임도 아니고, 딱히 모여서 무엇을 하는 모임도 아니다. 학교 시절 인연으로 만났지만, 각자 주어진 곳에서 자신의 일을 하며 열심히 살다가 문득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함이 드는 친구들로, 몇 년전부터 자연스럽게 연결이 돼 송년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올해도 1년 만의 만남을 가졌다. 이제 모두 70을 바라보는 나이, 아직 병원에 누운 친구는 없지만, 그래도 1년 새 흰머리가 늘고 나이듦이 느껴졌다. 밥만 먹고 헤어지긴 아쉽다고 올해는 특별히 각자가 지난 일들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에게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10명 남짓한 친구들 중에 암 수술을 한 친구가 네 명이나 되고, 사별을 한 친구, 남편과 헤어진 친구, 그리고 별거를 하는 친구까지 아픔들이 있었다. 사업이 어려워지게 된 이야기, 부모님의 치매이야기, 귀여운 손주이야기, 그리곤 이제 무엇을 하고 살까, 건강을 어떻게 지킬까 등등의 잡다한 이야기들은 반가움으로 들렸다.

기해년 마지막을 보내면서 조던 피터슨의 책 ‘혼돈의 해독제-12가지의 인생법칙’을 펼친다. 조던은 ‘인간이면 누구나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힘겨워 한다. 모두 위로받을만 하다’며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고 조언한다.

온몸으로 삶의 무게를 이겨내는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진심으로 그들을 위로하며, 다가오는 경자년엔 친구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만나고 싶은 최고의 모습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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