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희 청주시 상당구 세무과 주무관

민정희 청주시 상당구 세무과 주무관

[동양일보]학창시절엔 대학 입시와 수능을, 졸업 후에는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공무원 준비를, 합격한 후에는 첫 사회생활에서의 적응을, 적응 후에는 결혼에 대한 고민을, 결혼 후에는 자녀계획에 대한 고민을, 지금은 일과 육아를 함께하는 워킹맘에 대한 고민을…

그 상황과 맞닥뜨렸을 땐 그 순간들이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막상 지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행복한 시간들 중의 하나였다. 물론 처음부터 그 순간들이 모두 행복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니다. 남들이 들으면 별거 아닐지도 모르는 시련 아닌 시련들이, 유독 힘들었던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대학 졸업 후 짧지 않은 수험생활은 흔히 사람들이‘실패’라고 말하는 순간을 경험했던 시기였다. 또래 친구들은 이미 사회 구성원으로 자기 자리를 지키며, 그 조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됐고, 나는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자괴감이 느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 시절,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서 평균 연령 65세로 이뤄진 ‘청춘합창단’은 메말라가던 나의 심장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단비였다. “애 보는 늙은이, 집 보는 늙은이, 갈 곳 설 곳 잃어가는 우리에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 수 있게 배려해주신 남자의 자격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한 참가자가 합창단 지원서에 쓰신 내용이었다. 젊었을 때와 똑같이 감정도 느끼고, 하고 싶은 것도 있는, 그저 우리보다 조금 더 삶의 풍파를 많이 겪어 단단해지신 분들일 뿐인데 세월이 흘렀단 이유 하나로 점점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는 그분들,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를 부르는 청춘합창단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에서 85세 최고령자 노강진 할머니의 솔로가 이어졌다. “또다시 가려무나.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 세월아 가려무나♪♬ 아름답게 다가오라♩ 지나온 시간처럼….”

성별·나이·직업 불문하고 꿈과 희망을 키우며 노래를 부르는 단원들의 모습을 보며, 자괴감과 두려움이라는 무게에 억눌려 소중한 시간들을 즐기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힘든 시간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자책하던 나에게 “긴장하는 사람은 지고, 설레는 사람은 이긴다”라고 말하며 첫 공연으로 잔뜩 긴장한 단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김태원의 한 마디와 서로를 다독이고 격려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단원들의 모습은 부정적으로 변해가던 나의 안타까운 순간들을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어줬다.

과거에 힘들다 여기며 자책했던 나의 시간들은 이제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값진 경험이라 여기며, 긴장이 아닌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 사람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 사랑하는 부모님의 딸, 한 직장의 구성원으로 나의 역할에 충실하며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도, 미련도 없이 진심을 다해 매 순간을 사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사람이기에 나의 소중한 시간들이 힘들고 버겁다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습관처럼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를 흥얼거려본다.

“가려무나♪ 가려무나♬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 세월아 가려무나♪♬ 아름답게 다가오라 지나온 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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