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소설가/한국선비계승회장

강준희 논설위원/소설가/한국선비계승회장

[동양일보]몇 년 전 서울시교육청이 새 학기부터 ‘경제 살리기’ 근검 절약교육을 강화키로 하고 ‘다시 몽당연필에 깍지를 끼워야 합니다’라는 주제로 ‘우리 경제 살리기 교육’ 기본 계획을 발표해 주목을 끈바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실천 과제로 우리 경제 바로 알기, 다시 쓰고 바꿔 쓰기, 식생활 바로 알기, 다시 쓰고 바꿔 쓰기, 덜 쓰고 아껴 쓰기, 사교육비 줄이기 등을 정해 이에 대한 실천도 병행할 계획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바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서울시교육청은 또 1인 1통장 갖기와 폐품 수집 등 절약운동을 장려하고 남는 교실 활용, 알뜰매장 운영, 교과서 및 교복 물려주기도 다시 시작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학교 급식을 실시 중인 초등학교에서는 ‘먹을 만큼 덜어서 먹기’, ‘남은 음식 버리지 않기’ 운동도 함께 펴 나가기로 했다 한다.

때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어서 교육이 이제야 정신을 차려 제구실을 하나보다 싶었다.

하지만 이것도 두고 볼 일인지라 속단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아직 여기 대한 성공 여부는 미지수이니까.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은 상당수가 큰일 났다 싶을 만큼 잘못 길러지고 있어 이 아이들의 장래가 매우 걱정된다.

어려움을 모르고 배고픔을 모르고 물건 귀한 줄을 모르고 음식 귀한 줄을 모른 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오냐오냐 하며 만지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길렀으니 어찌 이런 아이들의 장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 아이들이 커서 이 나라의 기둥이 되고 동량이 돼야 된다고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노릇이어서 백척간두에 선 듯한 느낌이 든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요즘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한 켤레에 몇 만원은 거들떠도 안 보고 몇 십만 원씩 하는 값비싼 신발을 경쟁적으로 신고 다닌다 한다.

신발만이 아니다.

유명 회사의 점퍼나 바지 등 의류도 경쟁적으로 고가품만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이들 중 누가 유명 메이커 아닌 옷을 입거나 유명 브랜드가 아닌 신발을 신고 다니면 그 아이는 무시당하고 업신여김 당함은 물론 따돌림까지 당해 값비싼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다니는 아이들과는 절대로 어울리질 않는다 한다.

형편이 어려워 값비싼 옷과 신발을 못 가진 아이들은 오매불망 유명 메이커의 옷과 신발을 갖고 싶고 또 함께 어울리고 싶어 종당엔 옷이며 신발을 훔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한다.

하지만 어디 또 이뿐인가?

아이들은 정신 못 차리는 신세대 부모에 의해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가고 있다 한다.

그저 뭐든지 사달라면 다 사주고 멀쩡한 물건도 싫증나면 마구 버려 물건에 대한 애착이나 소중함을 모르게 가르치는 데다 그저 오냐오냐 과보호로 길러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아이로 사육(?)하고 있어 이런 아이들에게 기개(氣槪) 있고 사회성 있고 효성 있고 국가관(國家觀) 있는 아이로 기르는 건 기대난이라 한다.

물질의 풍요와 문명의 이기(利器) 속에서 배고픔과 그리움을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시급히 가르쳐야 할 것은 물건 아끼는 것과 먹는 것 입는 것에 대한 귀중함과 소중함이다.

요즘 아이들은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자란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이 제일이고 배고픈 사람한테는 밥이 제일이듯 어렵게 자란 아이들이라야 힘든 일을 헤쳐 나갈 힘이 생긴다.

몽당연필에 침 묻혀가며 구멍 숭숭 뚫린 마분지를 학습장으로 쓰던 때의 아이들은 10리 20리 보통이고 멀게는 30리 까지 걸어서 통학을 했다.

뿐만이 아니다.

얼굴이 멀겋게 어리는 나물죽에 보리개떡도 배불리 못 먹어 쓰러질 듯 비실대면서도 그 힘든 농사일 다 거들며 자랐고 송기에 잔대 캐먹고 오디에 개암 따 먹으면서도 구김살 하나 없이 자랐다.

컴퓨터시대에 몽당연필은 실상 비합리적 대위개념(代位槪念)이다.

이럼에도 우리는 몽당연필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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