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국회의원

김종대 국회의원

[동양일보]가경동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사창 사거리로 갑시다”라고 했다.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문득 창밖을 보니 벌써 목적지를 한 참 지나 시계탑에 이르고 있다. 놀란 필자가 “왜 서지 않았느냐”고 묻자 기사가 천연덕스럽게 하는 말. “아무 말씀이 없어서” 청주에서 가끔 겪는 일이다. 황당하지만 다시 차를 돌려 원래 목적지로 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아무 말이 없었다”는 탓으로 돌려진다. 목적지를 입력하고 기다린다고 정확하게 출력이 되나? 단순한 기계는 그럴 수 있지만 복잡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입력과 출력 사이에 은닉된 인간만의 사고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운전기사의 생각으로는 승객이 목적지 부근에 다다를 즈음이면 무언가 내릴 채비를 해야 한다. 그런 기미가 없으니 더 가자는 뜻으로 해석을 한 것이다. 그런데 기계가 이런 인간의 사고방식을 흉내기 시작했다. 입력층(input layer)과 출력층(output layer) 사이에 다중의 은닉층(hidden layer)을 포함하는 기계, 즉 다층 인공신경망(ANN: Artificial Neural Network)이 그것이다. 뛰어난 기술을 새로 적용한 것도 아니고 단지 중간에 입력된 값을 해석할 수 있는 회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 결과 기계가 입력된 값을 과도하게 해석하여 엉뚱한 출력을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이를 일컬어 과적합(overfitting)이라고 한다. 승객이 목적지를 지나 더 가리라고 예측하는 운전기사의 오류와 비슷하다.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잘못된 결과를 보정해주는 피드백을 주면 드디어 기계는 학습을 시작한다. 여기서 엄청난 기술적 진보가 시작되었다.

중간의 은닉된 단계는 쓸모없고 번거로운 일이라고 치부될 일이 아니라 심층적이고 강화된 학습을 하는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 정치가 과적합 문제도 해결하고 뛰어난 지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유권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대변하는 다층 신경망으로서 정당이 존재해야 한다. 이 정당끼리는 상이한 정치적 요구로 서로 격렬하게 경쟁해야 한다. 이를 적대적 생성 네트워크 모델(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이라고 한다. 생성자가 데이터를 만들면 판별자가 가짜 여부를 식별해서 피드백하면 생성자는 더 정교한 데이터를 만든다. 알파고가 기계끼리 자체 대국으로 강화된 학습을 한 결과 인간을 능가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정당끼리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정당에게만 발언권을 주는 특권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정당이 저마다 유권자를 대변하도록 허용해야 하는데, 지난 해 연말의 선거법 개정은 다양한 군소정당에게 이전보다 동등한 자격을 부여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정당이 지지자들의 정치적 요구를 잘 반영할 수 있는 다층 신경망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당개혁이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법 개정의 의미도 퇴색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정치인의 잘못된 출력 값, 즉 과적합을 어떻게 교정시킬 것인가. 즉 정치인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의 문제다.

국회의원에게는 국민소환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한 번 선출되면 현행범이 아닌 한 4년 임기는 무조건 보장되는 특권을 누린다. 이 특권은 잘못을 하고도 책임을 지지 않는 고장 난 기계의 상징이다. 생산적인 국회가 아니라 극단적 정쟁으로 치닫는 이유가 여기서 발생한다. 이런 특권을 모조리 제거하고 나면 이제야 피드백이 잘 되는 학습하고 진화하는 기계로서 생산적 국회의 상이 정립될 것이다. 우리 정치는 정확히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만큼만 개혁하면 된다. 선거개혁, 정당개혁, 국회개혁. 거침없이 나가면 된다. 무엇이 그리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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