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동양일보]다른 해와 달리 세상을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어 놓았던 2019년이 가고 지혜와 총명의 동물로 상징되는 쥐띠해인 새로운 60년의 첫날 2020년 원단을 맞은 지가 벌써 5일이나 지나고 있다. 태양이 억겁(億劫)의 시·공(時·空)을 뚫고 동녘하늘에 빨간 빛으로 떠오른 지도 일주일 여가 지나고 있는 것이다. 날짜가 더 가기 전에 새해 첫 날과 ‘나’와의 만남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이번에 맞는 경자(庚子) 새해는 1년에 한번 바뀌는 새해 아침(원단 : 元旦)과는 사뭇 다르다. 새해 첫날이면서 다시 또 다른 100년을 시작하는 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기에 새해 첫날을 그 어느 해보다 역사적인 만남의 날이 되게 하여야 한다. 새해 첫날에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초대하여 역사적인 만남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자신을 역사라는 거울 앞에 비추어보고 점검하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자신의 활동이나 행적 등이 역사가 될 수 있는 가치를 가졌는가를 평가하고 과감히 바로 세우는 공정과 정의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한 해가 다시 시작되는 경건한 날, 자신을 초대하여 지금까지의 모습과 행보를 빈틈없이 점검하고 바른 것과 그른 것을 골라내어 바른 것은 선양하고 그른 것은 배척하는 자아재정립(自我再定立)의 계기로 삼는 것이다. 잘못되었다고 평가된 것에 대해서는 객관적, 정의적 관점에서 하나하나 엄밀한 분석과 규명이 수반되어야 한다. 결코 형식적 의례적이 아닌 내용적 본질적인 성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성찰의 과정은 제야의 종소리에 맞춰 종료하였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대상에 대해서는 서둘러서 새해 아침에 영양가 높고 일거다득(一擧多得)의 효과를 거양할 수 있는 설계와 청사진으로 채워야 한다. 그리하여 시계열상으로 이어지는 자연적인 시간이 아닌 시공을 뛰어넘어 도약하는 인위적 의도적 시간과 과실(果實)의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바로 역사적 행보를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적이란 말은 재탄생 및 새 장을 여는 것에 대한 자신과의 약속이고 ‘참 나를 만든다’는 선언인 것을 말한다. 역사와 같이 호흡하고 사는 삶을 말한다. 이런 삶이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존재가치에 맞춰서 사는 삶이다.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역사적 족적으로 기록될 수 있게 하는 삶, 긍정적, 미래지향적 사고와 자세로 역사 속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위대한 삶인 것이다. 삶이 그만큼 정의와 대의, 대승과 대아의 차원에서 영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이익과 편의에서 탈피하여 공익(公益)을 우선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리킨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의 “인간만이 죽는다. 식물과 동물은 소멸할 뿐이다”라는 말처럼 인간은 한시적 존재이다. 일정기간 지구에 머물다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죽는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원래 본집이었던 하늘나라로 가거나 다른 동물로 환생하거나 지옥으로 간다. 사는 것과 죽는 것(생사 : 生死)은 본래 하나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지구상에 고유명사로서의 ‘나’라는 존재는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100세 이상 살지만, 우주의 시간 개념으로 보면 찰나에 불과한 허무한 존재이다. 허무한 존재이기에 무언가 의미있는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 역사적인 삶을 소망하는 것이다. 나 자신만의 편안을 도모하는 ‘작은 나’가 아니라 인류와 함께하고 인류의 안녕과 행복에 도움이 되는 ‘나’, ‘대아적인 나’로서의 큰 삶을 도모하려 한다. 역사적인 삶을 원하는 것이다.

새해 아침의 기원은 이러한 역사적 삶의 마당에 자신을 초대하고 역사적인 삶을 선언하고 만천하에 다짐하는 가장 엄숙하고 진지한 시간이어야 한다. 자신의 새로운 탄생을 다짐하고 역사적 출범의 닻을 올리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렇다. 새해의 기원과 기도는 자신의 새로운 출발에 대한 서약이다. 역사적인 만남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하늘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약속이다. 내공을 쌓는 노력이다.

인간의 삶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가치있고 의미있는(significant) 일이다. 협소한 공간에 갇히고, 무의식의 시간에 방치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지구촌의 중심이면서 주변이기도 한 통합의 시・공에서 정체성이 분명하고 선제적 행보로 ‘머물다가는 자리’를 남길 수 있는 역사적인 삶이 되는 것이기에 그렇다. 새해에 자신을 초대하여 역사적인 만남의 기회로 삼는 계기가 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역사적인 존재로 승화시키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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