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동양일보]새해가 시작되고 벌써 초순을 지나고 있다.

해가 바뀌면서 또다시 생멸하는 시간이 역사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망각의 강으로 흘러갈 것이다. 한 해 설계가 결산이다 사업보고다 지난해 뒤치다꺼리에 밀려,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서 해마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희망 삼아 하게 된다.

지난해는 어땠을까. 제목만 보는데도 매번 쫓기듯 쓰기에 바빴던 기억에 얼굴이 화끈하다. 애초에 그릇이 작은 데 튼실하고 좋은 글을 담는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 욕심인가 알면서도, 어떻게 하면 부끄러움이 가려질까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는 것이다. 다행히 이년 전 ‘칼럼 속 칼럼’이라는 제목으로 독자들과 한 약속은 어느 정도 지켰다는 생각에 위안이 된다.

칼럼에 관하여 필자만의 기준이라도 공유하고 싶어서 썼던 글이다. 올해도 그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겠다는 다짐이거니와, 신문칼럼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미흡해도 가려서 읽어주시라는 청이다.

‘칼럼’의 사전적 의미는 ‘신문, 잡지 따위의 특별기고 또는 그 기고란. 주로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정세나 첨예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짧은 시평’ 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신문칼럼의 특성상 적어도 현재성과 시사성, 함축성과 논리성을 고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게 상식이지만. 문제는 필자가 피해가고 싶은 세 ‘기둥(칼럼-column)’에 정면으로 부딪게 되는 꼴이라 고민스럽다.

첫째: 정치적 얘기는 일단 피하고 싶다. 우선 정치에 대해서는 식견도 부족하고 끼어들고 싶지가 않다. 사람이 됐든 일이 됐든 나름대로 옳다고 지지했던 어떤 것들이 나중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볼 때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핏대를 올리며 누구와 대거리할 정치적 밑천도, 소신도, 상대를 이해할만한 여유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못되더군요. 저는 연기나 하겠습니다.”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원로배우 이순재 씨의 정치체험담이다.

‘정치 냉소주의’에서 벗어나도록 젊은 세대들을 이끌어야 할 책무가 기성세대에 있음에도, 희생과 봉사의 자세가 돼 있지 않다면, 흙탕물은 피해서 가는 게 상책이라는 원론적인 충고에 그치게 된다.

둘째: ‘첨예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그렇다. 첨예한 사회적 이슈라면 대부분 극렬한 갈등국면이거나, 참혹한 사고이거나 반인륜적 행태이거나 선정적인 사건일 경우가 많다.

이미 떠들썩해진 뉴스를 다시 들여다보고 글로 옮기는 것이 힘들고, 되새겨야 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셋째: 어려운 주제나 복잡한 사안을 다루는 정보 위주의 칼럼은 피하고 싶다. 인공지능으로 상징되는 4차산업 시대에 칼럼형식으로 어떤 지식정보를 주고 받아야 가치가 있을 것인가. ‘현재성’에서도 ‘시사성’에서도 칼럼형식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자칫 뒤땅만 골라 치는 초보 골퍼처럼 헛스윙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재방송처럼 다 아는 얘기를 중언부언할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 손안의 ‘척척박사’가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시대다. 읽기보다는 오감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다원화된 일상에서, 이제 ‘논리성’, ‘함축성’ 정도가 신문칼럼의 기대치일 것인데 그마저도 유려한 문체로 잘 다듬어놓지 않으면 아무도 찾지 않는 골목식당과 다름없을 것이다.

과연 위에서 말한 세 가지 기둥을 피해서 무슨 칼럼을 쓸 것인가. 이미 맛깔나는 명 칼럼 조미료(MSG)에 길든 입맛을 되돌릴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희망은 있다. 한 사람의 손님을 위해서도 진국을 우려내는 허름한 ‘맛집’처럼 손수 가꾼 건강한 식재료로 정성껏 차려낸다면 지금처럼 더러 찾는 손님이 있을 것이다.

자승자박이 될지언정, 세 가지 기둥을 피해 새해엔 맛은 없지만, 최소한 몸에는 해롭지 않은 그런 얘기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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