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음성 동성초등학교 교사

박효진 음성 동성초등학교 교사

[동양일보]오랜만에 라디오를 켰다. 새로운 진행자가 방송을 시작했다. 그가 음악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거니와 직업도 음악과 관련이 없는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인지라 의외였다. 그의 인사말은 뜻밖이었다.

“오늘 무척 힘들었습니다. 정말 힘들었어요. 많이 피곤했는데 거짓말같이 이 방송만 오면 힘이 납니다. 여러분들 만날 생각만 하면 피곤함이 싹 가셔요.”

평소 무뚝뚝한 성격으로 알려진 그의 입에서 나온 살가운 말이었다. 다소 낯간지러운 면이 있기는 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라디오를 자주 듣는 청취자라면 사랑을 고백하는 진행자를 자주 접했을 터다. 라디오 진행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청취자에게 애정의 말을 자주 쏟아낸다. 그들이 하나같이 ‘라디오는 참 따뜻한 매체’라 말한다. 라디오를 어떻게 이토록 인간적인 매체가 되었을까. 라디오는 어째서 보이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 자기 속내를 드러낼 만큼 친밀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라디오의 핵심은 바로 그 ‘안 보임’임에서 나온다. 상대방이 나를 볼 수 없고, 나 역시 상대방을 볼 수 없다는 시각단절이 곧 ‘온전히 들어주기’로 승화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대면하여 대화할 때는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다. 대면 대화에서는 내 말이 길어지는가 싶으면 어김없이 상대의 동공은 맥이 풀린다. 내 앞에 앉은 상대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주는 일도 부지기수다. 내 말이 맞는다고 맞장구를 치기는커녕 끼어들어 반박도 서슴지 않는다. 수면 부족인지 집중력 부족인지, 연신 하품을 해대는 상대를 볼 때면 말 그대로 ‘말할 맛’이 가신다.

라디오 진행자는 이 모든 상황으로부터 자유롭다. 그것이 착각을 일으킨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말이다. 실상은 라디오를 켠 채로 재봉틀을 돌리고, 라디오에 집중할 사이도 없이 몰두하여 그림을 그리더라도 진행자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설령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수많은 채널 중 내 주파수를 ‘일부러’ 찾아온 대중은 전적으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 내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사람인 것이다. 내 말을 경청할 뿐 아니라 비판 없이 수용하고 댓글을 통해 공감의 말을 전해 주는 사람들에게 어느 사람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미하엘 엔데의 책 <모모>의 주인공 모모의 장점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모를 찾아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말하기가 서툴러 속내를 꺼내기까지 두 시간이 걸리는 사람의 말을 모모는 기꺼이 기다릴 줄 안다. 오직 상대의 말을 들어줌으로써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 기적을 만들게 한다.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이처럼 심오한 힘을 가지고 있다.

어느덧 나는 말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더 많이 알려준다는 명목으로 수업시간에 끊임없이 말하는 것도 모자라 쉬는 시간, 급식시간, 하교 시간 생활지도의 미명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댄다. 아이들에겐 ‘조용히’라는 굴레를 씌운 채 말이다.

교사에겐 ‘모모’의 자질이 필요하다. 학교에는 ‘모모’를 필요로 하는 많은 학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생과의 관계에 어려움에 놓였을 때 혹은 학생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할 때 교사는 먼저 온전히 들어줄 준비를 해야 한다. 느리지만 인내를 가지고 학생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학생은 자신의 말을 온전히 들어주고 있는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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