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지난날 시골에서는 거개의 집이 개를 길렀다. 똥개다. 즉 별로 가치 없는 잡종의 개다. 이 개는 사람의 배설물을 잘 먹는다. 그 중에서도 아기의 그것을. 그래서 아기가 응가를 하면 할머니나 엄마 들은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나 큰 개를 데려다 아기 궁둥이에 들이댔다. 그러면 이 놈들은 바닥에 떨어진 건 물론 궁둥이에 붙어 있는 것 그리고 아직도 비질비즐 나오는 것까지 싹싹 핥아 먹는다. 그래서 똥강아지 또는 똥개다. 그런데 꼭 지켜야 할 일이 있다. 곧 이 똥개가 아기의 응가 물을 혀로 맛있게 핥을 때는 그 보호자 되는 어른들은 아기의 사타구니의 중요부분을 손바닥으로 감싸서 보호해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중요부분에까지 혀를 날름거리며 훼손하는 일이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아마 전에 그런 불상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정작 제 응가 물은 집에서 가까운 밭에다 누는데, 그것도 제 놈들 편의상 물기 없는 마른 밭을 찾으려니 기름진 밭보다는 메마른 집 근처의 밭일 수밖에 없다. 하루 이틀 아니고 연일 여기다 볼일을 보니 이 밭은 그야말로 개똥이 많이 널려 있는 개똥밭이 된다. 개똥 천지이니 얼마나 더럽고 후진 곳일까. 그래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는 말이 있다. 즉, 천하고 고생스럽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또 ‘개똥철학’이라는 말도 있다. 아주 대수롭지 않은 생각을 철한인 듯이 내세우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개똥번역’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엉터리로 번역해 놓은 것을 말한다. 그뿐인가 ‘개똥참외’라는 건, 길가나 들 같은 데에 저절로 자라서 열린 참외다. 그러니까 개가 참외 속을 먹고 씨를 배설해서 난 참외로서, 보통의 참외보다 작고 맛이 없다. 여하튼 이렇게 ‘개똥’은 천대받는 것의 대명사다.

예전엔 이 개똥밭에서 난 가난하고 천한 아이, 즉 개똥쇠‘라 불리는 아이가 더러 있었다. 얼마나 집 없이 가난하고 천한 여자였으면 이 개똥밭에다 그 애비의 이름도 모르는 애를 낳았을까마는 애 역시 개똥쇠라는 이름으로 기구한 일생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후에 제 어미나 아비의 출처를 알고 뒤늦게 성명을 지은 일도 있었다고는 한다. 그런데 이는 개구멍받이와는 다르다. 개구멍이란, 울타리나 대문짝 밑을 터놓고 개가 드나들게 하는 구멍을 말하는데, 어떤 사람이 이 개구멍으로 갓난아이를 들이 밀어버리고 간 것을 받아서 기른 아이를 개구멍받이라 한다. (개구멍바지는, 밑을 터서 오줌똥을 누기에 편하게 만들어진 아이바지) 그래도 이 개구멍받이는 받아서 기른 사람이 자녀나 식구 대우를 해서 제대로 성명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에 개똥쇠가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라 했거니와 지금의 7,80줄에 들어선 노인장들은 기억한다. “개똥쇠 말여, 이 마을 떠난 지도 꽤 되지?” “우리 청년 때 갔으니께 한 육십여 년 됐지 아메.” “그럴껴, 잘 떠났제 뭐. 애들이나 어른이나 개똥쇠 라고 홀대했으니 제 맘이 편했을껴?” “그래도 그놈과 같은 영리한 놈이 그 수모 감당하면서 그때까지 버틴 거 보믄 참으로 참을성두 많았던 애여.” 근본도 모르는 개똥쇠를 동네할머니들이 돌아가며 거둬주어 이생원집 꼴머슴으로 들어갔다는 것인데 열 칠팔 세부터는 세경을 받아 차곡차곡 모았다는 것이다. “그 애 싹수 그때부터 진즉에 알았다는 거 아녀.” “그렇댜. 우리 선친 말이 있었어. ‘개똥밭에도 이슬 내릴 날이 있다’고 말여.” “그 말은 어려운 일에 처해 있는 사람도 좋은 때를 만날 때가 있다는 말 아녀.” “맞어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이거지.” “그때 어른들은 그 애의 됨됨이를 보고 ‘개똥밭에서 인물 난다’고도 했잖여.” “그건, 변변하지 못한 집안에서도 훌륭한 인물이 난다는 말 아녀.” “거 자네 개똥도 모르면서 남의 말마다 토 달지 말어!” “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 말라는 거지.” “뭣이, 내 말을 말어야지”

그 개똥쇠는 서울, 인천, 대전을 거쳐 지금은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손자 둘 손녀 하나를 보고 잘 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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