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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설 따라, 설(說) 따라
풍향계/ 설 따라, 설(說) 따라
  • 동양일보
  • 승인 2020.01.22 2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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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동양일보]# 설이 일찍 찾아와 명절 기분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떨어져 사는 가족들 만날 생각에 은근 짝 입꼬리가 올라간다. 눈이 소복이 싸인 ‘설(雪)날’은 아니지만, 설렘 속에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2014년 대체공휴일 제도가 도입된 이래 설 명절로는 올해가 세 번째라니 한결 여유롭게 느껴진다.

“만나면 정월 초하루”라는 말이 있듯이 음력 설날은 푸근하고 즐겁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중요한 명절로 여겨지던 음력 설날이 역사적으로 보면 꽤 부침(浮沈)이 심했다.

소위 을미개혁(1895)의 여파로 1896년부터 양력설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해서 1910년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가 훈령을 통해서 음력설 쇠는 것 자체를 범죄시하고 강제했다고 한다. 한 민족의 명절이 명절 이상의 가치를 지닌 민족의 정신이며 문화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광복 이후에도 40여 년간 음력설은 양력설에 치어 대접을 받지 못하다가 1989년에야 비로소 음력설이 민족고유의 ‘설날’로 이름을 되찾고 섣달그믐부터 3일간 공휴일로 지정돼 제자리로 돌아오게 됐다.



#설의 유래에 관해서도 여려가지 설(說)이 있지만,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날을 의미하는 ‘선날’에서 왔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설 전날을 ‘작은 설’ 또는 '까치설'로 부르기도 하는데 그 유래가 재밌다. 본래 까치와는 관계없는데 ‘작다’라는 의미의 '아치'의 발음이 변해서 ‘까치 설’이 됐다는 얘기가 있고, 까치가 날씨를 잘 맞히는 영물이라 설날에 맑은 날씨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또 하나, 까치는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습성이 강하고 영민해서 외지사람을 금방 알아보고, 낯선 이가 마을로 들어서면 깍깍 울음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하는 말이 생겨날 만하다. 경계할 때 내는 까치 울음소리마저도 반가운 노래로 들리는 게 음력설을 맞는 넉넉함이며 따뜻함이다.

아무렴 어떠리, 감나무를 옮겨 다니며 까치가 울고, 이집 저집 왁자한 웃음소리가 담 밖을 넘고, 전(煎) 부치는 냄새가 온 동네를 휘감던 그때 그 시절의 음력설은 나이가 들어도 새록새록 그립다.

윤극영 선생이 작요, 작곡한 ‘설날’노래가 이맘때 제격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4절의 가사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우리 우리 내 동생 울지 않아요//이집 저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



#설 풍습도 많이 사라지고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설빔을 입고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고, 언 손을 호호 불며 세배 다니던 시절, 멍석을 깔아놓고 윷놀이를 하는 모습이나 마당에서 널뛰기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뜸하거나 아예 사라진 설 풍습이 돼버렸다.

빳빳한 신권으로 명절 세뱃돈을 준비하느라 은행 창구가 붐비던 시절도 옛날얘기처럼 들린다. 몇 년을 나가 살던 딸네가 귀국해서 첫 번째 맞게 되는 설이라, 이번 설은 오랜만에 아들딸 내외가 함께 모여보자고 며칠째 전화가 불이 나더니, 엊그제 외손녀가 독감이라 이번 설도 부득이 떨어져 지내야 할 것 같다는 기별이 왔다. 아들 내외가 온다고 하지만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듯한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맘만 먹으면 언제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섭섭한 법인데, 올 설에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된 이들의 설날 모습은 어떠할까. 지난해에 이어 올 초, 재계 창업 1세대가 모두 세상을 떴다. 살아생전의 업적은 크고 높을지라도 그들에게 가족을 만나서 웃고 지낼 더 이상의 설은 없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가족들에게 올 설은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인가. 설 명절에 찾아갈 고향이 있고, 반겨주는 가족이 있고,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이며 감사해야 할 일인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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